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7 13:15 (토)
작은 현상이 중요한 이유

작은 현상이 중요한 이유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3.30 09:58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지난달 21일 경기 광주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30대 태국인 노동자가 점심식사 도중 닭고기가 목에 걸려 쓰러졌다. 동료들은 급히 회사 근처에 있는 의원으로 그를 옮겼다.

그러나 의원은 휴진 중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잡혀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성남에 있는 분당제생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이 보도가 나가자 누리꾼(네티즌)들은 "의료계가 환자를 위해 의료법 개정을 저지한다면서 실제로는 환자를 볼모로 하고 있다"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를 비판했다.

의협은 즉각 공식입장을 냈다. 의협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응급처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회사의 대표가 119에 응급신고를 했지만 15분이 지나도 구급차가 오지 않자 개인 차량으로 인근에 있는 의원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119가 무용지물이 아닌가?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순간에 15분은 길어도 너무 길다.

어쨌든 의협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동료들은 119 차량이 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의원으로 찾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원에서 이 환자는 응급처치를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처음 상황이야 어쨌든 결국 휴진 때문에 진료를 못 받아서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의협이 내세운 '의학적 근거'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요지는 이렇다.

"식사 중 음식물이 목에 걸려 기도가 막히면 등 뒤에서 배를 강하게 끌어안아 이물질이 즉각 폐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등 응급조치가 3분 안에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이미 15분이나 지났다면  병원 응급실로 바로 이송됐어도 소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필자는 이 주장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한다. 분명 최초 대응이 잘못됐다. 의협의 주장처럼 동네 의원에 갔다 해도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집단휴진 때문에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한 일부 언론의 태도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의사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분명 그 의원에 갔을 무렵에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만약 그 의원이 문을 연 상태였다면….'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의료법 개정을 저지하는 게 환자와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충분히 대비했어야 옳다. 응급 환자가 오면 즉각 다른 병·의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비상라인'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숙한 응급대처'에 더 가깝다. 그러나 집단 휴진과 맞물리면서 '부도덕한 의사들'로, 국민들은 본질을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듯 본질은 종종 현상에 의해 왜곡된다.

의료계의 집회가 끝난 21일 저녁.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드러났다. 플래카드·전단지·비옷 등 쓰레기는 다음날까지 현장에 그대로 방치됐다.

다음날 새벽부터 과천 청사 관리소 직원들이 이 쓰레기를 치웠다고 한다.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의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에만 급급할 뿐 기본은 전혀 지키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 경우 의료법 개정을 주장하는 취지는 묻혀버리고 만다.

이 때 본질은 '자신들밖에 모르는 의사들'로 바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상의 총합을 본질로 인식한다. 때로는 '큰 본질'보다 '작은 현상'들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corekim@donga.com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