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7 13:15 (토)
시론 성분명처방 의·약사회장이 풀어야

시론 성분명처방 의·약사회장이 풀어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9.12 09:0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성낙(가천의과학대 총장)

의학과 약학은 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볼 때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학문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어져 왔다. 실로 장구한 역사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의사협회와 약사회 간의 끊임없는 갈등 현상은 참으로 지켜보기 민망하고 암울할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국내 의·약사들이 서로 첨예하게 반목하기 시작한 것은 의약분업이라는 국가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행'이 아니라, 서로의 '영토 분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의료 소비자인 국민에게는 '배우고 가진 자들의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졌다.

그런데 요즘 정부가 내놓은 성분명 처방 시행을 놓고 의·약계가 다시 날카로운 반대 의견만을 주장하면서 마치 '사활'을 건 듯한 자세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그 추악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에 정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팔짱이나 끼고 구경하는 입장이니 허탈감이 앞설 뿐이다.

정부 측에서는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의 가격이 성분명 처방이라는 행정 조치에 따라 의료보험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기에 적극 시행 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국내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비오리지널 약, 즉 제네릭스(generics)라고 불리는 카피 제품들의 품질이 제약회사에 따라 편차가 크고, 적지 않은 경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정부가 약품의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이런 문제점을 누누이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일관되게 '모르쇠' 입장을 고수할 뿐인 것이다. 의사 집단이 고가의 약을 처방하기 위해 비용이 절감되는 성분명 처방에 반대하는 것은 속칭 리베이트 때문이라고 호도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흐리기 일쑤다. 정부가 지키고 가져야 할 도덕성은 어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제약협회는 공식 표명 없이 묵묵부답이다. 짐작컨대 협회 구성원 특성상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는 숫자적으로 소규모 기업이 절대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냉가슴앓이'만 하고 있는 듯하다. 협회가 비겁하다는 지탄을 면하기 힘든 정황인데도 말이다. 대기업이 지금껏 쌓아온 각 제품의 브랜드 파워는 무용지물이란 말인가.

약사들이 성분명 처방 실시를 주장하자, 의사들은 환자가 일반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민망스럽기 그지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약값의 높고 낮음을 떠나 최고·최적의 약을 환자에게 적시에 투약하는 것은 의사의 윤리적 의무이며, 결코 부인해서는 안되는 명제이다. 의사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인 환자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성분 명처방에 반대하는 것은 저질 약이 환자에게 투여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약화를 걱정하기 때문이며, 이는 의사의 당연한 본분이기도 하다.

환자는 최적의 약을 투여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론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는 약사들도 다른 생각을 가질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분명 처방 필요성은 의약분업 이래 점차 정부 당국보다는 약사 측이 먼저 거론했고 그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러한 약사들의 대정부 로비 결과, 오늘날의 성분명 처방 시행이 시범 단계까지 왔다는 곱지 않은 의료계의 시각 역시 감출 수 없다.

그런데 "왜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이 약사 측에서 먼저 대두되었을까?" 의사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원로 약사 한 분에게 근래 현안인 성분명 처방에 대한 약계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의외로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들이 발행하는 처방전이 너무도 다양하다 보니 비치할 약품의 숫자가 엄청나고, 같은 병명에 의사가 내는 처방이 시시 때때로 바뀌는 바람에 약국에 쌓인 재고품으로 약국 경영이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그 해결 방안으로 성분명 처방론이 나왔다고 한다. 그 원로 약사의 말에 따르면, 비록 드문 예이긴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의사와 약사가 흔히 처방하는 일정량의 약품 목록을 합의 아래 작성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는 성분명 처방에 대한 서로 간의 주장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의사와 약사 간의 신사 협정(gentlemen agreement)의 한 예이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사협회장은 이제 약사회장을 만나 국내에 범람하는 저질 약품이 가져오는 문제가 개선되어 의사가 환자에게 마음 놓고 최적의 약품을 처방할 수 있을 때까지 의·약사협회가 성분 처방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공동으로 표명했으면 한다. 그러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의사와 약사 간의 반목과 갈등은 의료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뿐,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되며 모두의 자존심만 상할 뿐이기에 두 협회장은 크고 넓은 시각을 가지고 서로 대화해 주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반목을 의료계 발전을 위해 과감히 불사르고 새롭고 크게 뜻을 모아 주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필자 한 사람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