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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열등국가와 우등국가

의료 열등국가와 우등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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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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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발빠른 일본, 의사감축 대책도 '한수 위'


◇의사들이 방랑하는 필리핀

한국은 의사 과다생산으로 장차 지위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어도 일자리가 드물다는 필리핀의 의료현실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필리핀에서는 지난해 전체의사의 2.9%에 해당하는 2천명의 의사들이 간호사 자격증을 얻으려고 간호학교에 재입학한다"는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뉴스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Lancet 2003년 12월 13일).

WHO 보고에 의하면 현재 세계인구의 2.9%(1억7,500만 명)가 보다 나은 수입과 생활을 갖고자 남의 나라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중진국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에 더럽고 위험하고 창피한 3D(dirty, dangerous and degrading) 직업을 찾아가는 이채로운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 대학졸업자들이 서독광부로 취업해 가던 일이 떠오른다.

많은 필리핀 의사들이 자기나라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든 없든 관계없이 수입이 훨씬 많고 취직하기 쉬운 미국간호사 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자격을 격하시켜 간호학 공부를 재수하고 있다고 한다. 자존심 있는 한국의사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중진국에 멈추고 있는 필리핀은 의사 과다생산으로 의사가 되어도 일자리가 없어 자동차 운전기사나 학교 교사로 전직하는 자가 많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왔다. 탈락한 의사가 많은데도 현재 의사 수는 인구 10만당 130명이나 된다(중진국 적정의사수는 100명이면 족하다).

필리핀엔 의과대학이 90개나 되어, 필리핀보다 개인수입이 8배 그리고 인구가 4배나 되는 미국의 의과대학 수 125개와 비교할 때 어처구니없이 많다.

한국서도 인구 10만 명당 의대신입생이 미국과 일본을 훨씬 앞서고, 2010년도엔 의사 206명에 한의사 수까지 합치면 243명이 되리라는 추정이니 의료열등국가 필리핀을 닮아갈까 염려된다.

지구상 후진지역의 의사부족과 함께, 중동과 필리핀 등 중진국의 의사 과다생산이라는 마이너스효과를 WHO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WHO의 분석에서 "의사과잉으로 발생되는 과다의료창출 때문에 국민의료비가 증가되고, 과거 사회주의국가 동유럽에서처럼 의료의 질적 수준이 저하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의사과다는 국민보건에 득보다 해를 초래하게 된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과감하게 의대감축을 성취시킨 Flexner 개혁으로 미국의학이 일약 세계정상으로 급상했음을 필자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2002년 9월 12일자 칼럼).

현재 필리핀이라는 무능한 정부의 무책임이 의사를 간호사로 만드는 의료열등국가 현상을 세계에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과잉 극복한 일본

해방 후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의사과다 현상을 겪은 시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으니, 한번 살펴본다.

해방되던 해(1945년)는 전쟁 중 군의관요원 긴급보충용으로 여러 의대에 신설된 임시부속의학전문부와 의학전문학교를 합쳐 무려 학교수 68개에다 입학정원 1만553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였다. 알다시피 당시 미군정 GHQ는 일본의 민주화와 현대화를 위해 과감한 교육학제 변경과 사회개혁을 시도한 바 있는데, 의대개혁도 그 일부에 속했다. 그래서 의학전문학교를 정리ㆍ통합해서 대학으로 승격하고, 임시로 창설된 전문의학부는 전폐한 결과, 1950년도 의대 46개와 입학정원 2,900명으로 크게 축소되어 선진국가 의학교육의 체계를 세웠던 것이다.

일본국민이 누리고 있는 세계 최장수국혜택은 결코 저절로 굴러들어온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만일 군정이라는 혁명적 기관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잡다한 의학교들이 제각각 밥줄을 유지하기 위한 로비에 성공해서 전쟁시의 수많은 의학교가 그대로 존속했더라면, 일본의학은 지금쯤 필리핀의학의 꼴이 됐을지도 모른다.

의대정리가 마무리된 다음, 또다시 의대증설이 강행된 시기가 있었다. 과학소양이 전혀 없이 의욕만 가득 찬 고교출신 학력의 정객 다나까(田中角榮) 수상(최근 말썽을 피우다 물러난 일본외상 다나까 여사의 부친이다. 그가 의학계의 동조 없이 철모르는 군중의 박수에 힘입어 성취시킨 의대증설은 마치 과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일부 한국개혁론자의 전통의학육성책을 방불케 한다)에 의해 다시금 의대증가가 재현되었다. 즉 1973년 그의 '일본열도 개조론'의 일환으로 '1현에 1의대' 기치아래 각 고을마다 의과대학건설을 목표로 내세워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0년도 의대 수 합계 50개와 입학정원 4,380명이었던 것이 1975엔 70개와 7,120명, 그리고 1984년엔 80개와 8,360명으로 급성장해 버렸다.

이러한 일이 장차 일본의학을 퇴보시킨다는 학계의 여론이 대두되자, 다음 일본정부 후생성은 1984년에 재빨리 '장래 의사수급에 관한 검토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여기서 1995년까지 신입 의사수를 10% 정도 삭감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1998년도의 최신 제안에서는 2020년도까지 다시금 10% 삭감의 필요성을 보고했다. 실제로 1990년 이후 의대입학정원은 약 8% 감소되었다.

현재 일본은 동경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서 의사 수가 WHO의 적정 수를 초과하지 않고 있으나 일본정부 실무자는 장차 의사과잉시대를 경고하고, 이로 인해 국민보건에 끼칠 악영향을 방지하려고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의료 후진국가 필리핀이 마땅히 배워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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