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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법적 측면

[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법적 측면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3.03.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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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고려대 법대 교수)

김대중 정부의 개혁과제 평가-법적 측면



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아마 통일정책과 더불어 가장 주목받고 논란을 많이 일으켰던 분야에 속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그 이전의 정부정책과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고유의 개혁과제들을 내놓은 바 있다. 의료보험조합의 통합이나 보건체계와 의료체계의 통합과 같은 통합정책 그리고 의약분업과 같은 직역의 분리정책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정책들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 위에서 구조조정이라는 IMF체제의 ‘정언명령’이 보건의료영역에까지 밀려들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한국사회의 의료문화적 전통을 외면한 측면이 있었다. 그로 인해 정책의 본래목적을 달성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공공의료보험의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부작용까지 낳았다.

또한 의료보험의 재정위기는 보건의료체계 자체의 기능장애를 넘어서 기능상실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는 두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는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지나치게 ‘관료적 권위주의’로 아로새겨졌고, 둘째는 의약분업을 강제적으로 관철함으로써 빚어진 의료보험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건의료체계를 사회보장체계를 넘어서 사회공학적 기획 아래, 그것도 ‘권위적 합법주의’의 권력작용을 통해 강제로 편입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부 때부터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정책들은 모두 보건의료체계를 모든 국민의 생존을 공평하게 배려하는 사회보장체계로 만들려고 하였다.
사회보장으로서 의료보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료사회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훼손됨을 무릅쓰고, 정부는 의료인의 직업적 인격을 권력적으로 통제하였다.

이를 테면 의료행위의 의미도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판례나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심지어는 수사기관의 임의적 결정에 따른 수사나 심지어 함정수사와 같은 불법적인 권력적 통제 속에서 관료주의적으로 구성되어 왔다.

그 결과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직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초개념인 의료, 즉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치료적 대화가 임상현장에서 심각하게 왜곡되는 사태를 경험해야만 했다.
김대중 정부가 의욕적으로 실시한 의약분업은 이러한 왜곡을 더욱 강화시켰다.

강제적인 의약분업의 실시를 통하여 의료인들이 스스로 직업정체성을 변화시켜나갈 기회를 잃어버렸다. 의료인들은 의료인격의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의약분업정책의 틀에 자신들의 의료인격을 억지로 꿰맞춰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도, 비록 그 본래의 목표는 선진 보건의료체계를 기획하는 것이었지만, 의료체계가 왜곡되어 있음으로 인해 본래의 기획을 현실화할 수 없는 상징적 입법의 차원에 머물게 되었다.

또한 사회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시절 새롭게 태어난 의료보험법인 `국민건강보험법'은 모든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편입하고 관료적으로 정해진 의료행위 이외의 다른 행위를 할 수 없게 하였다.

이 관료화된 의료시장정책은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의 실시를 통하여 탈법적인 민간의료시장의 경제적 수익성을 고갈시키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의료보장정책은 의료시장의 사회화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행정관료들은 의료행위의 규범을 권위적으로 구성해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을 모두 행정관료가 권력적으로 정했고, 그렇게 정해진 의료행위의 표준에서 벗어난 진료는 불법적인 것으로 금지되며 위반 시에는 행정법상 과징금이나 형사제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권위적 관료주의에 의해 짜여진 의료규범 속에서 의료인들은 ‘적정진료’의 요청과 ‘의료보험체계에 적합한 진료’의 요청이 서로 충돌하는 아노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환자에 대해 탈법적 진료나 불법적 진료를 점차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바와 같이 의사들의 직업윤리적 책임의식도 점점 마비되어가고 있다. 또한 의료문화의 변질도 가속화되었다. 예를 들어 환자도 의사를 신뢰하지 않고, 도리어 의사를 시험하는 태도로 진료에 임하는 경향은 더욱 증가되었다.

그러니까 의사와 환자 사이에 펼쳐져야 하는 치료적 대화의 장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 전략적 행동으로 마주하는 대립의 장으로 변질된 셈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사회보장적 의료체계의 기획을 이전 정부보다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 새로움이 있었다.

그것을 필자는 ‘사회공학적 기획’이라 부르는데, 건강보험재정안정화종합대책안이 바로 그런 기획의 설계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기획은 대선공약이었던 의약분업의 강제적 관철이 가져온 다양한 역기능적 현상, 특히 보험재정의 심화된 위기를 극복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보험재정위기의 극복’이라는 지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전략을 감행하였다.

허위·부당청구를 확인하기 위한 마구잡이식 수진자조회, 건강보험증의 전자카드화 입안, 요양급여거부의 엄격한 금지 등 의료인격에 대한 통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정책들이 등장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종합대책안은 가치문제, 즉 의료보험료율의 적정성이나 의료시장체제의 정당성 문제들을 제쳐 놓은 채, 중앙정부가 수입증가방안과 지출감소방안의 실시여부와 강도를 조절하는 핵심기구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보험재정정책은 보험재정이 수지균형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보험재정의 유·출입밸브를 공학적으로 조절하는 계량적 조절의 메커니즘 속에 완전히 예속되어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행위는 더 이상 환자의 질병치료를 위한 의사의 직업윤리적 의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학적으로 조절된 기능적 단위’가 되어버렸다.

중앙정부가 직접 자신의 기획을 규제와 통제 및 처벌의 수단에 의해 집행·관철하는 경향 속에서 국가는 의료사회의 구성원들을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얌전한 시민’, 또는 ‘경제적 동기에 따라 행위를 조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한다. 또 구조적 왜곡에 대한 비판적 공론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의사파업에 대해서도 김대중 정부시절의 국가는 합법성이라는 이름으로 봉쇄한 바 있다. 이는 공론경쟁의 자유를 질서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제한하는 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법정책이 가져온 병리적 현상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료인격, 의료행위규범, 의료문화가 모두 대화적으로 재생산되도록 하는 법제도를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치료를 향한 대화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치료적 대화상황이 마련되도록 법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고, 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도 관료적으로 정하는 대신 대화적 구조의 의료체계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개혁의 과정에 의료관계의 모든 주체들이 참여하는 민주성도 더욱 높여 나아가야만 한다. 새 정부의 새로운 참여복지정책은 이처럼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가졌던 오류와 결함을 반성하고, 자율과 반성, 협상과 타협을 존중하는 대화적인 보건의료체계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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