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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인터뷰]고윤웅

[인터뷰]고윤웅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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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덕분에 잘 지냈지. 정년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인데도 오래 동안 지속된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드네. 1년전만 해도 많이 남아 있는 듯이 생각됐는데…"
고윤웅 교수(연세의대 혈액내과학·대한의학회 회장)는 대과없이 정년을 맞이한 것을 다행스러워 하면서도 섭섭한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30여년전 국내 의료영역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던 혈액학 발전에 헌신해온 고 교수는 학자로서의 분명한 고집과 소신이 느껴진다.고 교수는 해외 학술대회를 잘 가지 않는 학자로 손꼽히는데 사실은 제약회사가 주선하는 학회는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쪽 이미지, 선비적 기질, 이런 것 때문에 고 교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반듯한 선비'를 연상케 하는 그의 올곧음 때문이다.

고 교수는 64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를 마친 후 72년부터 모교에서 재직해왔다.전공의 시절 지도교수의 연구과제를 맡은 것을 계기로 혈액종양학의 길을 걷게 됐고, 78년 프랑스 크레테일 의대 부속 앙리 몽도병원에서 혈액학 연수를 시작하면서 국내 혈액암, 특히 급성 백혈병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국내 급성 백혈병의 치료지침 정립 및 분류 연구를 처음 발표했으며, 82년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는 성인환자에게 첫 골수이식을 실시했다.

"지금은 골수이식 하면 가톨릭의료원을 떠올리지만 국내 첫 케이스는 김길영 교수(연세의대 소아과학)가 81년에 시행한 소아 백혈병환자야.당시만 해도 무균실 개념이 취약해서 중환자실 특별방을 무균실로 지정해 사용했지.그리고 82년 내가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는 성인 환자에게 골수이식을 첫 실시했고, 가톨릭의료원은 83년 성인 백혈병 환자에서 골수이식을 처음 시행했어."
고 교수가 처음 혈액암에 투신하던 때와 지금은 진료 및 학문적 성취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내가 레지던트만 해도 백혈병은 곧 죽음과 동일어였지.하지만 국내에 의료보험이 도입되고, 신약 개발이 이어지면서 성적이 많이 향상됐어.지금은 어느 기관이든 골수이식 성적이 평준화됐다고 봐.그때나 지금이나 악성혈액질환자들의 경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과거와 비교하면 백혈병은 여전히 많은데 영양이 향상돼서 인지 재생불량성 빈혈은 많이 줄어 든 것 같아."

고윤웅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수련부장, 세브란스병원 내과부 제2내과장, 세브란스병원 부원장, 의대 교무부장, 세브란스병원 제1진료부원장,의대 내과학교실 주임교수 겸 내과부장 등 교내 중요 보직들을 두루 맡아왔다.그러나 보직을 맡으면서도 환자 진료에서 손을 놓은 적은 없었다.
"행정 일은 기준을 세우고 학교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이니 나름대로 보람이 있는 일이지.하지만 한편으론 행정적인 일에 손을 대지 않았더라면 학문적으로 더 성취했을 것 같은 아쉬움도 있고."

내과학교실 주임교수를 맡을 당시 고윤웅 교수는 과별 자율성을 가장 강조했다.주임교수 재직시절인 94년에는 장기별 전문진료체제로 개편해 감염내과와 류마티스내과를 독립시켜 기존의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심장내과, 신장내과, 내분비내과, 호흡기내과, 알레르기내과의 7개 분과에서 현재의 9개 분과로 세분화했다.병원의 규모가 커지고 또 의학의 발달로 세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지만 한편으론 아쉬움도 많다.과거의 가족적 분위기가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윤웅 교수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고 교수' 하면 연상하는 것은 아마도 연세의대 내에서 손꼽히는 '애연가'라는 사실이 아닐까.담배 인심이 후해 고 교수의 연구실에 들르면 언제든지 "한 대 태지"하며 흡연자에게는 담배를 권한다.이처럼 고 교수와 동일어가 된 담배는 최근 건강 때문에 과감하게 끊는 결단을 내렸다.그리고 고 교수를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엄청난 독서가에 장서가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어려서 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지금은 아니지만 교과서를 빼곤 어떤 종류이든 간에 책을 한번 손에 들면 뒤장을 덮는 아쉬움을 맛볼때 까지 놓지 못했어.그래서 어렸을 땐 책방 주인을 꿈꿨지.한번은 6권짜리 장편소설을 한 아름 빌려와서 온종일 마루에 엎드려 읽고 나서는 일어나다가 현기증에 나둥러진 적도 있었지.늦은 밤까지 촛불 밑에서 소설을 읽다 잠들어 벽지를 때운 적도 있고."

책은 좋아하는 고윤웅 교수는 책에 관련된 정보를 눈에 띄는대로 메모하고, 일간신문의 주말 북세션, 월간 '출판저널', 그리고 시사주간지의 신간안내란을 이용해 주로 살 책을 고른다. 7~8년전 부터는 매주 수요일에 서점을 찾는 것이 일상사로 자리잡았는데 이렇게 매주 적게는 다섯권, 많게는 열 권 정도를 사모은 책이 1만여권에 이른다.이렇다 보니 책 보관도 항상 큰 고민거리였다.정년이 다가오면서 고 교수의 소장도서를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고 교수는 이번에 학문관련 도서는 연세의대 도서관에, 의료관련 문학서, 의철학서, 환자의 투병기 등은 연세의대 의료윤리학과에 기증하면서 짐을 조금 덜었다.

그토록 많은 세월동안 책을 손에 놓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읽지.굳이 이유를 대라면 대리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내가 가 볼수 없는 곳, 모르는 지식, 불가능한 꿈과 가능한 희망 등이 서술되어 있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일거야.왜 책을 읽는지 별로 생각하거나 따져본 기억은 없어. 책은 거기 있어서 읽는다고 할까." 올 초 출판된 '의학과 문학'(문학과 지성사)을 펼쳐보면 고 교수의 책 읽기에 대한 잡기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굳이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고 책을 읽으면서 얻는 순수한 기쁨이 녹아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나 자신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역지사지와 범사에 감사하는 말을 당부하고 싶어.요즘 사람들을 보면 적극성과 긍정적인 생각이 약화된 것 같아.환자 진료나 수술만 하더라도 예전엔 끝까지 해보자는 적극성이 있었는데 요즘엔 이런 태도가 덜 한 것 같아 아쉽더군."

고 교수는 9월부터 관동대 명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1년여 전부터 몇 군데에서 제의가 왔지만 78년 연수때 프랑스 행 비행기에 함께 탔던 한동관 관동대 의무부총장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나이가 드니 환자 보는 것도 겁 날 때가 있어.연구에는 욕심내지 않고 환자 진료하는데 힘을 쏟아야지.혈액환자를 계속해서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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