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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특정약 한글표시 환자피해 유발한다

시론 특정약 한글표시 환자피해 유발한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9.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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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항(인천 부평·갈산중앙의원)

처방전에 항생제·스테로이드·향정신성약품을 표시할 때 한글로 제품군을 표시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국회에서의 논의 내용은 "처방전의 특정 약품 한글 표시는 약의 과다복용에 대한 환자 보호를 하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과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를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어떤 국회의원은 대립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환자가 요구하면 향정신성약품은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조항을 만들면 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환자 보호', '개인정보 유출', '단서 조항 만들기' 등 모두 단편적으로는 올바른 말이다. 하지만 핵심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의사-환자 신뢰도 악화'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의료행위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는가? 의사-환자의 신뢰도 문제가 의료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 국회에서 언급된 문제를 고민해 보기로 한다.

신뢰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시장에서 사과를 구매할 때는 사과에 대한 정보를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의 비슷하게 가지고 있어서 구매자는 비교적 편하게 사과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에서는 판매자인 의사가 환자의 질병정보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고 구매자인 환자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감이 없다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신뢰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환자는 의사의 검사들과 약 선택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고, 다른 의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즉 의료 쇼핑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 경우 비용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남이 당연할 것이다. 신뢰감이 사라진 상황에서의 의사는 환자의 신뢰감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환자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신뢰도 높은 고비용 검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사비용은 더욱 늘어가게 된다.

이처럼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도 저하는 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의사와 환자 모두는 상호불신이라는 큰 심리적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의료의 이러한 특성을 감안한다면 모든 의료정책은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도 문제를 항상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처방전의 특정 약품 한글 표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용으로부터의 '환자 보호'는 되지만 과도한 사용 억제로 인하여 '환자 피해'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의 사용억제는 남용을 막기도 하지만 질병 치료기간을 늘이기도 한다. 향정신성약품의 사용억제는 심인성 질환의 치료를 느리게 함으로 환자의 고통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만약 질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비전문가인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불신하여 항생제를 처방전에서 빼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의사와 환자간 상호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의사는 질병치료 결과를 고려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요구에 응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에는 환자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처방전의 특정 약품 한글 표시의 궁극적 목적은 특정약품의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국회에서는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로 환자에게 특정 약 사용을 알려서 경고를 하는 방식으로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적 유치한 발상이다.

특정 약품의 과도한 처방 남용을 증명하려면 정상적 처방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결국 환자의 질병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 이외에는 환자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심평원에서 의사 처방 남용을 점검하고 있지만 이것도 이상적인 방법은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심평원이 담당 의사보다 환자를 더 잘 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처방전의 특정 약품 한글 표시는 심평원의 처방 감시를 넘어선 '치료받는 환자의 자기 처방감시'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를 2중의 감시 장치라고 생각하여 '환자 보호'라고 말하겠지만  의학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자가 자신을 진료한 의사를 감시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적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환자 보호'가 아니라 '환자 피해'를 유발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보통 이런 시각에 도달하면 보호와 피해 양측을 비교해서 보호가 많으면 시행한다는 식으로도 언급하기 쉽다. 하지만 질병치료에서는 이러한 시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피해를 입는 사람이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생명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처방전의 특정 약품 한글 표시는 어쩌면 보호보다는 피해가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에 의한 특정약물 남용을 막기 위한 정책이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진행해서는 안된다. 소극적으로는 심평원을 통한 남용 방지장치를 구상하는 것이 좋고 적극적으로 의사들을 교육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의학 지식이 부족하여 의사에게 치료를 의뢰한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감시하는 정책은 웃어넘기기엔 가볍지 않다. 환자와 의사 모두가 신뢰감 추락이라는 너무나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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