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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신질환자 보험가입 거부는 차별이다

시론 정신질환자 보험가입 거부는 차별이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7.1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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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순(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장)

보험은 예기치 않았던 사고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위험사회인 현대사회에서는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인 안전망이다.

있을 수 있는 재난에 대비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더 절실한 문제인데, 상법 제732조는 심신상실자·심신미약자의 사망사고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지속적인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가벼운 정신질환으로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보험가입이 거부되거나 보험이 해지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장애 유형과 가입하고자 하는 보험사고의 발생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가입이 거절되는 일 또한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이후 보험에서의 장애차별에 대한 실태조사와 직권조사를 통해 2005년 8월 관련기관에게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그 내용은 상법 제732조를 폐지하고, 보험업법에 명시적 차별금지 및 입증책임의 전환 규정을 삽입하며, 장애인 시설등의 단체보험이 가능하도록 국가적 지원을 함과 아울러 불합리한 보험인수기준 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 2년이 가까워 오는 이 시점에도 큰 변화는 없다. 법무부는 상법 제732조가 보험금을 노린 악의적 살해 가능성으로부터 정신장애인이나 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주장 하며, 정신장애인이 취업해 생계를 유지·보조하고 있는 등 이들을 피보험자로 하는 생명보험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한해서 보험가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민간보험사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보험인수를 여전히 꺼리거나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외국에서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나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재화나 용역의 공급, 특히 '보험'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해 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됐는데, 이 협약 제25조는 건강보험과 생명보험이 장애인에게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내년 4월에 발효될 예정인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 역시 제17조에서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차별에 대한 강력한 제재규정을 두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한 시정권고뿐만 아니라, 법무부의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 및  악의적인 차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까지 두고 있다.

그와 별도로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된 경우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피고가 입증하게 하고, 재산상 손해를 차별행위자가 얻은 이득이나 적당한 금액으로 갈음하게 하는 특칙을 두고 있는데, 만일 현행과 같은 근거 없는 보험가입거부나 해지가 계속된다면, 해당 민간보험사들은 차별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이며, 내년부터는 그와 관련한 손해배상이나 차별시정권고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되는 상법 제732조에 대해서 동 조항이 정신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원칙과 예외를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 한 두 차례의 정신질환치료를 받은 사람들까지 모두 보험가입이 거부되는 문제가 현실에서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간과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애인들을 포함한 정신질환자들의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어떤 원칙을 가질 것인가이다. 보호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권리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인권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장애인권리협약은 제12조에서 모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법적 능력을 향유함을 선언하고, 국가와 사회가 이를 위해 지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정신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하되, 다만 국가와 사회는 그 권리행사가 가능하도록 의료적 사회적 시스템을 정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법 제732조는 그와 반대로 아예 법적 능력을 무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법이 정하고 있는 무능력자인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보다 훨씬 더 넓고 애매한 개념인 '심신상실자'나 '심신미약자'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단 1회의 진료를 받아도 보험회사의 자의적인 '심신미약자' 판단에 따라 보험가입이 거부되거나 해지되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하나 밖에 없다.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에 따라 먼저 정신장애인들의 보험가입에 있어서의 법적 권리와 능력을 보장해 주고, 예외적으로 악의적인 보험사고가 날 경우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서 규정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인 권리협약의 정신이 수용되는 것이며, 현재와 같은 일회성 정신질환치료자들의 억울한 사정이 해소될 것이다.

인간 모두가 그 개인 자체로서 존중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릴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음을 세계 인권선언이 확인한 이래 60년이 되어가고 있다.

정신 질환과 관련해 민간보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이 하루라도 빨리 시정되기 바라며, 이를 위해 보험사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관련 협회 등이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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