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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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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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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식 회원(서울 요셉의원장)

<선우경식 회원>

이름

선우경식(60)

소속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장

경력

1969

가톨릭의대 졸업

 

1975~1978

미국 킹스브룩 쥬이시 메디컬센터 일반내과학 전공

 

1980~1982

한림의대 교수

 

1982~1987

'사랑의 집' 주말진료소 근무

 

1986~1987

방지거병원 내과장

 

1987~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부설 요셉의원장

 

"의료계가 자랑스러워 할만한 스승이자, 사표"
이중길 회원(부산 성모병원장)
선우경식 선생님은 제가 같은 의사로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스승님입니다. 행려환자들을 위한 자선병원인 요셉의원은 최근에 좀 알려졌지만, 사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87년 선우경식 선생님과 뜻있는 선생님들이 만든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처음에 선우 선생님이 자선병원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한 달이나 갈 수 있을까'', '길게 가면 한 3개월이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날 때까지 처음같은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선우 선생님은 지도 학생들과 무료진료를 나갔다가 의료봉사 활동에 빠져서 교수직도 버리고 요셉의원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얼마전에는 수녀님의 초청으로 동남아시아를 찾았다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가지고 간 여비까지 탈탈 털어서 모두 주고, 정작 자신은 돈을 빌려서 겨우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셨죠. 어찌보면 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 줄 수 있는 분입니다.
선우경식 선생님 같은 분이 한 분 계심으로써, 모든 의사가 그를 보며 힘을 얻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료계의 스승이자, 사표가 되시는 분입니다.

 
<선우경식 회원을 만났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작정을 했다. 이 바닥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으로까지 불리울 정도로 유명한 선우경식 원장. 비록 "내가 탤런트는 아니지 않냐"며 독사진을 게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에게서 한 번에 인터뷰 승낙을 받아낸 탓에 솔직히 조금은 고무돼 있었다.

그래서 절대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 인터뷰이에게 뭔가 내놓으라며 생떼를 부리는 '기자근성'을 발휘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이다.대신 그에게 꼭 두 가지 만은 물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첫째, 당신은 행복한가. 둘째, 외롭지는 않은가.이 질문들은 기자근성을 버린 기자에게 마지막 남은 '딴지걸기'라고 봐도 좋다.  '힘들 게 불보듯 뻔한데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을까''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좋은 사람들이 가족을 대신할 수 있을까' 등은 늘 '훌륭'하게 살지 못하는 보통사람에게는 궁금한 것들이다.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질문이 그의 본질에 더 가까우리란 예상은 어느정도 적중했다. 적어도 이 질문들은 그로 하여금 두 시간 남짓 잠시도 쉬지않고 이야기를 하게끔 만들었으므로.

#1. 행복에 대하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423-57번지. 얇은 외투를 여미고 삶에 찌든듯한 표정의 사람들이 바지런하게 드나드는 곳. 4층짜리 갈색 벽돌로 지어진 요셉의원이다. 이곳에는 하루에 150여명, 1년에 2만명의 환자가 찾아오고, 자원봉사자만 600여명, 의료진은 120여명이 일하고 있다.

요셉의원은 지난 1997년 신림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기고, 양천구 목동에 알코올 중독증환자를 위한 재활센터인 '목동의 집'을, 영등포에 무의탁환자를 위한 시설인 '성모자헌의 집'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 신림10동 산동네를 다니며 학생들과 주말 진료를 다니러 갔다가 발목이 잡혔죠. 그런데 산동네에는 감기환자만 있는 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뜻있는 사람들과 가진 돈을 털어서 신림1동에 100평짜리 건물을 빌렸어요. 밀려오는 환자 탓에 청진기 들고 진료하기도 벅차던 때에 쌀이 떨어졌다며 주방장이 재촉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지요."

자선병원이란 게 그렇다.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며, 진료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멱살 잡히기도 다반사요, 필요한 돈이며 쌀이며 물자를 꾸러 다니기도 여러 날이다.

