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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대담] 한광수 전 대한의사협회장 직무대행

[신춘대담] 한광수 전 대한의사협회장 직무대행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8.02.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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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성원·격려 없었다면 아마 의업 포기 했을지도...

한국 의료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료계를 매도했던 정부와 언론·시민단체는 '의료대란'으로, 의료계는 '의권쟁취 투쟁'으로 서로 다르게 불렀던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 있었던 한광수 전 의협회장이 2008년을 맞이하는 감회는 남다르다.

한 전 회장은 지난 2000년 6월 의료계 집단휴진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됐다. 죄명은 의료법상 업무복귀명령 위반·공정거래법 위반·형법상 업무방해죄 등.

김재정 전 회장과 함께 1심과 2심에서 각각 유죄선고를 받은 한 전 회장은 2005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0월과 집행유예 2년 형이 확정됐으며, 이듬해 5월 10일 보건복지부는 두 전 회장의 면허를 박탈해버렸다. 의료계는 이 날을 '한국 의사 치욕의 날'로 규정하고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빼앗긴 면허를 되찾기 위한 한 전 회장의 눈물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면허취소 처분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한 그는 2년에 걸친 법정 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지난해 대법원의 기각 판결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유독 의사에게만 잔인했던 정부도 뒤늦게 잘못을 인정한 걸까. 지난해 12월 발표된 특별사면·복권자 대상에 두 전 회장의 이름이 포함됐다. 그러나 한 전 회장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 7년간 벌어졌던 모든 일들은 전문성과 소신을 철저히 박탈당한 대한민국 의사들의 처지를 여과없이 투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면복권을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사면복권은 법치국가에서 법을 초월해 내려지는 조치입니다. 국가훈장이나 표창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개 국민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요. 하지만 저의 투쟁은 국민과 의료계를 위한 것이었지 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저의 결백은 법정에서 증명됐어야 했습니다. 저의 면허는 법원에서 되찾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의 명예가 당당히 회복되고 다시는, 그 누구도 하늘이 내려준 의사면허를 저급한 정치논리로 훔쳐가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놔야 했습니다. 끝끝내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없으셨는지.

절대로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김재정 회장과 저는 법정 최고형을 받을 각오였으니까요. 김 회장은 검찰 조사 받을 때 "혼자 다 책임질테니 (젊은 의사들은 풀어주고) 나만 처벌해 달라"고 했어요. 저도 구속적부심·영장실질심사 다 거부했습니다. 당당하게 내 발로 감옥에 가겠다는 뜻이었지요. 담당 검사가 불같이 화를 내더군요, 하하!

가슴아팠던 것은 하늘이 부여한 의사면허를 타의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어요. "너희들이 무엇인데 성스러운 의업을 빼앗아가느냐"고. 더욱 기가 찬 것은 면허취소 처분 취소소송이었습니다. 대법원 소송이 진행되던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가처분신청을 안받아줬습니다. 어떻게 유·무죄가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의 생업을 그렇게 앗아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사실 회원들의 격려와 성원이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의협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사 선임부터 온갖 행정적인 일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었습니다.

 

면허취소 처분의 부당성을 일관되게 주장하셨는데...

보건복지부가 면허취소 처분을 내린 근거는 구의료법 제48조 입니다. 이 조항은 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집단 휴업 또는 폐업 중인 의료기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은 이 명령에 반드시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업무정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게 저의 소신입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입니까? 어떻게 일개 구청장이 자영업자의 업무 여부를 간섭하고 명령합니까. 의료법을 위반해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에게 3년 동안 면허 재교부를 금지한 제52조 역시 상식에 어긋난 법입니다. 반드시 바로잡혀야 합니다.

 

그런데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면허취소 사유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 점이 제가 한심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따른 벌칙은 영업정지 15일에 불과합니다. 즉 법원이 징역형을 내린 근거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 공정거래법·형법 등 다른 법률 위반 때문인데, 보건복지부가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해서 면허취소를 해버린 것이지요. 이번에 사면복권을 받고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복지부 공무원이 전화를 하더군요. 3년내에 면허 재교부안된다고. 대통령이 내린 조치도 우습게 아는게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의료계의 기대가 큰데요.

이명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특히 전문가를 상당히 존중하는 분입니다. 과감한 개혁추진에 망설임이 없을 것입니다. 의료계의 주장이 잘 전달되기만 하면 불합리한 각종 제도가 많이 개선되리라 믿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깊이 있는 보건의료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합니다. 그러나 판단력이 빠른 분이시니 만큼 왜곡된 정책 흐름을 파악해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청와대 복지수석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가 모두 의료가 아닌 복지분야 전문가라는 사실이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그만큼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아야 겠지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계속 홍보하고, 과감하게 개선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 의사 후보자들이 대거 나섰습니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 숫자보다 보건의료 분야에 능력과 소신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국회로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다 아니다 차별 두지 말고 능력있는 지역구 정치인들에게 의료계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현재 시도의사회별로 추진 중인 후원회 운동은 매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정치인과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이지요. '국회 로비 파문' 때문에 의료계의 정치활동이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인데,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하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의협과 회원에 하시고 싶은 당부 말씀은.

의사의 사회적 역할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보건의료 분야 이슈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치지 말고, 국민의 건강·보건·환경 등 사회적 문제가 터졌을 때 전문가로서 궁금증을 풀어줘야 합니다. 이익단체가 사회적 논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겠지만, 과감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의협이 해야 합니다.

의협 회비 납부율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젊은 회원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라고 합니다. 의사가 먹고 사는 문제로 허덕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의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참 힘든 시기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의협을 중심으로 뭉치지 않으면 저 처럼 감옥에 들어갈 의협 회장, 또 나올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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