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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화의 깊은 맛에 빠졌지요…

묵화의 깊은 맛에 빠졌지요…

  • 신범수 기자 shinbs@kma.org
  • 승인 2007.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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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무(대전 허소아과의원)

시(詩), 서(書) 그리고 화(畵). 동양의 회화는 이 세 가지 요소의 일체(一體)를 추구한다. 시와 글씨, 그림 실력 모두를 갖추는 것은 문인 사대부들이 도달하고자 하던 최고의 경지였다.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밤에는 붓을 잡기를 34년. 시인이자 동양화가인 인산 선생은 이 세 가지를 두루 섭렵하고 거기에 의술까지 하나 더 얹었다.

 

"동양화가 화려하지는 않지. 하지만 깊은 맛이 있어. 싫증이 안나. 대하면 대할 수록 친밀감이 더 우러나는 게 묵화(墨畵)의 매력이야."

인산(仁山) 허인무 선생(74세, 대전 허소아과의원장)은 한학을 공부하신 조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1973년 대전에 의원을 개원할 때 쯤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나섰다. 이 후 국내·해외를 망라해 굵직한 공모전에 입상한 그의 수상경력은 한페이지를 다 채워도 모자르다. 1975년 한국문인협회 시조시 분과에 등단, 시조작가로 데뷔했으며 1988년 한국미술문화 대상전에서 은상을 받으며 그림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다수의 국전 입상, 국제공모전 전일전(全日展) 대상 수상, 중국 계림국제화평우호비림에 작품이 영구 전시된 일 등이 손꼽히는 경력이다.

주종목은 시·글씨·그림 등 3절(節)이 어우러진 '문인화'다. 현대 문인화는 전통적 소재인 사군자에서 벗어나 형식과 소재를 다양화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산 선생은 '전통을 고집하며 그 안에서 개성을 찾는'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문인화는 역시 여백의 묘가 잘 살아야 해. 소소밀밀(疎疎密密)이라고 빽빽한 곳과 여유있는 곳이 잘 어우러져야 참 맛을 느낄 수 있어."

여백의 묘, 화려하지 않은 깊이. 하지만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닐까?

"먹색만큼 아름다운 색이 없어. 먹에는 오색이 있지. 오색을 섞으면 먹색이 돼. 농담(濃淡)으로 색감과 정감을 표현하는 데 이게 매력이야.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가 있어."

최근 들어 특히 은퇴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양화에 관심을 보이는 인구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도 병원을 그만둘 때 쯤 되면 화실을 하나 차려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진료실 안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하는 의사들에게 서화는 아주 적당한 취미라고 선생은 말한다.

"의사는 남기는 게 없지만 예술 작품은 영원히 남지. 젊어서 서화를 시작하면 병원이 한가해져도 무료함이 없어. 서화는 정적인 작업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동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어. 그렇게 집중하다보면 잡념은 없어지고 인생의 멋을 만날 수 있지."

동양화 감상법

그 매화가 그 매화 같고, 저 대나무는 이 대나무와 뭐가 다른가. 어떤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며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동양화를 감상해야 하나. 인산 선생에게 물었더니 사자성어가 돌아온다. 기운생동(氣韻生動). 이 네글자는 모든 화론(畵論)의 철학적 배경이란다. 기(氣)는 예술가의 생명력과 창조력의 총체다. 무릇 그림과 글씨에는 '氣'가 살아 있어야 한다. 운(韻)은 시의 운율(韻律)을 일컫는다. 시(詩)에는 반드시 운(韻)이 있어야 하며 기(氣)가 생(生)하면 운(韻)이 동(動)한다고 선생은 설명했다. 생동(生動)은 생동감을 의미한다. 이런 요소가 잘 표현되었는가 하는 것이 동양화의 감상 포인트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다고 갑자기 감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 결국 많이 보면 볼 수록 안목이 높아지고 작품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기회 닿는대로 전시회를 다녀보라고 선생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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