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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는 앞으로 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죠

최고는 앞으로 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죠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4.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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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회원(송도병원 부원장)

<김현식 회원>

이름

김현식(52)

소속

송도병원 부원장

경력

1977

전남의대 졸업

 

1985

전주예수병원 외과 전공의 수료

 

1989~현

송도병원 근무

 

1997

소화기내시경 전문의 취득

 

 

대장항문외과 세부 전문의 취득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당선

 

"대쪽같이 외길 걷는 선비같은 사람"
박철영 회원(전주 우리들항외과의원장)
김현식 선생님은 제 선배이자 스승님이십니다. 전공의 시절 의국 선배셨죠. 저도 대장내시경을 하고 있지만, 선배님은 일찌감치 대장항문 전문병원에서 대장내시경에 대한 전문적인 영역을 구축해오셨고, 또 선두주자나 다름없으시죠.
워낙 실력이 좋으시니 아마 개원하셨더라도 잘 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병원의사로서 오직 한 길만을 걸어오셨죠.
뿐만아니라 시인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시집을 여러 권 펴냈는데, 김 선생님의 시를 보면 선생님을 잘 알 수 있어요. 누가 뭐래든 자신이 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자 하는 대쪽같은 성품과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재주이죠. 그런 점에서 가끔은 여러가지 재능을 가진 김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요즘은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소식만 지인들로부터 간간히 듣고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선생님의 발전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김현식 회원을 만났습니다>

<현대 한국 시 사전>에는 '김현식'이란 이름 석자가 있다. 바로 김현식 송도병원 부원장이다. 노파심에 굳이 반복하자면 '의료인 사전 또는 의학 사전' 따위가 아니라 '시' 사전이라는 것이다. 김현식 원장은 시집 5권을 펴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시인이다. 그러고보니 그에게선 예술가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예술가, 기자는 코흘리개였을 때 부터 그 세 자를 동경했다. 어린 나이에 '예술가'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 의미를 알았다기 보다 '예술가'라는 말이 풍기는 '독특함''자아도취''고뇌''열정'……이런 것들이 마냥 좋아보였다. 하기는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소질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기 전까지만해도 기자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앗, 그러고보니 김 부원장의 손이 예사롭지가 않다. 유약한 듯 창백한 피부, 가늘고 길다란 손가락, 뭔지 모를 힘을 담고 있는 단단한 뼈마디. 영락없는 피아니스트의 손이다.

"손가락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하핫. 눈치가 빠르시군요. 한 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을 정도로 제법 칩니다. 어쩌다 의사가 됐죠. 그 얘기 하면 밤 새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안이 어려웠어요. 피아노를 계속 할 형편이 못 됐죠. 피아노를 팔았던 날은 제 일생일대 잊을 수 없는 날이었어요. 꼭 무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행위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다짐하던 날이죠.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더라도 피아노를 칠 때 행복한 것처럼요. 물론 의사도 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저의 롤 모델은 음악가이자 신학자이자 의사였던 슈바이처 박사 였거든요."

"이제 슬슬 칭찬릴레이 인터뷰의 본론으로 들어가죠. 박철영 선생님께서 대쪽같은 성품에 대장항문외과에 올인한 채 오로지 한 길로 가고 계시다고 칭찬하시던데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의학은 크게 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광역화와 세분화입니다. 광역화는 특히 개원가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서서히 전문 영역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물론 사회 경제적인 배경이 있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그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외과 전문의에서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로, 또 대장내시경전문의가 되었죠. 명색이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대장항문 전문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당연한 것이지요."

"대장항문 분야에서 꽤 성공적인 병원으로 꼽히는 송도병원에 오랫동안 계셨으니 흔한 말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많은 유혹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을 옮긴다거나 개원한다거나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흔들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곳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송도병원이 처음 청량리에서 문을 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일했으니, 거의 저의 인생을 송도병원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지난 20여년동안 일해왔는데, 아직도 이뤄야 할 것이 있을까요?"
"저는 송도병원이 대장항문 분야에선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오랫동안 일하게 된 데는 제가 순진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나 명예같은 욕심이 없었던 탓도 있고, 이 병원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최고가 되었을 때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조직의 일원으로서는 조직이 누리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고, 개인적으로는 더 실력있고 훌륭한 내시경 의사가 되기 위해 정진해야죠.

"시인이 되신 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의사와 시인, 선뜻 그림이 떠오르지는 않는데요."
"처음 시를 쓴 건 인턴 시절입니다. 그러고보면 의사가 됐기 때문에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네요. 어느 날 우연히 병동에서 환자 처방을 내다가 문득 옆에 있던 백합을 보고 시를 썼던 것이 시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에선 지성과 인간성을 지닌, 생활인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안식을 잃지 않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샤를롯데'란 이상형이 나오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의사가 본업인 저에게 의사가 생활인이 되는 길이라면, 시를 쓰는 것이나 피아노를 치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갖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은 각각 다른 것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줍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는 후세에 명언을 남겼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런데 실은 이 문장을 영어로 하면 'Life is short, Art is long'이고, 당시의 'Art'는 '의술'을 뜻하는 말이었다니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는 뜻이 되겠다. 의술이 예술이라……예술과 의술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왠지 이 명언은 예술과 의술을 넘나드는 김현식 부원장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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