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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공화국

영양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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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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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

'대한민국은 영양제 공화국.'

이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한국인은 이미 많은 영양제를 먹고 있다. 최근 필자는 이런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필자는 2004년 1월부터 올 7월까지 국내에서 제조된 전체 건강기능식품 현황 자료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받아 분석했다. 이 기간 국내에서 제조돼 유통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은 8053개였다.

가장 놀랄만한 대목은 엄청난 개수였다. 8053개라면 매일 평균 6.3개씩의 새로운 건강기능식품이 출시되고 있는 게 아닌가. 두 번째로 필자가 놀란 대목은 비타민 등 영양제가 전체의 31.6%를 차지하고 있다는 부분에서였다. 한국인이 그렇게도 허약하단 말인가?

내친김에 수입 건강기능식품 현황도 파악했다. 2004~2006년 수입돼 식약청에 등록을 마친 건강기능식품은 2005년 5816건에서, 2006년 7006건, 2007년 7223건으로 꾸준히 증가해 3년간 24.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비타민 등 영양제가 전체의 41.5%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말 한국인은 너무 허약한 모양이다.

수입업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필자는 수입 영양제를 믿을 수 없다. 수입 건수는 매년 증가했지만 수입액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저가 영양제를 수입해 고가에 판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 필자의 보도를 접한 많은 네티즌들이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거의 외면당하는 싸구려 영양제가 국내에서 고가로 둔갑하고 있다"는 덧글을 남긴 걸 보면 이 추측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만들어진 영양제는 믿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영양제를 먹으면 정말 영양보충이 되고 건강해질까?

필자가 잘 알고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비타민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 교수는 "수십 년 간 의사생활을 했지만 비타민 결핍으로 병이 생긴 환자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교수는 심지어 "비타민 결핍은 영양제 제조회사를 비롯한 이익집단이 창조해낸 허구다"고까지 했다. 현대인은 오히려 비타민 과잉이 더 큰 문제라는 게 그 교수의 결론이었다.

이 교수의 주장이 꼭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이라면 때로는 비타민이나 영양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 영양제를 많이 먹는 대한민국은 문제가 있다. 결국 '영양제를 권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한 귀퉁이에는 어김없이 영양제 코너가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충동구매가 이뤄진다. TV를 켜면 홈쇼핑업체들이 갖은 영양제를 판다. 소화제를 사러 약국에 가면 역시 영양제 코너가 만들어져 있다. 벽에는 온갖 영양제 선전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몸이 아파 의원에 가면 대기실 한쪽에 영양제 진열대가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TV 홈쇼핑에서 팔고 있는 영양제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그 제품들의 효능과 신뢰성도 따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약국이나 의원, 특히 의원에서 파는 영양제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들이기 때문이다. 의원에서 팔고 있는 영양제는 안전하고 효능이 있을까? 의사들은 자신의 의원에서 팔고 있는 영양제에 대해 100% 신뢰하고 있을까?

대형병원에서 장례식장 운영으로 짭짤한 수익을 얻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의원에서 영양제를 파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서도 안 되고, 말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의사들은, 많은 소비자들이 의원에서 팔고 있기 때문에 그 영양제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의원을 다녀올 때마다 영양제를 사들고 오는 사람을 심심찮게 접했다. 그 의원에서는 환자의 영양제 과잉섭취를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  

영양제를 팔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의원에서 팔 거라면 약 처방을 하듯이 신중하게 영양제를 '처방'하라는 거다. 대한민국을 영양제 공화국으로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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