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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를 식히려면…

뜨거운 감자를 식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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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0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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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복지의학팀장)

미국인의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품 중 하나가 바로 감자다. 그런데 이 감자란 것이 언뜻 보기에 뜨겁지 않아도 막상 덥석 물면 너무 뜨거워 입천장이나 목구멍을 데고 만다. 그러나 입에 들어간 음식이 아닌가? 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뜨거운 감자란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감자처럼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을 가리킬 때 우리는 뜨거운 감자라고 부른다.

사실 이해당사자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논쟁이나 잡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뜨거운 감자를 거론하지 않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생사가 어디 그런가. 때로는 뜨거운 감자를 논해야 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입장에서, 이해당사자는 아니지만 가장 관심이 있는 뜨거운 감자가 바로 의료법 개정안이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범 의료단체들이 이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관점은 다르지만 보건의료시민단체들 또한 개정안을 비판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공중파 TV에서 의료법 개정안 토론을 방송한 적이 있다. 필자는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할 기자의 입장에서 토론을 지켜봤다. 각양각색(各樣各色). 딱 이 네 글자로 관전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석자들은 모두 팽팽한 평행선 위를 달리고 있었다. 중간에서 서로 만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단체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충실했다. 장동익 의협회장이나 시민단체 대표로 나온 신현호 변호사나 노연홍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이 모두 그러했다. 류지태 고려대법대 교수 또한 중립적 입장에서 개정안을 법리적으로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시민 패널로 의견을 개진한 조갑철 적십자간호대 교수도 간호사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을 끝까지 지켜본 필자가 내린 결론은 '모두가 감자를 식힐 실마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였다.

의료소비자인 시민들은 어떨까? 아마도 그들은 한 시민패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주목했을 것이다.

"우린 각 단체의 영역 싸움에 관심이 없으며 의료서비스의 품질과 환자의 알 권리에 관심이 많다. 병·의원에 가면 소비자의 알 권리는 무시되고 2분 진료를 위해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의사들은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는 얼마나 의료비가 들어가는 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약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하게 된다."

이 시민의 의견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발언을 통해 국민 정서를 유추할 수는 있다. 국민의 정서는 표준진료지침이든 임상진료지침이든 그 명칭에 심드렁하며 간호진단이냐 간호평가냐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진료행위에 투약이 들어가느냐 아니냐 또한 개의치 않는다. 국민은 결국 '어느 단체가 가장 환자 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이 적잖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필자는 동의한다. 그리고 의협에서 "합의한 적이 없다"며 복지부를 비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협의 장 회장은 "의료법 개정안이 총체적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개를 바꾸는 식의 흥정은 옳지 않다"며 "의협 차원에서 대체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 대표인 신 변호사는 "단체들이 모여 회의했지만 시민단체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며 "앞으로 입법논의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어느 쪽의 대응이 더 현명한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나중에 웃는 사람들은 국민 정서를 가장 잘 읽고 대처한 쪽일 것이다. 지금 국민은 뜨거운 감자보다 먹기 좋을 만큼 차갑게 식은 감자를 원하고 있다.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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