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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감염관리 20년…'위기 소통'이 해답이었다"

인터뷰 "감염관리 20년…'위기 소통'이 해답이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7.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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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신종플루·메르스·코로나 팬데믹 경험 교훈 '소통' 
감염관리체계 설정 가장 중요…동료 의사 지지 큰 도움
자원·업무 효율적 배분, 가치 기반 보상 의료난제 해결 단초
인터뷰 - 김태형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코로나19 관련 방역조치가 8월부터 사실상 전면 해제된다. 병원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감염병등급 2→4급 하향 조정, 보건소 선별진료소 운영 중단, 검사·치료비 대부분 본인 부담 등이 시행된다. 국내에 첫 환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20일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또렷이 새겼다. 삶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 만큼 사회적 영향도 컸다. 그렇지만 아픈 경험은 새 대안을 찾는 길을 제시했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소통'의 중요성도 깨닫게 했다. 

늘 환자들과 마주하는 의료기관으로서는 감염 관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감염병은 물론 의료관련감염으로부터 100% 안전한 병원을 지향하지만, 완벽하게 예견하거나 막지 못한다. 의료현장에서 감염 관리를 이끄는 감염내과 의사들이 최선을 다하면서도 노심초사하는 이유다. 

순천향대서울병원이 최근 감염관리 20주년을 맞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003년 부임 이후 20년을 오롯이 감염관리에 보낸 김태형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에게는 무슨 의미였을까. 

"우리가 가진 자원은 충분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인 환자 안전, 환자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보다 늘 최선을 '더'했습니다."

청년기를 지나 중장년을 향하는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관리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 김태형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태형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20년의 시간 동안 사스, 독감 대유행(신종 플루), 메르스, 코로나 등을 겪었다. 의미있는 진전도 있었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가 나타나면서 감염관리에 보편주의, 표준주의 개념이 생겼다. 혈액이 감염원이 되고, 특정 환자가 아니라 모든 환자가 감염원일 수 있다는 전제로 진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1987년에는 VRE(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가 등장하면서 의료계의 긴장은 배가됐다. 이런 이유로 세계적으로 1980∼90년대부터 감염관리의 중요성은 꾸준히 노정됐다. 국내에도 1995년 대한의료관련감염학회가 생겼다. 2003년 순천향대서울병원에 부임하면서 사스를 겪었다. 그 때 처음으로 병원에는 감염관리 전담간호사가 배치됐다. '사건 중심' 감염관리의 시작이다. 2009년 독감 대유행,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병원 감염관리는 적지만 의미있는 진전을 이어왔다."

감염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염관리체계다. 인력과 시설도 물론 갖춰져야 한다.  

"감염관리는 체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인력과 시설이 뒤따라야 한다. 경영진과 소통하며 감염관리체계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경영진의 결단도 컸다. 수가가 책정된 것도,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고, 수입원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전향적으로 감염관리를 힘을 보탰다. 위기 상황에서도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노후한 건물, 부족한 의료진 등 시설·인력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유능한 동료 선생님들이 일당백 역할을 해주셨다. 환자안전과 환자보호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최선을 '더'했다." 

코로나는 아픔 만큼 교훈도 남겼다. '소통'의 중요성이다.

"감염병 위기 상황을 겪고 돌아보니 관리의 거의 모든 게 '소통'에 달려 있었다. 100% 안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환자 치료 역시 완벽할 수 없고 여러 가지 미비하고 부족한 일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합병증 등 부정적인 상황을 100% 예견할 수도, 모든 악재를 방어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감염관리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의료관련감염 중 적어도 30%는 줄일 수 있다.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병원의 아웃브레이크 상황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해법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과정에서 소통의 힘을 확인했다. 경영진이 솔선해서 감염관리에 앞장섰으며, 동료의사들이 힘을 보탰고, 원내 전 구성원이 뜻을 모았다. 순천향 감염관리의 강점은 소통이다."

국내 의료관련감염 관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감염관리의 현실적인 자원은 결국 시간, 공간, 노동이다. 한 가지 조건을 더 보태면 행정적인 효율성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으로 나머지 부족한 것을 메운 측면이 있다. 한국의 의료비가 싸다는 데는 노동의 역할이 컸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400병상 정도 의료기관에 감염내과 의사 60명이 근무한다. 국내에는 600∼700병상에 4명이 있다. 이제 이런 상황은 용납되지 않는다. 인력은 충원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행정적인 효율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우리는 효율적인 의료를 가질 수 있다. 그래도 노동에 가려진 공간이나 시설 문제는 외국 사례처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김태형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원내 감염관리에는 동료 의사들과 각 직역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순천향의 감춰진 저력이다.

"감염관리는 감염내과 의사의 역할이지만 동료 의사들의 도움이 컸다. 힘든 상황에서 굉장히 호의적으로 지지했다. '저희 과의 문제'라는 말을 싫어한다. 의사는 아무리 첨단기술과 전문지식을 갖췄더라도 자신의 전문과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내 일, 네 일 보다는 소통을 통해 환자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감염내과 의사들이 지시하는 경우가 잦다. 그 때마다 동료 의사들과 병원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따라줬다. 소통과 베풂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코로나는 많은 많은 것을 바꿨다. 감염관리 측면에서는 큰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20년 동안 여러 차례 감염 위기 상황을 겪으며 아직도 미진한 게 많고 못 마땅한 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단계씩 전진해 온 것은 확실하다. 백신접종 등 방역 관련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됐던 아쉬움도 있다. 국민 건강과 관련된 일은 늘 중립적인 시각이 중요하다. 이제 일상을 회복하면서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방역에 대해 국민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혹시 신종 감염 질환이 다시 엄습하더라도 우리가 3, 4년 동안 지난하게 겪었던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염관리에 새로운 지형을 만든 HIV는 이제 만성질환이 됐다. 죽고사는 병이 아닌 관리하는 질환이다. 순천향대서울병원은 HIV 치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서 있다. 

