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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또 존폐기로에 선 응급의료기금(1)

[기획]또 존폐기로에 선 응급의료기금(1)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5.06.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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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기금이 또 다시 응급 상황을 맞았다.

정부가 22일 응급의료기금을 폐지하고 응급의료에 소요되는 예산을 일반회계로 전환키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응급의료기금은 조성된지 2년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됐다.

정부는 지난 3월에도 기금을 폐지하기로 했다가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정부는 기금이 일반회계로 전환되더라도 사업이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응급의료기금을 없애는 것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시스템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폐지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폐지와 존치, 다시 폐지로 오락가락하는 응급의료기금. 무엇이 문제이고 대책은 없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1.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실태
 
2. 응급의료시스템 관리 및 재정의 문제
 3. 각국의 예를 통해 본 바람직한 응급의료재원 마련 방안
 4. 인터뷰 - 이 근 응급의학회 이사장

 

①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실태

당뇨병을 앓고 있는 A씨(53·남)가 집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것은 올 3월 초.  원인은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였다. 다행이 함께 있던 아내가 신속히 119에 신고해 10분만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아내는 구급대원들이 남편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구급차에는 저혈당 환자의 구급처치를 위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행히 A씨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무사히 응급조치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A씨 부부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을 쓸어 내린다.

10년째 천식으로 고생하던 B군(남·16세). 학교에서 운동을 하다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혼수상태에 빠졌다. 가방속에 MDI가 있었지만 친구들은 알 턱이 없었다. 누가 신고했는지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 B군을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B군은 결국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119 구급차에는 천식환자에게 꼭 필요한 기관지확장제가 준비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구급차는 신속히 도착했으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4년 119 구급처치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구급처치가 매우 중요한 6개 증상(심정지·심인성흉통·저혈당·저혈량성쇽·천식발작·다발성외상)에 대한 처치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정지 환자의 경우 기관내 삽입, 정맥로 확보, AED사용 등 '치료적 구급처치'는 6% 미만에 그쳤다. 저혈량성 쇽 의심 환자에게 필요한 정맥로 확보 및 수액투여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저혈당 의심 환자에게 포도당을 투여한 경우도 없었으며, 천식발작 환자에게 기관지 확장제를 흡입시킨 케이스도 전무했다. 이름만 구급차지 환자를 실어 나르는 역할 밖에는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1999년)에 따르면 응급의료센터에서 사망한 외상환자 중 환자 이송시 처치미비로 인한 사망이 1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응급환자 100명중 약 14명은 구급차 안에서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상황의 원인은 구급차 보다는 구급 인력쪽에 있다. 2002년 현재 119 구급대의 전체 구급차 중 약 56.5%가 중증 응급환자를 처치할 시설 및 장비를 갖춘 특수구급차로 구성돼있다.

 그러나 119 구급대원 중 법적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1급 구조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13.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2003년 기준). 응급구조사·간호사 등 유자격인력도 절반을 간신히 넘긴 53.7%에 그쳤다.

환자가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응급실 사망 환자 중 응급의료기관 내에서의 진료 미비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52.3%나 차지(한국보건산업진흥원·1999년)한다.

일선 응급의료센터의 질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응급의학 전문의가 4명이상, 지역응급의료센터에는 2명이상 배치돼야 한다.

그러나 전담 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은 응급의료센터가 전체의 약 40%나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1997).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조사(2001년)한 결과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치료를 받은 환자의 비율은 불과 10.9%에 그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응급의료기관수가 포화상태에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응급의료센터급 이상 응급의료기관이 인구 43만명당 1개소로 선진의 100만명당 1개소에 비해 약 두배 가까이 많다.

 2004년 현재 111개의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수성 및 실제 환자의 응급의료 이용량을 고려한 분석 결과(보건산업진흥원·2004년) 전국적으로 88개소가 화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23개소는 초과 공급된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응급의료센터가 양적으로만 풍족할 뿐,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중증응급환자를 처치할 만한 인력과 시설,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소아응급·화상·독극물 등 다양한 응급의료에 대처하기 위한 전문 응급의료기관이 절대 부족하다. 2005년 현재 독극물 전문응급의료센터와 외상전문응급의료센터는 각각 1개소에 불과한 형편이다.

이같이 부실한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집권초기에 발표한 '공공의료 확충 종합대책'에서 응급의료센터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예방가능한 응급실 사망률을 2007년까지 20% 이하로 개선할 수 있도록 응급환자 이송·진료체계르 구축하고 오는 2009년까지 응급의료센터의 인력·시설·장비 등 법정기준을 완비토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응급의학전문의 등 전문의료인력에 의한 24시간 운영체계를 2009년까지 100% 구축하도록 육성·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재원마련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다음호에서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시스템의 관리 및 재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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