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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니코틴 중독' 인정 안한 어이없는 판결

시론 '니코틴 중독' 인정 안한 어이없는 판결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1.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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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홍관(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 가정의학전문의)

무려 7년을 끌어온 폐암 소송이 결국 원고 패소로 결론이 났다. 판사는 "장기 흡연과 폐암및 후두암 발병 사이의 장기적 역학관계는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담배에 제조·설계·표시상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피고들의 폐암이나 후두암이 장기 흡연 때문이라는 것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흡연이 폐암 원인의 85%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필립모리스 같은 담배회사들도 당사의 홈페이지에 이를 인정하는 글을 쓰고 있을 정도다.

논란은 바로 그 사람이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는 흡연한다고 해서 누구나 폐암이 걸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는 유전을 포함한 작은 부분이 작용한다. 유전적 경향을 포함해서 흡연 외의 모든 요인을 합하면 폐암 원인의 약 15%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폐암에 있어서 어떤 유전적 형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현재 인류의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다(신 말고는 알길이 없다). 그렇다면 영원히 이러한 재판은 인류의 지식이 완벽해질 때까지 다룰 수 없단 말인가? 아니면 신에게 재판을 맡겨야 하는 것인가?

만약  석면이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누군가 직업적으로 석면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치자. 그가 폐암에 걸리면 우리는 직업병으로 판정하고 그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개인도 석면에 노출되지 않았더라도 개인적 유전적 경향에 의해서 폐암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수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길이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다른 유전적 요인으로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증명할 길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유사한 판결에서 우리가 적용하는 것은 개연성 이론이다. 충분히 설명 가능하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개연성이 아니라 필연성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거의 모든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는 보상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차이점이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서 요구하는 증거의 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약 A가 살인혐의를 받는다고 하자. 그가 살인을 했을 확률이 85%라고 해서 A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단 1%라도 억울한 죄인이 발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사재판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90%의 가능성이 인정되어도 한푼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개연성 이론에 따라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다.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어떤 집이 있는데 이웃집에서 공사를 하면서 그뒤부터 집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재판부에서 인정할 만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지진이 집 벽의 균열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또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진동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모든 것이 확인되기 전에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 재판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연관성이 인정된다면, 그 개연성만으로 인정하고 보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민사 소송의 기본 원리인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폐암 등의 발병이 니코틴 의존성으로 인한 부득이한 발병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흡연의 중독성과 흡연자의 책임 문제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모든 국가는 질병을 분류할 때 국제질병분류기호(ICD-10)를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모든 보험처리에 이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 질병분류기호에는 'F 17.x'라고 해서 흡연을 '담배로 인한 정신적 행동적 장애'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흡연은 결국 니코틴 중독이라는 질병인 것이다. 중독이라는 것은 바로 그 개인이 끊고자 해도 잘 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는 질병이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의지만으로 금연할 경우 금연성공률이 5% 미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의지대로 금연할 수 없다는 점은 무시하고, 담배가 해로우면 끊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흡연의 질병적 특성을 무시한 판결이다.

마지막으로 담배회사가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렸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이미 충분히 알렸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다르다. 경고문구가 처음 나온 것은 1976년이었는데 당시 경고문구는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였다. 적당한 흡연은 권장한 셈이다.

마치 학생들에게 운동도 공부도 지나치면 안되고 적당히 하라는 말과 비슷한 수준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흡연의 해악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 1989년에 와서야 흡연이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구가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니코틴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끊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조경란 판사는 한 언론사와의 회견에서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하신 흡연자였고, 변호사인 남편도 흡연자인데 남편이 금연보조제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의지로 끊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즉 조 판사는 흡연이 니코틴에 의한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의학자들이 인정하는 니코틴 중독을 판사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 의사인 필자에게는 의아스러울 뿐이다.

이번 판결 결과를 놓고 많은 흡연자들은 폐암과 흡연간의 관계가 아직 확실치 않은 것이 아닌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다음 항소심에서는 과학적 사실들이 왜곡되지 않고 인정되어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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