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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중복처벌 문제점과 개선방안 논의

의료인 중복처벌 문제점과 개선방안 논의

  • 이현식 기자 hslee@kma.org
  • 승인 2006.07.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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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착오청구에 3~4번 처벌…처분 시기도 제각각
의협, 워크숍 열고 단기 핵심과제로 심층 논의

복지부의 실사를 받아 허위청구라는 족쇄에 걸린 의사는 적게는 두번에서 많게는 네번까지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을 받고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선 단순한 착오로 인한 청구라도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사기죄로 처벌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관련 법령을 보고선 도무지 허위청구와 부당청구를 구분할 수 없다. 그만큼 실사 담당자의 재량이 크다는 얘기다.

대한의사협회는 1~2일 충남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워크숍을 열고 의료인에 대한 중복처벌을 막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김태학 의사국장은 발제를 통해 회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샅샅이 조사해 발표했다.

전형적인 사례 두가지를 보자.

#사례1: 단순 과다청구로 4중 처벌을 받은 경우

전주시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있는 김모 원장(42)은 2004년 3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 간 복지부의 현지조사를 받았다. 실사 결과 착오로 진료비를 과다 청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법상 업무정지 10일(2004년 8월 1일~10일)과 의료급여법상 업무정지 20일(2004년 8월 1일~20일)의 행정처분을 하고 김모 원장을 형사고발했다.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은 김모 원장은 복지부로부터 다시 의료법상 자격정지 10일(2005년 6월 1일~10일까지) 처분을 받았다.

#사례2: 행정처분 기간이 서로 달라 피해가 커진 경우

서울 서대문구에서 소아과를 개원하고 있는 이모 원장(39)의 경우는 사례 1과 매우 흡사하다. 진료비를 과다 청구한 직원의 실수로 복지부 실사 결과 위 김모 원장과 똑같은 정도의 처벌을 받았다. 문제는 기간이었다.

건강보험법상 업무정지 10일(2004년 8월 1일~10일)과 의료급여법상 업무정지 20일(2004년 8월 12일~31일)이 서로 엇갈렸던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김모 원장보다 열흘이나 많게 의료기관 문을 열지 못했다.

허위·부당청구에 대한 처벌 종류

결론부터 말하면 네 가지 법률에 따라 각각의 벌칙이 나오기 때문에 4중 처벌이 된다.

국민건강보험법(제85조)은 업무정지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에 대신(갈음)해 과징금 처분이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의료급여법상 처분은 국민건강보험법과 동일하다.

의료법은 면허취소와 자격정지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제8조 제5호 및 제52조 제1항 제1호)상 허위청구로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 면허가 취소된다. 자격정지(제53조)는 관련서류를 위조·변조하거나 사위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비를 허위청구한 경우인데, 특히 이 경우 '의료업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해 대진의를 통한 진료도 막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형법 등에 의한 형사처벌이다. 허위청구로 간주되면 형법(제347조)상 사기죄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제40조)은 이 경우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부당청구 vs 허위청구 개념 모호 등 문제점

허위청구는 의료법(제53조)상 면허자격정지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 부당청구와 크게 다르다. 그러나 허위·부당청구의 정의에 대해 관련 법령에선 침묵하고 있다. 다만 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선 허위청구에 대해 "악의나 고의로 실제 하지 않은 요양급여 비용을 청구하거나 진료내역과 다르게 청구한 경우"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부당청구는 "법령상 기준을 위반하는 것으로 청구자의 고의·과실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허위청구는 넓은 의미의 부당청구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고의나 과실 여부를 따져 양자를 구분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병·의원은 실사 직원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단순 행정착오에 의해 청구한 경우에도 허위청구를 한 '사기범'으로 몰릴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형벌의 경우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명확성을 요구하듯이 모든 처벌 규정은 원칙적으로 사전에 위법 여부 및 제재 정도를 알 수 있도록 최소한의 명확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허위·부당청구의 개념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수의 처벌 남발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 위배

이와 함께 한개의 행정처분만으로도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자격정지와 업무정지를 병과하는 것은 과잉제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또한 업무정지와 형사처벌을 함께 규정한 것은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기존 판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제재들의 총합이 법 위반을 억지하는데 필요한 정도를 넘어 법익의 균형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비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업무정지와 달리 면허자격정지의 경우 과징금으로 대체할 근거규정 미비로 의료업의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목적·수단이 적정하다고 할지라도 필요한 최소한의 제재를 현저히 상회함으로써 '피해의 최소성'에 위배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현재의 업무정지 및 과징금 부과절차는 적법절차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과징금 액수가 많은 것도 문제다.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일률적으로 총부당금액의 5배(50일 이하 업무정지는 4배)로 규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법의 경우 2배 이내의 과징금을 규정하고 있는 등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형평성을 잃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위 사례2에서 보았듯이 각각의 행정처분 자체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같은 기간의 범위 내에서 처분을 부과토록 개선돼야 한다.

헌법소원·행정소송·손해배상 등 해결방안

국민건강보험법상 업무정지(또는 과징금)과 의료법상 면허자격정지와 같은 이중처분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명확성의 원칙·적법절차의 원칙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므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내는 방안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헌법소원의 경우 청구인 적격이나 보충성의 원칙 및 예외 등 소의 요건을 충족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과징금 납부 기준(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61조)에 대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무원의 책임 의식 부족에 따른 재량권 남용에 대해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청구하는 방안도 있다. 위법한 행정처분에 대해 소송을 내면서 국가뿐만 아니라 공무원 개인에 대해 손해배상의 책임을 묻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건강보험 재정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복지부나 공단·심평원의 입장에선 허위청구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수에 불과한 허위청구를 없애겠다고 의료인 전체를 잠재적 사기꾼으로 보는 것은 영업수행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행위다.

형법에서는 하나의 범죄에 대해 여러 가지 형벌이 적용되는 경우 이를 경합적 관계로 보아 가장 높은 형량을 적용하게 된다. 허위·부당청구의 경우에도 이러한 법원칙이 적용돼 하나의 위법행위에 대해선 가장 처벌수준이 높은 행정처분 하나만을 집행할 경우 행정비용의 절감 등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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