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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혈액사업 인프라 구축 시급하다

국내 혈액사업 인프라 구축 시급하다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11.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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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혈액사고, 검사상 오류인가 과학의 한계인가
전문성 확보, 첨단검사법 기기 도입 절실…'투자'가 관건
전문인력 태부족…인력 확보하려면 수가 5배 인상 불가피

"오염된 혈액 유통 사고는 감염 혈액을 적십자사가 잘못 검사(과학적 한계 아닌!)해서 생긴 문제다.최초 헌혈을 했을 당시 혈액검사에서 '누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검사상의 '실수'를 한 것이다."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잇단 혈액사고는 대부분 2004년 이전에 발생한 것이 올해 밝혀진 것이다.이는 올해 2월부터 첨단 검사법인 핵산증폭검사(NAT)를 도입해 발견한 것으로, 당시 효소면역검사법(EIA)로는 잠복기의 에이즈혈액을 발견해내는 데 과학적인 한계가 있었다."(조한익 혈액관리본부 본부장)

지난 9월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 시중에 유통되고 한 환자에게 수혈까지 된 사건이 밝혀지면서 혈액관리사업이 다시 한 번 집중조명을 받았다.더군다나 지난해 발생한 일련의 혈액사고 및 적십자사의 회계부정 사건과 맞물려 복지부내에 혈액정책과를 신설하고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똑같은 사건이 반복된 것이어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에대해 시민단체 및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잇단 혈액사고가 "혈액 검사기관인 적십자사의 검사오류 및 미흡한 오류보고체계로 인한 것"이라며 적십자사의 책임론을 강조했다.반면 적십자사 및 학계에서는 "이번 혈액사고는 혈액검사에서 적발해 낼 수 없는 잠복기(항체 미형성기)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라며 과학의 한계라고 못박았다.

검사 실수로 인한 우연한 사고인지 과학의 한계로 인한 필연적인 사고인지를 짚어보고 국내 혈액관리사업 시스템을 점검해본다.  

NAT 도입, 잠복기 줄였지만 완전극복 어려워
미국 등 NAT 도입 국가 수혈로 에이즈감염확률 존재

지난 4월 한 헌혈자가 인천혈액원에서 헌혈을 했는데 HIV 양성반응이 나왔다.조회결과 이 헌혈자는 지난 해 12월에도 헌혈을 했던 기록이 있었지만 당시 혈액검사는 음성반응인 것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재검사를 해보니 양성반응이 나왔다. 문제는 이 헌혈자의 혈액이 시중에 다량 유통되고 있는데다 한 환자에게 수혈까지 된 것.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시민단체 등에서는 일제히 적십자사가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등 채혈 및 혈액관리에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당시 혈액이 잠복기여서 어떤 검사방법을 쓰더라도 음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4개월이 지난 후 같은 검사법(당시의 검사법인 EIA)으로 검사해도 마찬가지로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같은 검사법에서의 결과가 양성이 나왔다는 것"이라 지적하고 "따라서 12월 최초의 혈액도 잠복기가 아니라 활성기였다는 뜻이므로 적십자사가 검사를 잘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지난 해 12월 실시한 검사법은 EIA로, 올해 2월 도입한 첨단 검사법인 NAT에 비해서는 정밀도가 떨어지는 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김현옥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연세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EIA 검사법은 NAT 검사법에 비해 잠복기가 길어 검사의 한계가 더 크다"며 "당시 EIA 검사법에 의해서는 '약양성'이 나왔는데 이는 어느 누가 검사를 실시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적십자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라도 감염된 지 4주~12주 사이의 잠복기 동안은 검사를 해도 감염 여부를 밝혀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물론 NAT 검사법은 에이즈 잠복기를 22일에서 11일로, C형 간염은 84일에서 23일로 대폭 단축했지만 여전히 잠복기 동안에는 감염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는 남아있다.

미국 혈액은행협회(AABB)가 지난 5월 발표한 '수혈로 인한 질병 감염 위험율'에 따르면 일찍이 NAT 검사법을 도입한 미국 내에서도 수혈용으로 공급되는 혈액 200만 유니트당 1명씩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있다.또 B형 간염의 경우는 15만 유니트당 1명씩, C형 간염은 160만 유니트당 1명씩 감염 위험이 있으며 말라리아도 수혈용으로 공급되는 1만 유니트당 1명 정도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한마디로 아직까지 현대 의학으로는 에이즈 등의 질병을 100% 잡아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과학 한계 극복할 혈액관리사업 인프라 미흡
시약·기기 낙후…전문 인력 턱없이 부족  

문제는 국내혈액관리 시스템이 턱없이 열악해 이러한 과학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다.가장 먼저 지적되는 점이 인력·시설·장비 등 혈액원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

현재 국내 검사혈액원은 총 7곳으로 그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 검사체계가 집중화되지 못하고 있어 혈액원별로 검사체계가 다른 등 표준화가 안 돼 있다.특히 필수 장비인 NAT 장비가 3곳에만 설치돼 있어 안전관리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 해 12월 발생한 에이즈감염혈액 수혈사고 당시 사용됐던 A사 검사시약의 경우, 수혈연구원의 시약검증 과정에서 지난해만 3차례나 흡광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바 있다"며 검사시약의 부실함을 지적하기도 했다.또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은 "적십자사의 혈액검사기기 총 178개 중 41개(23%) 기기가 적정교체시기인 5년을 넘게 사용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기기 및 검사 장비의 노후화를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 이는 우리나라와 혈액사업구조가 유사한 일본과 비교해보면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과 우리나라 혈액사업 통계에 따르면 전체 헌혈자수는 우리나라가 250만명이고 일본은 우리나라의 2.25배인 562만명에 달한다(2003년 기준).그러나 혈액사업에 종사하는 적십자사 인력은 우리나라가 1596명, 일본이 7895명으로 일본이 5배나 더 많다.  

