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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조제위임제도 개원가 불황

[심층기획]조제위임제도 개원가 불황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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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위임제도 시행 4년…평가와 대안(4)

<글 싣는 순서>
1.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다.
2. 약사 무면허 의료행위 버젓이
3. 재정절감만 목적 국민 건강 뒷전
4. 개원가 불황(현장의 목소리)
5. 대안은 없나?

개원가 불황 "울분 자포자기"
농촌 주민들 "이런 악법이..."

▲ 병의원 경영상황

최근 개원가의 상황을 압축해서 나타내는 말이다. 진료현장에서 떠나 있다 1년만에 서울에서 재개원한 A원장은 한창 개원 중이던 1년 전에 비해 더욱 나빠진 개원환경 속에서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수가가 몇차례 오르내렸지만 개원가의 현실은 변한게 없고 4년 내내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는 자괴감에 1년전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외과계 중소병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던 B병원의 C원장은 최근 결단을 내렸다. 외과계 전문병원에서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C원장의 결단은 형편없는 현재의 수가와 의약분업 이후 격감하는 환자수로는 병원운영을 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였다.

C원장은 얼마전 병원에 있던 내과의사 1명을 서울 압구정동의 유명 비만클리닉으로 파견 보냈다. 그러나 C원장이 딱히 비만클리닉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만시장 역시 포화상태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C원장의 결정에 D내과의사도 따르기는 따르지만 비만클리닉이 최악의 병원경영 상태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최근 내과를 개원한 E원장은 개원 8개월만에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개원 이후 한두달 40여명 정도 근근히 이어가던 환자가 최근들어 20명대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43살로 과거 같으면 개원가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E원장은 "의원경영으로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해 집사람의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의사로서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 볼 면목이 없다"며 괴로워했다.
그는 병원에 투자한 3억여원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어 불면증으로 보름여간 고생하다 결국 의대동기가 운영하는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지방에서 1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F원장은 자신이 적자를 감소하며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소개한다. F원장은 "일주일에 4∼5일씩 병원에서 먹고 자며 수익을 맞춰 보려고 애쓰지만 떨어진 환자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고 털어 놓는다.

결국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때때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얼마전 지방의 한 의원장이 3억여원의 빚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자살사건이 보도되자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글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위기에 처한 의사사회의 단면을 실감하게 했다.
 
의약분업 이후 한국 의료계는 일선 의원이던 중소병원 이던 대형 대학병원이던 심한 경영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영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라진 약가마진이 꼽히고 있지만 의약분업 이후 늘어난 재정적자를 무리하게 줄이기 위해 취해진 일련의 정부정책이 의료계를 고사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하며 정부는 저수가 체제에서 의원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약가마진을 없애는 대신 수가를 현실화시켜 준다며 5차례 수가인상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0년 9월부터 3년이 채 안되는 2003년 3월 사이 적자폭을 줄인다는 이유로 4번의 수가인하를 단행해 결과적으로 초진료는 17.1%, 재진료는 20% 인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5번의 수가인상이 수가인상이라기 보다는 약가마진에 대한 수가보전의 측면이 강했고 4년 동안의 자연 수가인상률까지 고려하면 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수가는 4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곧바로 보험급여가 거의 모든 수익을 차지하는 1차 의료기관에 직격탄이 되어서 돌아왔다. 오창석 대한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정부의 수가인하 조치로 인해 2003년 수가가 2000년 기준으로 초진료의 경우 17.1%, 재진의 경우 20%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 이사는 수가인하 조치로 1일 평균 50명을 보는 내과계 의원이 경우 진찰료에서만 월 300만원, 1년 3,6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계했다. 또한 진찰료의 야간가산율 적용시간이 오후 8시로 2시간 늦춘 것 역시 수가인하 효과를 발휘해 연간 1,388억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2년 전국 2만3천여개 의원급 의료기관 중 50명 이하의 환자를 보는 곳은 1만 1,790기관(51%)인 것으로 발표한 것에 비춰보면 의원급 절반이 이번 수가인하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료계는 약가마진에 대해 보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과 원가이하의 수가체계로 인해 이길 수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약사 불법조제 횡행..."누굴 위한 것인가?"
 
