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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도 국민도 잘 모르는 '포지티브리스트'

시론 의사도 국민도 잘 모르는 '포지티브리스트'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11.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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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한(신촌연세병원 내과장)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는 가격 대비 효과면에서 우수한 약만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그 약값을 지불하겠다는 제도이며, 정부가 시민 개개인의 질병을 그 시민과 그의 주치의의 협력에 의해서보다 더 잘 치료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에서 나온 제도이다. 그런 오만한 발상은 닥쳐올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를 미리 막아보겠다는 의도로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를 구상하면서 그 속내용을 철처히 숨기기 위한 포장지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한마디로 위선적인 정책인 것이다.

위선적인 정책은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어서, 그 정책이 실현되어진 후에는 분명히 상당한 소란이 예상된다. 실패와 그에 따른 소란이 예상되는 정책이 발표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관심과 토론을 현재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의사사회에서조차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많은 행정부처중에서 신문지상과 TV매체에 혈세로 대형광고를 하기를 가장 즐기는 보건복지부가 이번에는 작은 광고조차하지 않는다. 그런 대형광고를 볼 때마다 그 돈이면 암환자 몇 명을 살릴 수도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내과의사인 본인으로서는 최근의 복지부의 형태가 의아스럽다.  

아마도 위선이 탄로날까 염려되어 그런 것이라 필자는 판단한다. 환자 개개인이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그 정책의 본질을 알수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필히 약국의 문턱이 높아지게 될 것이고, 따라서 국민에 의하여 그 위선이 탄로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인은 내다본다.

약국의 문턱이 높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자기의 건강을 최대한 지킬려고 하는 자연스런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게임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고혈압약 A, B 가 있고, A가 200원이고 고혈압치료에 10의 효과가 있고, B는 400원이고, 고혈압치료에 15의 효과가 있다고 가정해보고 환자에게 선택하라고 했을 때, 포지티브 리스트는 A를 선택할 것이지만, 실제 환자는 B를 선택할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본인은 추정한다.  

비용이 두배이고, 그 효과가 두배에 미치진 못하지만, 인간은 자기 몸을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보험 급여에서 제외된 B를 구입할려는 그 환자는 자기 돈으로 그 약값을 다 내어야되니 당연히 약국 문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건강보험료를 납부한 그 환자는 자기가 정부에게서 근거없는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복지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료보호 대상을 제외한 전국민이 건강보험대상자인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은 왜 이리도 조용할까? 노인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에서는 약값을 비롯한 의료비의 부담이 그 가계에 큰 부담일 것이다.

그런 노인부부가정에서 이 제도가 실행되어지면 그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은 당연한 일 일텐데 이런 노인부부를 대변하는 소리를 내는 경우를 아직 신문지상 등에서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이 제도에 대하여 신문지상에 나온 의견은 기껏해야 복지부를 두둔하는 시민단체의 의견 몇 개가 전부였다.  

왜 이럴까?  본인이 생각하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와는 달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건에 대한 이슈를 만들만큼 충분히 잘 살지 못해서 그러하다. 이는 의약 분업 시행 때에도 이미 겪었던 상황이다. 의약 분업같이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제도를 만들 때에도 여론은 조용했었고 시민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의사들이 파업하고 나서야 여론과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둘째, 전국민건강보험의 20년간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의료서비스의 변화를 좀처럼 시장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영향을 거의 안 미칠 것이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공공서비스의 조그만 제도 변화로 시민들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식은 정부에 의하여 유도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충분한 시민적 합의없이 대부분 시행되었고, 시행된 후에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 제도의 장단점에 대한 자세한 정보제공보다는 좋은 점만을 광고하기 바빴다. 선한 관리자의 얼굴을 보이기에 바빴던 것이다. 내가 알아서 잘 관리할테니 시민들은 자기들의 생업에나 신경쓰라는 태도였다. 그처럼 선을 가장한 관리자의 모습은 부당청구(?)를 하는 의료기관을 언론에 발표하여 여론재판을 일삼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진짜' 의료 소비자인 국민들은 의료서비스 제도에 대하여 점점 관심을 덜 가지게 되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은 왜 의사의 전문가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이 제도에 대하여 말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으나 한가지만 말하려고 한다.  동료의사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느낀 점인데, 의사들은 한국의 의료제도 자체와 그 변화에 대한 심한 냉소적 태도를 지닌다는 점이다. 2000년도 의료대란 때 의사들은 의료정책의 참여자가 되고자했으나 거부당했고 도덕적으로까지 배척되었던 그 아픈 기억이 오늘날의 의사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치루어야할 손실비용이 너무 큰 이 제도를 정책입안자는 곰곰이 다시 생각할 용기와 혜안을 필자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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