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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여성 위한 '외길' 30년

이 땅의 여성 위한 '외길' 30년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7.09.0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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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효표 서울의대 교수

무려 30년 동안이나 여성을 짝사랑을 했다. 그 수가 몇 명인지 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다.

8월 31일 교단을 내려온 이효표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산부인과)는 무려 31년 동안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해 칼을 빼 들고 '부인암'과의 전쟁에 나섰다. 자궁경부암 수술 및 연구 분야에서 이 교수는 환자들은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자자하다.

자궁경부암에서 시작해 자궁암·난소암·자궁근종·자궁내막증 등 '부인종양'과의 오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이효표 교수는 "막상 정든 캠퍼스를 떠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죠. 6·25 한국전쟁 때 피난간 것 빼고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이 부근에만 살다가 떠난다고 하니…. 1960년 서울의대에 들어왔으니 연건캠퍼스에서만 47년 동안 몸 담았은 것 같습니다."

30여년 동안 '부인암'과의 전쟁에 나섰던 이 교수는 자궁경부암 연구·수술 분야에서 환자는 물론 의사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자자하다.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동문회에서 마련한 정년퇴임 기념 출판기념회에서 후학들과 함께.

8월 말로 정년퇴임을 맞은 이효표 교수는 "대학 입학 후 47년, 교수직 임용 후 32년 동안 서울의대 캠퍼스와 병원에서 청춘을 다 보냈다"면서 "아직 할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벌써 정년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고 했다.

"스승님·선배님들의 도움과 동료·후배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명예로운 정년을 맞을 수 있게 됐다"는 이 교수는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정년을 맞는 감회를 밝혔다.

30년 넘게 산부인과 특히 부인종양에 뜻을 두고 외길을 걸어온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인턴 때부터 부인암에 관심이 많아 비교적 전공을 일찍 정했다"고 했다.

"부인과의 경우 내과와 외과를 다 봐야 하고, 수술하는 것도 적성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부인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여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요. 당시엔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들이 많았는데 여성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다보니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경우를 많이 지켜봤습니다."

부인암을 정복해 보겠노라고 마음 먹은 이 교수가 세부전공으로 '부인종양학'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수순.

"1971년 레지던트를 마칠 때만 해도 지금은 기본적인 장비인 복강경은 물론 태아-심전도·초음파 등을 구경도 못하던 때였습니다. 공군 군의관으로 3년 동안 복무를 하고 돌아와 보니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장비가 들어와 있고, 의학기술과 지식도 많이 바뀌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1979년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교에 연구교수로 파견을 나간 이 교수는 2년 동안 새로운 최신 의학기술과 지식을 쌓으며 실력을 다졌다. 국제적인 부인종양학의 대가들에게 최신지견을 전수받으며 '부인종양' 정복의 꿈을 다시 꿀 수 있었다.

귀국한 뒤 1982년 일본에서 기증받은 초음파기기를 이용해 태아의 체중을 측정해 발표하고, 태아-심전도 장비를 셋업하는 등 산과 영역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1989년 산과와 부인과로 분과하면서 부인종양 분야를 전담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후 한 눈 팔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이 교수의 부인종양에 대한 열정이 입소문을 타면서 부인암 환자가 몰려들었다.

진료와 함께 연구와 학회 발전에도 힘을 쏟았다. 대한부인종양학회장·대한비뇨부인과학회장·대한의학레이저학회장·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장·대한암학회장 등을 맡아 학회의 외형적인 면은 물론 질적인 발전을 위한 견인차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산부인과학, 특히 부인종양학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내에 부인종양위원회를 설치해 1991년부터 전국적인 부인암 등록사업을 해 온 일과 2001년 6월 9일 재단법인 한국부인암재단을 설립해 부인암의 예방과 조기진단의 필요성을 홍보해 온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부인암재단은 부인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설립했습니다."

이 교수는 정년 이후에도 부인암재단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최근 수년 들어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비롯해 외과계열을 3D과라며 기피하고 있습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 문제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외과계열에 대한 수가가 보전되지 않으면 진짜 병을 고치는 의사가 줄어들게 되고, 의학의 후퇴는 물론 국민의 생명 전선에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이 교수는 외과계열에 대한 정부의 인식 변화와 더불어 비보험 진료분야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건국대병원에서 다시 한 번 부인암 연구와 치료를 위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 교수는 "많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면서 "후배들과 제자들이 진료와 연구에 계속 정진해 훌륭한 발전을 이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효표 교수가 걸어온 길>

학력 ▲1960년 경기고 졸업 ▲1966년 서울의대 의학과 졸업 ▲1968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 ▲1972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

경력 ▲1967∼1971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1971∼1974년 공군 군의관 ▲1974∼1976년 서울의대 인구의학연구소 연구원 ▲1976∼1978년 서울의대 전임강사 ▲1978∼1983년 서울의대 조교수 ▲1979∼1981년 미국 남가주대학교 연구교수 ▲1988∼현재 서울의대 교수 ▲1996∼2000년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장

학회활동 ▲1989∼현재 대한산부인과학회 부인종양위원회 위원장 ▲1994∼1996년 대한부인종양콜포스코피학회장 ▲1994∼1996년 세계융모성질환 학술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1999∼2001년  대한의학레이저학회 이사장 ▲1999∼2001년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장 ▲2000∼2002년 대한비뇨부인과학회장 ▲2001∼현재 한국부인암재단 이사장 ▲2002∼2004년 대한산부인과 내시경학회장 ▲2003∼2005년 대한의학레이저학회장 ▲2004∼2005년 대한암학회

저서 ▲생식의학 및 가족계획(1986년 서울대출판부) ▲부인과학(1992년 칼빈서적) ▲부인종양학(1996년 칼빈서적) ▲부인과학(제3판 1997년 칼빈서적) ▲산부인과학(1999년 군자출판사) ▲가정의학(2001년 서울대출판부) ▲부인과내시경학(2003년 군자출판사) ▲종양학(2003년 일조각)

포상 ▲대한산부인과학회 학술상(1972년)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제8회 과학기술 우수논문상(1998년) ▲서울대학교 총장 표창장(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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