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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9 09:00 (월)
한국 의사의 심장은 뜨겁다.

한국 의사의 심장은 뜨겁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6.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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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영(대전성모병원 인턴)

병원에서 봄을 보내고 이제 여름이 되어간다. 흰색 의사 가운이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지고 병원 생활에 익숙해져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도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고 의사로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각 의국의 막내로서 배움의 과정에 있고 병원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질수록 의사로서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환자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의사라는 것이 좋았다.

필리핀 여성 L씨.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온지 3년이 됐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고단한 생활을 하다가 고열과 두통·복통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FUO(fever of unkwon origin)라는 병명으로 여러 과를 거쳐 진료를 받다 결국 골반염이 추정돼 내가 근무하고 있던 산부인과로 입원하게 됐다.

울고있던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워 넌지시 다가가 말을 걸어 보았다. 처음엔 서먹하게 떠듬떠듬 얘기하기 시작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말이 통하지 않아 누군가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타국인으로 한국에서 사는 어려움이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어쩔 수 없이 한국인에게 시집와야 했던 아픔.

피부색이 다르다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눈길들, 시집 식구들과의 이질감,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부양의 책임감이 신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을 더하고 있었다.

바쁜 교수님들과 전공의 선생님에게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무언가'를 의사로서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대를 다니면서 아니 그 이전 의대 지망을 하면서 가졌던 의사가 가져야 할 그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그녀의 아픔이 내 가슴에 와닿았고 슬픔이 밀려 왔다.

20~30여년 전 한국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서 느꼈던 비애감을 알 수 있을 것만도 같았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그녀에게 적어도 나쁜 인상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해 졌다.

복부 CT촬영으로 골반염으로 인한 'Fitz-Hugh-Curtis Syndrome'으로 진단, 항생제 치료 후 증상은 호전되었지만 그녀가 한국에 와서 받았던 수많은 정신적 상처들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나는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울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픔을 들어주는 일 외에는 말이다.

L이 퇴원하는 날이다. 이제까지 쌓였던 정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You are the only one doctor who understand my personality. 저는 한국 사람이 좋아요.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에 내 가슴은 뭉클해졌다.

환자 진료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치셨던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의사는 환자를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환자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의사라는 직업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따뜻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국 의사의 심장은 뜨겁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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