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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의료지원 속사정 알고보니···

성폭력 의료지원 속사정 알고보니···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5.12.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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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료지원 병의원 인식전환만으론 한계
현실적 인센티브로 지원 효율화 꾀해야

▲ 성폭력 응급키트 사용방법

성폭력'전담'의료기관은 전국에 총 292개가 있다. 그러나 이 중에 성폭력 치료 및 진단 실적이 있고, 성폭력피해자가 우선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의료기관은 매우 드물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과 경제적인 논리를 쫓는 의료기관에 1차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그럴까?

성폭력 피해자 진료 왜 꺼리나?

현재 성폭력 피해자의 모든 치료비용은 국가가 전액 부담(국비:지방비=50:50)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 시스템은 피해자가 먼저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한 후 지자체에 진단서를 첨부해 따로 진료비를 청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종종 성폭력 피해자가 치료를 받은 후 진료비 청구를 의료기관에 미루는 경우도 발생하는 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기관과 피해자 모두 현행 지원 시스템에 불만을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전담의료기관을 신설하고 전국 34개 지방공사의료원과 협력해, 초기 진료부터 진료비를 공제해주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손인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건국대병원 산부인과)는 "복잡한 외래나 밀려드는 환자 틈바구니에서 성폭력 환자들을 제대로 진찰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며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전담인력을 따로 배치해야만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데, 현재로선 의료기관에 부담이 주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성폭력 피해자 진료를 꺼리는 또다른 이유는 피해자 진료에 다른 환자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는 2002년부터 의료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의 증거채취를 위해 필요한 도구인 '성폭력 응급 키트'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데, 이 키트를 모두 활용하는데는 적어도 40분에서 많게는 2시간까지 소요된다. 키트를 사용할 경우 별도의 처치료 7만5000원이 지급되지만 의료기관이 들인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보상이 되지 못한다는게 대다수 의사들의 의견이다.

나중에 성폭력 사건이 법적인 공방으로 갈 경우, 의사가 법정 증언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진료에 차질을 빚을 우려도 있다. 또 대부분의 의사들이 성폭력 피해자 진료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홍순기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문의사(서울 청담마리산부인과)는 "현재의 성폭력 응급키트는 미국의 법의학에서 사용하는 키트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임상의사들이 사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며 "모든 피해자에게 모든 키트를 적용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증거채취를 통해 피해자가 빨리 적절한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동혁 여성가족부 사무관은 "실적없는 의료기관을 대폭 정리하고, 적재적소에 성폭력전담의료기관을 배치해 의료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진료비 지원예산을 확대하고 성폭력 응급키트를 A/B형으로 나눠 절차를 간소화해서, 의료지원의 내실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인센티브 적극 고려해야

요즘은 많은 의료기관들이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지역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사회의 성폭력 피해자 진료에 대해 '돈이 안된다''번거롭다'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의료기관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한다는 인식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성폭력 의료지원이 이뤄지려면 의료기관의 인식 전환만을 외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보다 많은 의료기관이 동참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성주영 사회복지사는 "여성폭력은 사회적인 문제인 만큼, 의료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여러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며 "성폭력 피해자 진료에 대한 의료기관의 희생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세제혜택이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적절한 보상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피임이나 임신중절 등 의료적인 부분"이라며 "피해자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갖춰지는데 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의 법적 부담감을 덜기 위해선 한국 실정에 맞는 통계자료나 활발한 관련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들이 앞장서 여성폭력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응급키트 '이렇게 사용하세요'

 

성폭력 응급키트는 A4용지의 크기의 흰 박스로 구성돼 있다.

의료기관은 키트 안에 내장된 진료기록지 외에도 일반환자와 같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무기록을 별도로 작성해야 하는데, 별도의 의무기록 양식이 필요할 경우 '학교·여성폭력 피해자 One-Stop 지원센터'(☎02-3400-1700, 1117)에 요청할 수 있다.

키트는 필요로하는 의료기관에 무료로 배포되며, 신청은 의료기관이 소속된 지자체의 가정복지과로 하면 된다.

키트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고소건 및 사건 조사를 위해 유용한 자료로 사용되므로 몇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반드시 시작 전에 피해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후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의 성기나 그밖에 외상 등 피해자에게 필요한 자료들은 사진으로 촬영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사진촬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또 나중에 키트가 법정 증거자료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병원 관계자에서 경찰 관계자로 전달하는 시각(키트 앞면에 작성토록 되어 있음)을 오차없이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의료지원부터 수사까지 한자리에서 OK"

[인터뷰]조금희 학교·여성폭력피해자 One-Stop 지원센터 팀장·경찰

▲ 조금희 팀장

'학교·여성폭력피해자 One-Stop지원센터'는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모든 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올해 8월 31일 처음으로 서울 국립경찰병원에 마련됐다. 국내 1호 원스톱 지원센터의 조금희 팀장을 만나 센터의 역할 및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센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센터는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학교폭력 등의 피해자에 대해 24시간 지원한다. 피해자가 방문하면 먼저 상주 여성경찰관과 상담하고 경찰병원 의료진의 우선적인 진료를 받는다. 또 피해자가 경찰 수사를 원하면 즉석에서 조서 작성을 진행하며, 장애인이나 아동 피해자의 경우 진술녹화도 가능하다. 필요할 경우 무료 법률지원단의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조만간 원격지 경찰서에 있는 가해자의 얼굴을 곧바로 확인하는 서비스를 운영, 직접 대질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을 예정이다.

-원스톱 서비스가 실제 도움이 되나?

그동안 의료기관에서 진료 따로, 상담소에서 상담 따로, 경찰서에서 수사 따로 진행해 왔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나 보호자가 몇 일에 걸쳐 여기저기 전전긍긍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젠 한 곳에서 모든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부산의료원, 청주의료원, 강원대병원, 안동의료원, 인천의료원, 동강병원, 전북대병원 등으로 원스톱 지원센터를 확대하고, 내년에는 지방경찰청 소재지 6곳에도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의료기관이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여성폭력과 관련된 모든 내용에 대한 문의가 가능하다. 또 피해자가 원한다면 센터와 연결시켜주는 것도 좋다. 이밖에도 117학교여성폭력피해자 홈페이지(www.117.go.kr)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성폭력은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의료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보다 많은 의료기관이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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