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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사-간호사, 의사-환자 간 폭력 근절돼야

[기획]의사-간호사, 의사-환자 간 폭력 근절돼야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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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 폭력문화 추방(1)

<글 싣는 순서>
1. 의사의 권위주의가 폭력 부른다
2. 의사-간호사, 의사-환자 간 폭력 근절돼야
3. 폭력근절 대책기구 마련 절실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법적 제제방안보다
폭력 용인않는 구성원 근절 의지가 중요
 

폭력은 매력적이다. 폭력이 행사되는 순간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가식이나 왜곡, 완충이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적개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적개심을 일방적으로 발산한다. 또한 나를 억누르고 있던 모든 금기와 윤리를 떨쳐내고 상대를 정복하는 짜릿한 쾌감을 맛 보기도 한다.

폭력은 원시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명쾌하다. 폭력을 통해 갈등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고 거친 숨을 고르는 순간 몸 안 깊숙히 막혀있던 무언가가 단번에 뚫려 버린 느낌을 경험한다. 대단히 매력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폭력은 매우 치명적이다. 폭력의 매력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상대 뿐 아니라 나 역시 철저히 파괴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늘 폭력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특히 병원은 폭력이 상존하기 좋은 공간이다. 종합병원의 시스템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와 환자, 의사와 간호사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현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애초부터 무리다. 그래서 폭력은 종종 꽉 막혀버린 커뮤니케이션의 정체를 한순간에 뚫기 위한 최악의, 최후의 수단으로 악용되고는 한다.

의협신문은 지난 호(4월29일자)부터 '월요의료포럼'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의사와 의사간, 의사와 간호사간, 의사와 환자간의 폭력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의사와 의사간의 폭력 뿐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된 바 있는 의사와 간호사간 또는 의사와 환자간에 발생했던 폭력의 양상과 이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살펴봤다.<편집자주>
 
의사 간호사간 폭력 실질적인 예방시스템 필요
 
▲사례1
CT를 찍어야 하는 환자의 정맥주사가 전날 밤 확보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를 이유로 주치의를 윽박지르는 상급연차를 간호사가 말린 것이 화근이 됐다. 상급연차 전공의는 해당 간호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처치실로 끌고 들어가 내동댕이치고 넘어진 간호사를 향해 수액병을 집어 던지려 했다.

▲사례2
남자의사가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솜베개를 만들어 주라는 지시를 미처 이행하지 못한 간호사의 얼굴을 향해 차트판을 집어 던지고 뺨을 때린데 이어 도망가는 간호사를 쫓아가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사례1과 2는 의사와 간호사간에 발생하는 폭력의 전형적인 예이다. 주로 남자며 지시를 내리는 위치에 있는 의사가 간호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쉬운 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의사와 간호사간의 폭력은 우발적이지 않으며 100%는 아니라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원내에서 폭력사고를 일으킬 만한 의사나 간호사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평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사회성이 떨어지고 병원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내 폭력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병원시스템은 이런 수련의나 신입간호사들을 초기부터 관리하고 이들이 일으킬 수 있는 폭력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체계가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교수들 역시 폭력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체로 당사자간의 책임으로 넘겨 버리거나 사건을 무마하는 것에 급급한 경우가 빈번하다. 병원 또한 징계위원회나 윤리위원회 등 문제를 일으킨 구성원에 대한 처벌시스템은 가지고 있지만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은 취약하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달 7일 빈번히 발생하는 의사와 간호사간의 폭력문제 예방을 위해 '의사 간호사 존중선언식'을 개최하고 '국민건강을 위한 의사 간호사 공동협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공동협력위원회의 역할이 물론 의사와 간호사간의 갈등해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양 협회는 존중선언문과 함께 협력위원회를 통한 병원단위의 폭력예방 교육이 일정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원내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의 공개에 대해 해당병원들이 극도로 꺼리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이고 협력위원회의 조직이 전국적인 병원망을 커버할 만큼 대대적이지 않다 보니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단위병원의 손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적인 뒷받침과 의사사회의 의지 전제돼야
의사와 간호사간의 폭력과 함께 환자의 의사에 대한 폭력은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을 조장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환자의 의사에 대한 폭력은 의료사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그 해결과정에서 법적분쟁을 거치는 경우가 많거나 폭행을 당한 의사가 이렇다할 항변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해 의료법 개정과 같이 강력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중론이다.

그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흔히 논의되는 것은 의료분쟁조정법의 난동행위 규제조항 신설이다. 의료계의 경우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보장받기 위해 난동행위 규제조항 신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조계의 경우 현행 형법으로 난동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특별법 제정에는 반대하고 있다.

가장 최근(2002년 10월)에 이원형 의원(16대 한나라당)에 의해 제기된 의료분쟁조정법안의 경우도 진료방해 등에 대한 금지조항(26조)을 두고 있으나 벌칙조항이 명시되지 않아 그 실효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적인 뒷받침 못지않게 의사사회의 폭력행위 근절에 대한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몇 개월 전 발생한 현직 국회의원의 전공의 폭행사건이 그 단적인 예로 지적되고는 한다. 현직 국회의원이 자신의 처를 담당한 전공의를 옆방으로 끌고 들어가 수 십 여분에 걸쳐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사건이 알려진 후 병원당국은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피해 전공의를 파견 보내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의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결국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은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고 병원은 국회의원에 의한 의사 폭행사건을 그렇게 무마하며 의료기관안에서의 폭력행위를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의료기관에서의 폭력행위 근절을 위해 그 어떤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법적인 제제방안보다 폭력을 용인하지 않고 이를 용기 있게 근절하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매우 중요한 전제라는 교훈을 깨닫게 해 주었다.

최승원기자 choisw@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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