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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의사 되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의사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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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0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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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회원(부산의대 내과 교수)

<김용기 회원>

이름

김용기(56)

소속

부산의대 내과 교수

경력

1974

부산의대 졸업

 

1979

부산대학교병원 내과 전공의 수료

 

1982 ~

부산의대 내분비대사 전임강사, 교수

 

1996 ~ 1997

부산의대 부학장

 

1997 ~ 2000

부산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

 

2003 ~ 2005

부산의대 학장

 

2005 ~

부산대학교병원 내과장

 

"체구는 작지만 인품은 누구보다 큰 사람"
유형준 회원(한림의대 내과 교수)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 땐, 흔히 그 사람이 무언가 나에게 이득을 주거나 아니면 큰 해를 입혔거나 해야 하는 법이죠. 그런데 저에게 김용기 교수님은 특별히 주는 것 없이도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입니다. 다음 칭찬할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퍼뜩 생각이 난 분이 바로 김 교수님입니다.
김 교수님은 자그마한 체구에 바다보다 넓은 마음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성품을 자랑합니다.사실 의학자들은 보통 자신의 학문 분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술 연구 활동에서는 자기 것, 또는 자기 편을 따지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김 교수님은 자신에게 해가 될 지라도 치우침 없이 항상 공평한 입장에서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편을 따지거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지지 않고, 정말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멋있는 선생님이죠.
요즘은 점점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잖아요? 요즘 세상에 원칙과 상식대로 사는 사람, 김 교수님이야 말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죠. 제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인데, 한 번 만나보실래요?
당뇨캠프에서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용기 교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다. 동시에 김용기 교수의 제2의 고향이다. '부산시 아미동 10가 1번리'를 '우리집'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는 군의관 시절과 해외연수를 갔던 시간을 제외하곤 지난 40여년간 쭈욱 부산대병원 언저리를 맴돌았다. 어린시절 '선생님'이 되길 꿈꾸던 꼬마는 그렇게 아미동 10가 1번리에서 꿈을 현실화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법관이 되라고 하셨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영향을 받았었나봐요. 그렇게 사범대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날 군의관에게 신체검사를 받게 됐어요. 그리고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쨌든 의사이자 교수가 됐으니 선생님이 되겠다던 꿈을 이룬 셈이다. 김 교수와 '학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지난해까지 학장을 맡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짓는 표정으로 학교 생활이며 제자들 이야기를 하는 그는 물만난 고기처럼 연신 싱글벙글이다.

"학장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점은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거에요. 물론 평교수로 있을 때도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학장은 전체 학생들과 만나야 하니까요. 빡빡한 학사 일정과 국가고시를 모두 치러내야 하는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후회할 일이 생겨선 안되겠다는 마음에 많이 다그치기도 했죠. 제자들과 씨름을 했다고나 할까요? 하하."

싸우면서 정든다고 했던가. 유난히 학장을 지내며 만났던 제자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김 교수는 의대를 졸업하고 막 인턴이 된 한 제자가 보내온 짤막한 편지를 굳이 꺼내 기자에게 읽어준다. 그러면서 모든 감정이 응집된 한 마디 "참 기분이 좋습니다"란 말을 반복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그에게선 학자로서의 절도가 물씬 느껴진다. 애정과 훈육, 공평함과 자존감, 열정과 관록 등의 상반된 성질들을 그는 잘 다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주위에서들 그를 '적이 없는 친구'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환자들과 함께 당뇨 체조를 따라하는 김용기 교수.

특히 성공한 학자에게 있어 자신의 학문과 연구 성과는 자존심과 같아서 누군가 그 영역을 치고 들어올려 치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움츠러들기 보다는 포용하는 편이니 주위의 호평은 당연하다.

"누가 저에 대한 혹은 저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얼마나 고마운지요. 수십년 동안 살아온 방식이 다른데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다른가보다'하고 말하면 상대방이나 나나 그 자리에 머물고 말겠지만, 나의 발전을 위해 '다르지만 이건 이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준다면 그 사람의 용기는 박수 받을 만 하지요. 지적을 받으면 지적이 아니라 애정으로 들립니다. 자신의 흠을 인정하고 고칠 것은 고치는 게 상식 아닙니까."

뭐니뭐니해도 다시 태어나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김 교수에게 환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당뇨'로 꽤 유명한 의사인 탓에 그를 찾아 오는 환자들이 만만찮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슬쩍 운을 떼보지만, 가당치않다며 연신 손을 가로젓는다.

"유명하긴요 무슨, 오랫동안 한 곳에 있으니까 환자가 많은 건 당연하고, 한 30년 진료하면서 배운 경험이 축적된 탓이겠지요.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게 많고, 대외적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명의라고 할 수 없지요. 진정한 명의는 환자를 진정 내몸처럼 돌볼 수 있고, 환자를 병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명의의 반도 못 따라갑니다."

수십년간 학교를 위해 일생을 바쳐온 그에게 어찌 철학이 없을손가. 그런데 교수로서, 학자로서, 의사로서 그의 삶의 철학을 말해 달라며 조르는 기자에게 그는 오히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현명하다'며 운을 뗀다.

"제 나이 또래 교수의 역할은 직접 연구에 뛰어들기 보다는 수퍼바이저로서 활동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또 대학병원 의사로서는 개원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가 숙제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언제까지 얼마나 그 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의 정년이 65세이기는 하지만, 뒷방 늙은이처럼 정년만을 바라보고 눌러 있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내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차라리 개원을 해서 후학 양성을 위해 기부하고 싶어요. 그것이 내가 학교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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