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고향집 마당에 모처럼 모인 가족들. 그들이 나누는 한갓진 방담에 세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서울에 사는 큰 아들이 최근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면 부산에 사는 작은 아들은 조심스레 반박한다. 오순도순 모여 앉은 가족들의 대화에는 '민심'이 묻어난다. 그래서 추석 민심이란 말도 있잖은가. 정치인들이 명절에 마음을 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잘만 이용하면 명절은 더 많은 표를 긁어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정치인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모두의 관심사는 현재 대한민국을 들썩이고 있는 한 여성과, 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전직 대통령 측근의 '로망스'였다.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가 이번 추석의 최대 히트작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추석 연휴 때 만난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이 게이트가 어디까지 튈 것이냐'이다. 또 다른 권력의 핵심이 개입했는지, 그렇다면 그 핵심은 누구인지, 만약 또 다른 권력의 핵심이 없다면 그 대신 어떤 '깃털'들이 신정아씨의 주변에 맴돌았는지….
술이 약간 거나해지니 신정아 씨의 '누드 사진'이 화제로 떠올랐다. 모 일간지에서 내 보낸 그 사진이 실제 찍은 것인지, 아니면 합성한 것인지가 먼저 거론됐다. 이어서 설령 그 사진이 사실이라 해도 누드 사진을 신문에서 내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가가 도마에 올랐다.
어떤 사람은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가지고 언론에서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 같다. 신정아 씨도 많이 아픈 것 같던데…"라며 동정론을 펴기도 했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으레 신 씨가 정말 아픈 것인지, 아니면 아픈 체 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오갔다. 사실 이 대목은 필자도 궁금하다.
9월 16일 신 씨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바로 검찰로 직행할 때 몇 번이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신 씨는 4시간 검찰조사를 받은 뒤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써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 후 다시 검찰에 소환됐을 때 신 씨는 주변에서 부축하지 않으면 걷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병원에 머물면서 건강이 더 악화된 것일까? 신 씨는 병원에서 영양제도 맞고 충분치는 못하더라도 휴식을 어느 정도는 취했다. 물론 이 병원의 원장이 처음 기자들에게 말했던 대로 "신 씨가 피로하고 탈진한 상태라서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검찰조사를 계속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검진결과 신 씨에게서는 탈수와 빈혈증상, 갑상선 음성종양이 발견됐을 뿐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는 게 이 병원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신 씨는 검찰의 재소환에 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병색이 완연한 환자의 모습이었다. 검찰은 신 씨의 행동이 동정심을 끌어내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이라며 비난했다.
신 씨는 검찰 수사가 끝난 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마치 제집처럼….
추석연휴 막바지에 신씨는 다시 검찰에 소환됐다. 그리고 이어 추석연휴 때 신씨가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그 보도에 따르면 신 씨는 연휴기간 병원에 머물면서 변호사와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순간 필자는 그동안 현장을 취재했었던 대형사건들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거의 모든 사건에서 필자는 병원을 취재했던 것 같다. 사건에 얽힌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 순간부터 취재가 봉쇄됐었다. 그들의 입원실에는 그들의 '동지'만이 드나들었고, 입원실은 '작전 회의실'을 방불케 했다.
신 씨가 입원생활을 해야 할 정도인지, 아니면 심신을 요양하고 있는 것인지는 그녀를 매일 지켜보고 건강을 체크하는 의사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병원이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필자는 믿고 싶다.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