▲ 농촌의 현실

조제위임제도 시행에 따라 농촌지역 주민들은 의료기관과 약국을 오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배로 늘어난 본인부담금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더욱이 농촌지역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원주시내까지 버스타고 진료를 받으러 나간다는 김 모 할아버지는 "관절염 때문에 다리도 불편한 데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는 통에 아픈 것이 잘 낫지 않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약값도 배가 올랐다"는 김 모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은 약값으로 다 들어간다"고 했다.

강원도 횡성군 산골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후 달라진 것이 뭐냐는 질문에 "돈이 많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전에 보건지소를 이용할 경우 900원만 내면 됐지만 지금은 보건지소에 500원, 약국에 1,5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농촌인 경북 의성군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18개 읍면에 인구가 20만명에 달했으나 도시화 바람이 불면서 물밀 듯 도시로 빠져 나간 탓에 현재는 7만명에 불과하다.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의성군도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7만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무려 1만5천명에 달한다.

봉양면에 산다는 한 주민은 "어차피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버스 타고 면까지 나와서 병원을 찾게 된다"며 "교통이라도 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촌지역 주민들을 위해 병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선친의 뜻을 저버리지 못해 2년째 병원 문을 열고 있다는 송선대 제남병원장은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후 농촌지역 의료기관은 서서히 망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의료수가체계하에서는 정상적으로 도저히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털어놨다. 제남병원은 한 때 100병상 규모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30병상으로 줄인 채 겨우 병원이라는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온종일 진료를 해야 외래환자는 40명, 입원환자는 20명을 넘지 못한다.

나름의 고육책으로 노인전문요양시설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나 50명 정원에 고작 6명이 입소해 있다. 6월달 적자만 1천만원에 달한다고 밝힌 송 원장은 평일 야간진료와 공휴일 진료에다 대학교수인 부인의 월급까지 털어 넣으며 적자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 송 원장은 "농어촌 지역은 의료공급 과잉"이라며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농어촌지역의 의료현실을 제대로 알고 정책을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어촌지역의 의료기관간 경쟁도 치열할 뿐만 아니라 도시지역 대형병원의 환자 유치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송 원장은 조제위임제도 시행으로 더욱 어려움에 처한 의료기관들이 시장에서의 룰을 지키지 않은 채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며 "제대로 하면 다 망하고, 사이비 의료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농촌의료기관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농촌지역의 이러한 불만은 지난 경남 산청군 주민들의 '의약분업 반대 궐기대회'를 계기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경남 산청군 주민 5백여명은 지난 2월 3일 산청군 신안면이 의약분업 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고 불편하다며 의약분업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또한 주민들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의약분업 철폐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산청군의 경우 읍면 지역내 의료기관과 약국이 각각 2개소 이상일 때 의약분업 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을 세워 왔으나 당시 신안면에 약국 1곳이 개업하며 약국이 2곳으로 늘자 의약분업 예외대상 지정에서 제외된 케이스다.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인 산청군 주민들은 "의료비가 늘어난 데다가 처방전을 들고 노인분들이 이리저리 약국을 찾아다니는 것은 농촌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이런 의약분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악법이 어디있나"고 궐기대회를 개최하게 된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최근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주민 서명을 받아 복지부 및 국회에 전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말 현재 예외지역은 전국적으로 총 1,033곳. 심평원에 따르면 전국의 의약분업 예외지역에 위치한 약국은 총 240곳에 달한다. 이들 예외지역 약국들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전문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채 공공연히 약사의 업무 영역을 넘어선 과거의 진료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다보니 조제위임제도 시행지역 약국도 불법 임의조제와 대체조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한약을 이용한 진료행위도 벌이고 있다.

한국형 조제위임제도는 약사가 의사 노릇을 하던 과거의 그릇된 의약문화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이를 단시간 내에 근절시킬 수 있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틈새 속에서 여전히 불법과 탈법이 사라지지 않는 형태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같은 와중에 농촌지역의 과잉 의료공급 문제와 의료왜곡이라는 기현상이 겹쳐지면서 농촌의료체계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송성철기자 songster@kma.org
최승원기자 choisw@kma.org
신범수기자 shinbs@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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