"저희 병원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용산구가 지역적인 다양성이 있다보니 HIV 진료가 많이 이뤄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협진 문제다. 낙인이 있는 질병이다보니 환자들이 의료의 기회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의료진의 사소한 말에 상처입는 경우도 많다. HIV 진료는 물론 감염인들이 다른 질환으로 수술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순천향에서 감염인들의 수술은 이제 일상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선생님들과 협업이 잘 이뤄진다. 처음에 약간 긴장했던 선생님들도 한 두 번 지나다보니 더 묻지도 않고 '올려주세요' 한다. 우리 병원엔 인간 중심, 환자 중심 문화가 있다. 의료진도 익숙하다. 저는 일주일에 4번 외래진료를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토요일에 진료한다. 대학병원 감염내과 의사가 '4+1' 진료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번이라도 더 환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다. 순천향에서는 영어도 한국어도 익숙치 않은 외국인 환자가 오면 번역기를 돌리고 손짓 발짓 하며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우리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다."

HIV는 약만 제대로 복용해도 전파를 안 시킨다. HIV 때문에 죽는 병이 아니라 늙어 죽는 병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년전만 해도 약이 독하고 비싸고 부작용이 많아서 감염인의 면역이 저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을 처방했다. 모든 HIV 감염인이 약을 먹기 시작한 게 2014년부터다. 2017년에는 'U=U'(undetectectable equals untransmittable)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감염인이 바이러스가 억제돼 미검출되면 배우자나 파트너에게 전파가 안 된다는 의미다. '노출전 예방요법'(Pre-exposure prophylaxis·PrEP)도 있다. HIV에 노출되지 않은 고위험군에게 질병 확산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약물을 사용한다. HIV에 감염 위험을 100% 가까이 줄일 정도로 효과적이다. 결국 HIV는 조금씩 더 통제되고 있다. 약을 복용하고 몇 주에서 세 달 정도 경과하면 바이러스가 미검출된다. 젊은 환자들은 한 달만에 미검출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기를 낳은 커플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금세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인 혐오와 낙인을 없애는 데 이젠 모두 나서야 한다."

김태형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치료 여건은 많이 개선됐다. 감염인이란 이유로 주요 치료에서 소외되지는 않는다. 

"HIV 약을 먹는다고 어떤 중요한 치료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약물 상호작용은 살펴야 하지만, 이게 수술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환자들도 좀 더 당당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료진을 믿어야 한다. 약 복용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렸을 때 불편한 이야기나 시선이 오가더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야 한다. 환자 단체에서는 환자들만 갈 수 있는 특정 요양시설 등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물론 그런 시설도 있어야 한다. 그 분들의 절박함도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 지향점은 모든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들이 우려하는 개인정보 보안문제도 의료기관에서 더 엄격히 관리한다. 환자들을 숨게 하는 정책보다 그 분들이 어느 의료기관이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HIV 전파를 막는 지름길은 빠른 치료다. 약값은 건강보험과 지자체에 지원한다. 과거에는 진단을 받아도 약을 처방받기까지 몇 주가 걸리기도 했다. 이젠 상당부분 개선돼서 웬만하면 HIV 진료 당일 약을 드린다." 

지속가능한 감염관리에는 인력 수급도 중요하다. 감염내과 현실은 어떨까.

"전공의 수급 상황이 좋지는 않다. 절대적인 전문의 숫자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필수의료가 화두가 돼 있지만 필수의료가 아닌 전문과가 어디 있나. 전문의들이 늘어나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원 배분이다. 일본의 경우 일반의들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감염내과 의사는 관련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미국, 캐나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의대 신증설, 의대 정원 확대가 절대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무턱대고 인원만 늘리면 하고싶은 것만 하게 된다. 보상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상황을 보면 대학병원 입원전담의가 교수보다 월급이 많다. 누가 대학교수를 하겠나. 가치 있는 일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야 한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매력도 만들어야 한다. 자원과 업무의 효율적 배분, 가치 기반 보상 등이 난제 해결의 단초가 된다."

병원의 모든 구성원들은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반이 된다.  

"현실과 이기주의를 앞세워 '우리과'에 집중하면 조직은 유리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환자 문제를 해결하는 '원팀'이다. 감염내과로 전과되는 환자들은 전체 질병 이력을 살펴본다. 그러다보면 힌트가 될 때가 많다. 다양한 환자 치료 경험이 모이면 새로운 해답을 찾게 된다. 그래서 여러 전문과 의사들이 한 팀이 돼 다학제 진료를 하게 된다. 아쉬운 것은 정부가 정한 중증 질환에 대해서만 수가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명의'를 좇는 국민의 잘못된 의료소비도 바뀌어야 한다. 명의는 없다. 착한 의사, 친절한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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