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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과오 현황과 보험위기-11

미국 의료과오 현황과 보험위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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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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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설명의무와 미국 원정

 
지난 6월 10일자(2002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의료사고로 딸을 잃은 일본여의사 K(원고)가 자기 나라에서 '설명의무'가 무시되는 일본의료계 현실을 개탄한 기사가 한 지면을 차지했다.
1992년 일본 구주에서 남편과 같이 개원하고 있는 K의사의 17세난 딸이 두개골을 열고 뇌종양제거수술을 받았으나, 며칠 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수술 전 알려준 뇌종양진단은 아마도 Craniopharyngioma일 것이라고 했으나, 수술시 진단은 Prolactinoma이었다. Prolactinoma일 경우는 두개골을 열지 않고서, 약물요법과 함께 코속에 관을 넣어 비강을 통해 뇌종양을 흡인해 내는 시술(Hardy method)이 있다. 주치의 말은 뇌종양이 커서 Hardy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K의사는 딸이 의료사고로 사망한데 대해 다음 2가지 불만을 품었다.
1. 수술 전에 알려준 진단과 수술직전의 진단이 다르며, 왜 Prolactinoma의 가능성을 알려주지 않았는가 ?

2. 뇌수술 후 뇌졸중이 된 원인에 대해서 왜 설명이 없는가 ?
그래서 이 2가지 설명의무(Accountability) 불이행을 걸어 병원과 주치의를 법에 제소했다.
K의사의 소송은 9년이 지나서도 아직 계류중이다. 일본의 의료과오 민사소송은 미국과 달리 배심원이 아니라 판사가 재판하므로 시일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고, 단순한 경우도 평균 3년이 걸린다. 의문사실을 캐묻는 원고(K의사)에게 병원과 주변 의사들은 과격분자 또는 피해망상가로 점찍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의료계를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과거 몇10년간 일본의료는 비교적 염가로 전체국민에게 좋은 혜택을 베풀어 왔지만, 반면 소위 유명하다는 의사들은 일반사회의 감시에 대해 면역을 갖고 있다. 의사들이 의료기록을 환자에게 공개해야 하는 법도 없고, 면허증도 갱신할 필요 없이 종신 유지한다일본에서 의료과오소송은 드물고, 2001년도 소송건수는 805건에 불과하다.〉

의사가 의사자신들의 부당성을 고발한 K의사는 10년째 들어선 소송체험을 토대로 책을 썼으며, 환자권리 옹호를 호소하는 단체(Advocacy 그룹)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피고(병원과 주치의)측 변호인은 "피고의 잘못은 전혀 없고, 충분한 의료제공을 다했다"고 단언하고, 그 이상 논평을 거부했다.

소송에서 K의사는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들의 법정 논평을 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미국과 달라 공정한 논평이라 할지라도 동료의사를 해친다면, 큰돈 받고서도 변호해 줄 전문가가 일본사회에는 아직 없다는 말이다.

드디어 K의사는 미국원조를 청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의 Prolactinoma 연구가인 M교수와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전문의한테서 딸의 뇌종양은 'Hardy method가 적용되는 케이스'라는 논평을 얻어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1999년 법원의 관선 전문의의 논평은 "피고 주치의는 옳은 일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신문에 대서특필된 일본의 특수의료사고를 소개해 보았다. 가족의 불행을 당한 의사가 설명의무(Accountability)를 내세워 의료과오소송을 제기했다는 점, 그 과정을 통해 K의사 자신이 환자권리 미개지라 할 일본에서 환자옹호운동(Advocacy)에 앞장섰다는 점, 그리고 일본에서 돈 받고 동료의사를 비판하려는 전문의가 없어 미국까지 가서 원정원조를 구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소송이라 하겠다.

 

미국화한 일본의 IC채용


설명의무(Accountability)가 새로운 의료윤리로 확립된 오늘날, 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일이 의료분쟁예방에 큰 도움을 줌은 물론이다.

일본의 1999년도 1년간의 의료판례집에 의하면 과실이 인정된 37례는 모든 진료과목에 걸쳐 나타나 있고, 그중 의사의 '설명의무'와 관련된 '통고된 동의'(Informed Consent, IC)위반을 문책한 사례가 8건이나 된다.

일본의 의료과오소송에서 원고(환자)의 승소율이 1990대 후반에 갑자기 증가(25%서 40%로)했으며, 그 주된 이유는 법원에서 IC법리를 채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환자의 권리에 속하는 IC를 미국에서 도입하여 선용하고 있는 일본법원 판례 2개를 적어본다.

