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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분쟁조정법' 문제 많다

시론 '의료분쟁조정법' 문제 많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9.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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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효성(산재의료관리원 동해병원장)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8월 29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하려는 취지도 모르면서 왜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 동안 의료분쟁조정법은 제정되지 못 했던 이유는 의사들의 수혜여부를 떠나 각 쟁점들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의사들의 진료형태, 국민의 의료수혜의 질,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돌변하게 될 파급력이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했었고, 입법이 매번 좌절되었다.

그 핵심에는 '불가피한 의료사고 배상'조항이 있다. 이번 구제법에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따른 보상 규정도 없다. 국민의 '도덕적 해이'만 잔뜩 부추겨 구제신청만 폭주시킬 이런 법을 만들려고 의료계가 그렇게 공을 들였단 말인가? 보건복지부 차관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소위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졸속으로 가결시켰다. 이건 한마디로 국회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의 폭거라 생각된다.

이법은 우선 법안 명칭부터 잘못되었다. 이법의 제정목적은 손쉽게 의료분쟁을 조정하자는데 있다. 그런데 '의료사고 피해구제'란 제목은 의사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조정제도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듣고 제3자인 의료분쟁조정위원이 조정안을 마련하여 손쉽게 분쟁을 해결하자는 제도다. 법원의 '민사조정' 도 판사가 개입하여 양당사자 주장을 듣고 분쟁을 조정한다. 따라서 이 법안 명칭은 '의료분쟁조정법'이 타당하다.

또 이 법의 핵심은 '조정제도'인데도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했다.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시 가해자의 고의, 과실 등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동구권, 특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10년 전부터 의료과오소송에서 '입증책임전환' 판례들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의사에게 의술의 과실이 아님을 입증시키는 방법은 의료사고 문제해결 방식에서 최악의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Barta, Medizinhaftung,1995,S.12).

모든 입증책임 관련 논문들도 이를 인용하고 국내에서도 이미 정설이 된지 오래다. 이 해결방식은 의사로 하여금 방어의료를 행하게 하고 병원, 의사와 환자사이에 불신을 더욱 깊게 하므로 궁극적으로 의사와 환자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는 의사가 방어진료 목적으로 소극적 진료를 하게 되며, 의료사고 위험성이 높은 전공과를 기피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입증책임전환의 모순을 의료소송에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데 조정제도에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부담시킨다니, 의사들에게 방어진료만 시켜서, 적극 치료받을 환자의 권리는 어찌하려고 하는지, 입법자들이 과연 정신이 올바른 사람들인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를 제외한다면 이법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통과된 법에는 이 조항을 제외시켰다. 그러나 이기우의원은 2005년도 공청회 발제문에서 "과실을 밝혀내기 쉽다, 어렵다의 문제가 아닌 의료인의 과실이 전혀 없음에도 의료사고는 발생될 수 있고, 이에 대해 제한적으로 무과실 책임보상을 도입하는 것은 환자나 의료인을 위해 타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초안에 '국가는 의료사고피해구제위원회에서 보건의료인의 무과실이 입증되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로서 일정한 경우에는 3000만원 한도로 보상한다', '그 보상금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란, 부검 또는 감정의 결과 현대의학수준으로는 의료의 한계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발생한 의료사고이거나 환자의 특이체질 또는 과민반응으로 인하여 발생한 의료사고이어야 한다'로 되었었는데 통과된 법에는 빠져버렸다.

그 임상예로는 양수색전증, 폐전색증, 심근경색증, 악성고열증, 약화사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돌발사고이다. 이를 제외한다면 이 법안의 실효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의료분쟁은 의사의 과실인지 불가항력적인지 구분이 모호하여 서로의 주장들이 팽팽할 때 시작된다. 따라서 조정법은 현대의학으로 예견되지 않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피해'는 피해보상범위에 넣어야 한다. 이는 의료행위 그 자체가 위험을 내재하고 있고 국민 누구나 치료받아야 할 상황에 있는 것이고, 신체의 예외적 상황으로 의료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마다 증상의 비정형화로 인해 치료효과에서 정상적인 진단과 처치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고 돌발적인,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이 법이 반의사불벌제도를 두어 형사처벌 특례를 두었다고 하지만, 불가항력적 사고를 당한 환자측이 배상을 받지 않았는데 의사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특례가 아니다. 그리고 조정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조정의 실효성과 강제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필요적 조정'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현행 의료법에 '의료심사조정위원회'가 있음에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전치제도가 규제완화의 시대적 흐름에 거스른다는 비판도 있으나 이미 규제가 완화된 심사조정위원회가 의료법에서 활성화 되지 못했는데, 계속 규제완화를 고집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이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배상과 필요적 조정을 거치지 않는 법을 만들려면, 차라리 의료법에 잘 마련된 의료심사조정위원회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 훨씬 더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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