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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의사 아닌 의료법인 이사장 A씨의 속사정

법률칼럼 의사 아닌 의료법인 이사장 A씨의 속사정

  •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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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 "실질적 개설자는 의료법인 아닌 이사장 개인" 유죄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 17일 파기환송…구체적 사정 꼼꼼히 따져야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이은빈 변호사(하모니 법률사무소)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법인격 형해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법은 법에 의해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주체를 자연인과 법인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후자는 법인격을 부여받음으로써 자연인과는 독립된 법률행위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핵심은 양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사람이 자신의 자금으로 B법인을 설립한 뒤 전적으로 운영하더라도, A와 B가 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  

단,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영업에 지나지 않는 상태로 '형해화'된 경우 극히 예외적으로 법인격이 부인될 수 있지만 이론에 그치고 현실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인용되기는 쉽지 않다.  

의료법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달 1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과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의료인 아닌 A씨는 가족과 지인 등으로 이사와 감사직을 채워 B의료법인의 설립허가를 받은 뒤 다른 사람이 운영하던 기존 요양병원의 명칭을 바꿔 C병원을 개원했다. 

임원진은 대부분 의료법인 운영이나 의료기관에 종사한 경력이 없었고, 법인 운영과 관련한 중요사항을 이사장인 A씨가 결정하면 이사회는 이를 단순 승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의료법은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 공적인 성격을 가진 단체로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제한하고(제33조 제2항), 이를 위반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은 형사처벌(제87조)을 받는다. 

A씨는 의료인 아닌 의료법인 이사장으로서, 검찰은 해당 요양병원의 실질적 개설자가 B의료법인이 아닌 A씨 개인이라고 보아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죄 등으로 기소했다. 

원심은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인 A씨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1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감형했을 뿐 A씨에 대한 유죄 판단은 줄곧 유지했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개설 자격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려면, 외형상 형태만 갖추고 있는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과 운영으로 가장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함을 전제로 이를 뒤집었다. 

여기에는 실질적으로 재산출연이 이뤄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거나,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등의 사정이 나타나야 한다. 

단순히 가족이나 지인을 임원으로 구성해 형식적인 의결이 이뤄지고, 설립 절차상 필요한 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즉시 잔고를 빼내는 등의 행위는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한 것에 대한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사실 이 같은 결론은 앞서 고찰한 법이론과 그동안 축적된 유사 사례를 곱씹어보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현행법상 의료법인의 임원 자격을 의료인으로 제한하거나, 임원 중 반드시 의료인을 포함해야 하고 그 의료인인 임원이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을 주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의료법인의 대표자나 임원으로 선임됐음에도 비의료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법인의 주된 목적사업인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에 관한 결정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의료법인이 법에 따른 설립허가를 받아 의료기관을 개설해 그 목적 범위 내에서 의료업을 해왔다면, 운영 과정상 미비점이나 위법행위는 관할관청의 업무검사, 시정명령, 해당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등의 방법으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수년 전 비의료인인 의료법인 이사장이 의료소모품 판매업체 회사대표와 손잡고 요양병원 관련 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업체 명의로 대출금을 받게 한 뒤, 허위로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매월 자문료 명목으로 회사에 수천만 원을 지급한 사례에서 법원은 이사장과 업체 대표에게 같은 견지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들이 의료법인 자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회계처리를 통해 자금을 차입하고 변제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처음부터 의료법인의 외관만을 작출한 채 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며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사정으로는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이렇듯 다소 관념적인 법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형사처벌 및 막대한 환수 처분에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번 판결은 의료법인의 형식을 빌린 비의료인의 병원 운영에 제동을 걸 법적 장치가 현재로서는 미비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도 읽힌다. 이를 계기로 의료계 안팎에서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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