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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락사와 한국 보라매병원 사건 -상-

일본 안락사와 한국 보라매병원 사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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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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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안락사 법제화 안됐지만 관례적 인정



일본서는 의사가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했어도 집행유예 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되는데, 한국에서는 존엄사(소극적 안락사)에 속하는 보라매병원사건에서 피고를 살인방조죄로 선고했다. 일본의 예부터 먼저 소개한다.


안락사 판결로 본 일본 관례

1991년 4월 일본의 가나가와 현(縣) 도카이(東海)대학 부속병원에서 안락사 사건이 발생했다. 의대조수 닥터 도꾸다(德田. D라 약칭)는 가족의 요청에 따라 호흡곤란으로 신음하는 말기다발성골수종환자에게 극약(KCL)을 정맥주사, 안락사시킨 죄로 형사소송에 회부되었다. 1995년 3월 요코하마 지방재판소는 닥터 D에게 살인죄를 적용,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내렸다. 이때 요코하마법원은 '안락사'가 합법으로 인정되는 조건으로 1962년 나고야고등법원의 여섯가지 요건을 줄여, 다음 네가지요건을 제시했다. 1.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 2. 죽음이 임박 3. 고통제거수단을 다 했음 4. 평소 본인의 의사표시(본인의 평소의사를 알리는 가족이나 제3자의 증언을 요코하마법원은 수용하고 있다.)

판결문에서 재판장은 이상과 같은 안락사의 네가지 요건을 설명하고, 닥터 D의 의료행위가 1과 3을 충족치 못했기 때문에 합법적인 안락사가 될 수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재판장은 의료윤리가 확립되지 않은 일본의료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피고의 잘못된 첫걸음이 장차 일본종말의료의 새로운 첫걸음이 되도록, 닥터 D는 직장에 복귀하면 환자와 가족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좋은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재판장은 마치 닥터 D가 의료윤리의 미개지 일본현실의 희생양인양, 과욕으로 저지른 그를 동정하고 그의 잘못이 장차 의료윤리정립의 계기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직장복귀'를 통해 젊은 인재의 앞날에 용기를 주고 있다.

일본에서 또 비슷한 사건이 1996년 4월 교도(京都)의 KH병원에서 발생했다. KH병원장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암환자에게 가족요청(처의 울부짖음)에 못 이겨 근육이완제를 주사하여 사망시킨 안락사 사건으로 병원장은 살인죄로 입건되었다. KH병원장과 친구간인 환자는 위암수술 1년 후 폐암으로 퍼졌으나, 환자부인의 완강한 요구 때문에 환자자신에게 '말기 암 통보'를 하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하지 않은 반면, 고통제거를 위해 진통제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가족과의 구두합의는 돼 있었다.

그런데 이 케이스는 주사결과 죽음을 조금 앞당겼으나, 사망원인이 전적으로 주사만이 아닌 자연사일수도 있고 또한 위의 네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반대증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아예 불기소처분 되었다. 환자를 안락사한 원장은 "나는 의사로서 신념을 갖고 이런 행위를 했다"고 말하여, 단말마의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를 도왔음을 고백했다. 일본 최고검찰청 검사를 역임한 바 있는 M교수는 "KH병원케이스는 현재 일본법으로는 위법이라 할 수밖에 없지만, 범죄성이 없고 환자를 위한 온정적인 행위이므로, 여기에 안락사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지적하고 "병원장의 숨김없고 당당한 용기 있는 행동에 경복한다"고 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병명을 알리지 않고 본인의사가 결여된데 대해서 Y교수는 "Informed Consent(설명통고와 동의)가 확립되지 않은 일본의료계가 빚은 비극"이라 평했다.

요코하마재판소가 제시한 안락사의 네가지 요건은 일본 법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후 안락사재판 판결에 불문율이 되었다. 이 요건만 충족하면 '적극적 안락사'가 일본사회에서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일본의 안락사는 법제화되지 않았을 뿐이고, 법사상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오리건에 버금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이나 가족요청에 의한 연명의료중단도 관례적으로 인정되어 있다(2002년 9월 대한의학회 발행 '의료윤리지침 제1보'참조).

한국에는 미국처럼 안락사와 연명의료에 관한 법제가 없고, 일본처럼 안락사 네가지 요건의 불문율이나 존엄사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사회관례가 없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한 존엄사 범주에 속하며, 여기서 안락사에 대한 미국의 PAS요건이나 일본의 판례(4요건)를 운운할 성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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