 

1. 여호와의증인 수혈거부 환자에게 수혈함으로써 IC 위반한 건(동경 고법. 1998년 4월 8일)


종교적 이유로 인한 환자의 수혈거부 의사에 반대해서 의사가 한 수혈치료와 여기에 대한 IC 불이행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QOL(삶의 질)에 관한 본인결정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법리다.
여호와의증인 신자인 환자 A는 간암 절제수술시 수혈은 절대 거절한다는 의사표시를 했으나, 담당의사는 환자구명의 의무를 앞세워 수술 후 수혈한 사건이다. 동경지방법원에서는 이럴 경우 수혈은 사회적으로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상소한 고등법원에서는 철학적인 논고로 '설명의무' 위반과 '본인결정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려 50만엔의 위자료 지불을 명했다. 논고 일부를 소개한다.
〈의사가 환자동의를 얻고자 할 때, 환자의 판단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시하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각 개인이 가진 자기의 '라이프 스타일'은 자기결정권에 유래한다.

그러나 피고(의사 측)는 자기생명을 상실케 하는 본인결정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인간은 어차피 죽는 존재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내용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에 속한다따라서 환자가 수혈없는 조건하에서 수술을 받겠다는 본인선택권은 존중되어야만 한다〉고 판시했다.

 

2. AVM 수술시의 IC위반


선천성인 뇌동정맥기형(Cerebral Arteio-Venous Malformation, AVM)은 뇌출혈과 전간을 일으키고 신경 및 정신증상을 동반한다.

AVM 의료분쟁이 많은 이유는 수술후유증이 많고 사망률이 높다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방사선(감마나이프)치료와 혈관내 색전술(embolization)등이 있지만, 종전에는 개두(開頭)적출수술이 유일한 치료였다.

일본서 AVM 수술시 IC 위반 판례 2건(A와 B)의 예를 들어본다.(동경 지법. 1992년 8월 31일과 1996년 6월 21일).
예후가 나쁘기 마련인 AVM수술사건의 쟁점은 1)수술적응여부 2)수술기술에서 문제점 3)충실한 설명의무 이행여부 4)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손실(피해)과의 인과관계 등이 주다.

그런데 여기 2건은 모두 설명의무(Accountability)의 내용이 불충분했다는 건이며, A(첫째)는 29세 여자로 대학병원서 수술 후 사망했고, B(둘째)는 13세 소년이 수술 후 심한 신체장애인이 된 케이스다.

법원은 2건 모두 수술과오에 대한 원고주장을 인정치 않았으나, '설명의무' 태만을 문책했으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케이스 A에 대해 법원은 "치료행위에 임하는 의사는 긴급을 요하는 각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해당치료(수술)에 대해 동의여부를 결정하는 전제로 환자의 증상과 그 원인, 해당치료(수술)를 채용한 이유, 치료(수술)의 내용, 치료에 따른 위험성의 정도, 치료결과 개선될 전망과 정도, 해당치료를 않았을 경우의 예후 등에 대해서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요지의 논고로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그러나 수술결과와 설명의무 위반의 인과관계는 부정하며, 낮은 위자료 600만엔(약 5만 달러)배상판결을 내렸다.

수술결과 신체장애인이 된 케이스 B의 경우, 소송에서 '설명의무' 위반과 함께 수술적응이 없었고 수술 전(前)검사가 불충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결에서 케이스A와 마찬가지로 '설명의무' 위반만을 인정했다. 또한 손실(피해)과의 인과관계에 관한 논고에서 "설명의무에 충실했어도 수술 받았을 가능성이 많고, 수술 없이도 AVM의 나쁜 예후"를 이유로 인과관계상의 불이익도 배제했다.

그런데도 많은 위자료(1,600만 엔. 약 13만 달러)지불을 명했다. 위의 A와 B 두 소송에서 피고(의사)는 수술동의서류를 받기 전에 환자와 가족에 대한 설명에서 AVM 수술은 어렵고 중한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을 설명했었다. 이 정도면 보통 IC를 충족했다고 하겠으나, 수술자체의 과실을 인정치 않은 판사는 그의 논고에서 특히 수술 후 올 수 있는 비관적인 면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책했다.

동의하기 어려운 판결이지만, 사망하거나 불구자가 된 젊은 인생에 대해서 재판관이 '연민의 정'을 베풀 길은 철저하지 못한 IC를 희생양으로 몰고 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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