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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려운 난관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시론 어려운 난관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9.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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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준 의협 명예회장

오늘날 의료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 데는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온 대한의사협회 지도자들의 잘못이 크다. 필자는 어느 특정인의 과오를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협의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과 없이 노출된 실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앞날의 생존을 위해서도 시정해야 하기에 회원들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지면을 빌려 호소하고자 한다. 제발 정책 결정과정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물론 잘못을 예방하고 시정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책임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의약분업만 하더라도 정부의 잘못과 일부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초래된 정책적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의약분업 시행 7년의 결과는 막대한 재정적 손실과 환자 불편을 초래했다.

당시 상황이 어찌 됐건 의료계 지도자들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악법을 막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국의 의사들에게 고통과 실망을 안겨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합의문에는 절대 서명해서는 안된다는 나의 간곡한 호소와, 서명을 거부하더라도 회장 개인이나 협회에는 하등의 정치적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어서 지금도 아쉬움과 상처가 남아 있다.

도대체 시민운동을 한다는 단체가 왜 의약분업과 같은 정책적인 중요사항에 개입하도록 방치했는지 알 수가 없다. 시민단체의 월권행위에 항의하는 단체행동이라도 먼저 했어야 하는데 의협 집행부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이유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중대한 과오의 긴 터널을 지나가니 이제는 진료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분명 처방이 등장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사회주의 의료를 도입한 극히 일부 나라에서 허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극히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성분명처방을 강제화 하고 있지 않다.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성분명처방에 대해 시범사업을 한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의료비의 절감은 건강보험제도 운영상의 잘못을 바로잡고,  낭비를 막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나 보험재정을 절감한다는 엉뚱한 명분하에 국민의 건강을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정책 방향인 것이다. 정부의 수많은 실정에 대해서는 길게 물어보기도 지쳤지만 이 중대한 잘못에 대해서는 그 진의를 알고 싶다.

일반판매가 허가된 약품을 슈퍼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에도 정부는 거듭되는 국민과 의료계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무시하고만 있다.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널리 실시되고 있는 정책을 완강하게 외면하고 있는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국민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고, 행정편의주의와 불공정 행위, 일부 업종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이면에 깔려있다는 국민적 비난을 정부는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도 역대 의협 집행부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안 제정이 구체화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는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의협 집행부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원통하다.

필자는 역대 의협 집행부에 대해 의료분쟁조정법을 절대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부탁해 왔다. 김 모 회장만이 나의 충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기억하지만 많은 집행부에서 이를 입법화하면 의사들에게 큰 혜택이 있을 것으로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큰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제정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 필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우리의 주장이 설사 통과된다 하더라도 변호사 출신이 많은 법사위원회에서는 결국 환자 입장만 고려한 법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 ▲각 시도 단위로 설립될 심사위원회는 시민단체나 환자측 대표 등이 참가하게 되어 법원의 판결 절차보다 의사에게 더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 ▲외국의 예를 보면 이 제도를 운영하는데 막대한 재정 소요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부담을 누가 질 것인지의 문제 ▲의료사고의 입증책임 문제가 적어도 복지위에서는 제기되지 않고 법사위에서 제기될 것이라는 예측이 관심사였는데 최근 보도를 보면 이미 복지위 원안에 입증책임이 의사에 있는 것으로 명시되고 있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의료사고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전개과정을 보면 의협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미약함을 실감하게 된다. 전임자들의 누적된 잘못을 현 집행부에만 전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잘못을 시정하고 회복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의료계 안팎의 분위기는 이런 투쟁을 효과적으로 시행해 나가는 것이 지난한 일일 뿐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장경제를 회복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며,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권이 들어서서 의료계 주장에 절반이라도 귀를 기울여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에게는 대선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방안도 없어 보인다.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에는 시간도 없고, 우군도 없는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황이 현재 의사들이 처한 현실이다. 옛날의 잘못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현명한 집행부는 독선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능력 있고 경험 많은 회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개원의·교수·봉직의 등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는 회원들도 의료계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사안만큼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갖고 용기 있는 희생과 일치단결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전문가로서의신념과 자존심이 걸려 있다. 의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의협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는 분들도 저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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