특히 의료인력의 경우 대한적십자사는 의사가 공중보건의(6명)를 포함해 34명인데 반해 일본은 429명으로 무려 12.6배나 높다.약사는 대한적십자사의 경우 단 1명이 근무중이나 일본은 484명이 근무하고 있다. (<표> 참조)

                         <한일적십자사 혈액사업 종사자 인력>

 

전체인력

의사

약사

검사인력

간호사

행정요원

기타

한적

1596

34

1

358

553

279

371

일적

7895

429

484

941

2244

3381

416

* 일적 2004년 3월말 기준, 한적 2005년 9월 기준
* 한적 의료진에 공중보건의 6명 포함

김현옥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은 "현재 헌혈의 집이 97개, 단체 헌혈 장소가 90여개임을 감안한다면 적십자사의 인력은 헌혈자의 건강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특히 고급인력을 써서 문진을 강화하라는 비난이 많은데, 말이야 의사가 문진하면 좋겠지만 인력 수급 상황이 열악한 현실에서 헌혈자 문진 등 관리는 훈련받은 간호사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뒤늦게 재정투자 확대…혈액관리사업 '꿈틀'

다행히 지난 해 혈액사고가 불거진 직후 정부는 복지부내에 혈액정책과를 신설하고 혈액사업 관련 재정을 확충하는 등 혈액안전관리사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범정부 차원의 혈액안전관리 대책이 세워진 것은 혈액사업 3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혈액안전관리 대책이 세워지기 전까지 복지부는 혈액사업을 적십자사에 위탁 운영해 놓고 정작 해당부처인 복지부내에는 혈액 담당 사무관을 단 1명만 배치해 놓은 실정이었다. 복지부 장관을 포함한 현직장관 7명이 속해 있는 적십자사 중앙위원회를 사무관 1명이 관리·감독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국가 투자가 미흡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지난 1991년부터 2004년까지의 혈액사업에 대한 국고지원 내역에서 알 수 있듯이(<표 참조>), 그간 공공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혈액사업에 대한 국가 투자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혈액사업(대한적십자사)에 대한 국고지원 내역>

 

1991

1992

1995

1996

1997

1998

2003

2004

국고지원액

10억원

4억원

8억원

8억원

8억원

8억원

38억원

35억원

*억원 단위에서만 표기함

이에대해 복지부는 지난 해 혈액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향후 5년간 1400억원의 국고지원을 하겠다고 밝히는 등 혈액안전관리사업을 도외시한 데 대한 수습에 나섰다. 혈액수가 인상에 의한 운영비 증액 1700억원 등을 포함하면 총 3120억원이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지원되는 것이다.

복지부 혈액정책과 정례헌 사무관은 "그동안 혈액관리사업에 관한 정부 투자가 미비했던 것은 혈액관리사업이 다른 사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며 "일련의 혈액 관련 사건이 불거지고 혈액관리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다각도로 혈액관리사업 증진을 계획하고 있다. 편성한 예산은 삭감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혈액검사체계도 개선되기 시작했다.검사과정을 이중삼중으로 확인·감시하는 시스템인 델타확인시스템과 이중확인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최신 검사법인 핵산증폭검사(NAT)를 도입, 잠복기를 대폭 줄였다.또 모든 혈액의 검체를 10년간 보관하는 검체보관시스템(Look-back system)을 구축해 수혈부작용 발생시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처가 가능케 됐다.7곳으로 분산돼 있는 검사혈액원도 2006년까지 3곳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수가 체계 개선 등 과제 남아

문제는 턱없이 낮은 혈액관리수가다.혈액관리수가는 지난 1998년부터 올해 2월까지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아 혈액사업의 개선비용을 지원하지 못해왔다.매년 혈액관리수가를 갱신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해볼 때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더군다나 전문인력을 확보하려면 수가를 5배나 인상해야 할만큼 현행 수가체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다.  

조한익 혈액관리본부장은 "혈액 수가는 그 나라의 사정에 따라 책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우리나라의 혈액수가는 너무 낮다"며 "혈액 제제별 수가체계도 개선돼야 하며, 대략 현재보다 3배 정도의 인상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수가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키 위해 한국능률협회에 의뢰해 경영평가 용역을 줬으며,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말 정부에 수가체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복지부 혈액정책과 정례헌 사무관은 "혈액수가는 수년간 동결된 상태였지만, 여러차례 수가인상 요청이 있었으므로 다각도로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의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 등으로 국내 혈액관리사업이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혈액수가체계 확립과 더불어 적십자사의 조직혁신 등 달성해야 할 과제는 많다.

조한익 혈액관리본부장은 "현재 혈액관리는 전환기"라며 "적십자사는 혈액사업을 전담하는 혈액관리원(가칭)을 세우기로 정부에 건의한 상태며 이를 토대로 혈액안전관리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십자사는 늘어난 재정을 검사시설 통합과 자동화 개선에 232억, 검사시스템 운영에 520억, 혈장보관소 건립 운영에 80억, 정보시스템 개선에 7억, 안정적인 혈액공급을 위한 헌혈의 집 확충에 1100억, 등록헌혈제도 활성화에 790억, 혈장 공급소 신설에 381억원을 각각 투입할 방침이다.  

김현옥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은 "프랑스나 일본 등 외국에서는 20년전에 이미 혈액사고를 겪으면서 발전해왔다"며 "정부가 국고지원을 확대하고 적십자사도 내부 혁신을 꾀하고 있는 등 국내 혈액사업도 인프라를 구축해가고 있으므로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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