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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명처방 저지투쟁을 보면서

성분명처방 저지투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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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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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국민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에서 9월부터 실시하기로 한 '의약품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1인 시위에 돌입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이 시위는 의협의 집행부와 대학병원장 등이 릴레이로 이달 3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의협은 1인 시위가 끝나는 31일에는 집단 오후 휴진을 계획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강행의지를 밝힌 것은 2주 전이었다. 당시 변재진 복지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예정했던 대로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예상대로 의협을 필두로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주수호 의협 회장은 "정부가 건강보험의 재정 절감을 위해 국민건강을 팔아먹으려고 하고 있다"며 "인간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사명감을 갖고 비윤리적인 성분명 처방 사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의학 분야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취재를 해 왔던 터라 의료계의 주장에 상당히 동의하는 편이다. 약효가 동등하다고 인정받은 의약품이라 해도 그 약에 들어있는 유효 성분은 분명 약간씩 차이가 있다. 게다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자료 조작 사건이 대규모로 적발된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계의 주장을 아전인수 격이라거나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의사의 '순수한 뜻'이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물론 의협은 1인 시위를 통해 이런 뜻을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1인 시위로 그런 뜻을 알릴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해 11월경 본 칼럼을 통해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대해 나름대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칼럼에서도 "약품명 처방을 한다고 해서 건강보험 재정이 더 빨리 '파산'한다는 주장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건보재정이 새는 근본적인 원인을 복지부가 이해하길 바란다."라며 의료계의 주장을 어느 정도 옹호했었다.

필자는 당시 의료계가 소비자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지금 필자는 그 부탁을 다시 하고 싶다.

복지부의 주장을 다시 보자. 약제비 부담을 줄여 건보재정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를 복지부 또한 숨기지 않는다. 복지부가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환자들이 약을 쉽게 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품명 처방 방식에서는 가끔 병원 바로 옆에 있는 약국이 아니면 약을 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실제 필자도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의료계에서는 소비자의 이런 고충을 알고 있을까? 지금 필자는 성분명 처방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만성질환 의약품이나 특수의약품의 경우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상품명으로 처방하는 게 옳다. 그러나 감기, 가벼운 두통, 소화불량 같은 경증질환에 대해서는 상품명 처방과 성분명 처방을 어느 정도까지는 혼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약의 처방권이 의사의 고유권한이란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소비자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타당한 의료계의 주장'이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 의사들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생떼를 부린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 의료법에는 상품명이나 성분명 중 의사가 원하는 것을 골라 처방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일부 보건소를 제외하면 성분명 처방률은 0%에 가깝다. 성분명 처방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수호 회장의 "성분명 처방은 권고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다"는 말을 필자는 주목한다. 성분명 처방은 권고사항이다. 그러나 아무도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강행하려는 것은 아닐까?

원만한 타협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만약 타협이 가능하다면,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의료계에서 모니터링하면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조정자로서 역할을 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

어쨌든 의료계의 반대가 '무조건 반대'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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