어디 그뿐이랴. 입원실이 없어 여관 주인을 겨우 설득해 중환자를 단칸방에 눕히고 들락날락하며 환자를 돌보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6개월 할부로 산 약은 떨어져가고, 대표가 김수환 추기경으로 되어 있어 제약회사로부터 "도대체 김수환이 누군데 돈을 안갚냐"며 독촉을 받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김 추기경에게 누도 끼쳤다.

다니던 대학병원에 3년만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뛰쳐나온 선우 원장은 3년이 채가기도 전에 하루에 수십 번씩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아무 것도 모르고 용맹스럽기만 해서 뛰어들었으니 지칠 만도 했죠. 환자 보는 것만 알았지,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옷 입히는 것까지 할 줄 알았나요? 5년은 해봐야 뭐가 뭔지 안다는 치과의사의 말에 '까짓 것 하는 데까지 해보자'하고 오늘까지 온거죠."

고생끝에 낙이 오고, 밑바닥까지 가면 오를 일만 남는다는 말처럼 그는 5년만에 비로소 자신감을 찾았다. 이 사업이야 말로 '의료사업의 꽃'이란 생각이 든 것.

"내가 여기서 버리면 누가 하겠나 싶어 도망 가려다 마음을 돌렸죠. 이제는 봉사자들이 나가라고 할까봐 말부터 조심 합니다. 이 나이에 그만두고 갈 데가 어디있겠습니까. 하하."

#2. 외로움에 대하여

지금은 '한국의 슈바이처'란 말까지 듣는 그이지만, 사실 의사가 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의대 본과 시절 학교를 뛰쳐나왔다가 다 큰 나이에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가기도 했고, 인턴 시절 해군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를 바꿔 놓은 건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를 따고 막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때.

"병원이란 곳이 싫었어요. 돈없는 사람은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 싫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것도 싫었고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을 진료하면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그때부턴 흥분돼서 잠이 안 오더라니까."

젊고 의욕이 넘치던 시절부터 시작한 일이 어느덧 환갑의 나이를 넘긴 지금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돈을 벌기는 커녕 빚을 지기 일쑤니 부모님 공양을 아우들에게 넘긴 지 오래이고, 동료들이 결혼이다 양육이다 하나둘씩 떠났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결혼을 꼭 젊을 때 하란 법 있나"라며 기자의 입을 막는 그는 거친 환자들을 보느라 샌님같던 말투가 투박해졌다며 마치 그런 변화가 훈장인양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외로울 시간이 어디있습니까. 하루 종일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짝 긴장하고 있다보니 힘들어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는걸요. 하지만 요셉의원이 있어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점에서는 외롭지요."

이 정도면 됐다 싶은데도 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아직도 환자들을 들쳐업고 병원들을 찾아가도 입원시키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요셉의원은 환자들에게는 문턱이 높지만 의사들에게는 문턱이 높단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나처럼 살겠어요? 나도 좋아서 한 일이 아닌데요. 다만 몇 명쯤은 힘들고 어려워도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 아시죠? 제가 의대 졸업할 때 그 선서했거든요. 그게 인간이 만든 건데 지키는 인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되죠. 의사는 아무리 어려워도 베풀어야 하거든요."

 

무책임하겠지만 기자는 인터뷰 전에 마음 먹었던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의 판단에 맡길까 한다.

"이거 너무 힘들어서 언제든 후임자만 나타나면 그만둘 생각"이라고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 또다른 재활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는 그를 행복하다 할까, 불행하다 할까. 수많은 봉사자와 그를 잊지 않고 찾는 환자들에 둘러싸인 그를 처자식이 없다는이유로 외롭다고 할까, 외롭지 않다고 할까.

기자는 그의 바램대로 그를 우상화하거나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렇게 부르고 싶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없이 낮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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