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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바람의 이름으로

[신간] 바람의 이름으로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6.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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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사시인회 지음/도서출판 황금알 펴냄/1만 5000원

"시(詩)가 마음의 안식이 되고 병든 몸을 치유하리라는, 그래서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메스가 되어 마침내 희망을 줄 거라는 모종의 결심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

한국의사시인회의 열한 번째 사화집 <바람의 이름으로>가 출간됐다. 

"진정한 의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시와 닿아 있다. 시와 의학의 융합은 직관·상상력·창의적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풍부하게 할 것이다."

지난 2012년 첫 발을 뗀 한국의사시인회는 창립취지문을 통해 시와 의학의 융합이라는 너른 지경을 가슴에 담았다. 

시인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고단한 삶 속에도 지난 10년간 거르지 않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자양분 삼아 시를 짓고, 같은 길을 걷는 든든한 도반으로서 서로의 시 세계를 향유했다.

이제 또 다른 10년의 여정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열한 번째 사화집은 원로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이름으로', 이원로 시인의 '박수갈채', '새'로 문을 연다. 

시인들은 공들인 시만큼 마음을 옮기는 짧은 글들로 시에 대한 사랑을 새겼다.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시를 쓰고 부대끼며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는 시인. 그러므로 나는 병듦과 죽음, 다가올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람과의 인연을 경외하며 귀하게 여긴다. 탐심과 성냄, 무지의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Amor Fati." (김기준 시인)

"아닌 듯 올라와 꽃봉오리 여미듯 피거라, 사랑아. 한 걸음 씩 오거라. 안아보고 싶다." (한현수 시인)

"'눈 감는다'라는 말이 '못 본 체한다'라는 말과 같은 말일까. 여기까지 몸과 마음 지치도록 뛰고 달려오며, 모르는 체한 사람과 일들이 길 위에 먼 길 나그네 발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번개에 데이고, 천둥에 놀란 채." (유담 시인)

"사람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나도 저렇게 보이겠지." (홍지헌 시인)

"기(氣)에 리(理)가 내재돼 있다. 물질의 우주 세계에는 영성의 우주 세계가 내재돼 있다고 믿는다. 이 힘이, 이 마음(理)이 우주의 섭리라고 흔히 표현하는 우주의 현상에 내재하는 창의적인 원리이며, 우주의 정신, 우주의 혼이라 부를 수 있다. 우주의 리, 영혼을 인식하고, 우주의 비의, 내밀한 순리의 이야기를 표현한 시가 바로 우주 영성시다." (김세영 시인)

"시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힘든 시험을 치러야 한는 막막함. 지금까지도 이런 악몽을 자주 꾼다. 가야 할 길이 아득하구나." (정의홍 시인)

"힘들고 아프다고 외롭다고 징징대지 말자. 던지지 않는 돌은 그저 발아래 있을 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본래 혼자일 뿐이다." (김완 시인)

"색다른 일이 없다. 벌써,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 걸까? 익숙함으로 길들고 있다. 모두 무탈하게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일상에 감사하고 싶다." (김호준 시인)

"가뭄 끝 단비는 꽃비가 되고 아직은 벗지 못한 마스크로 사화집을 정리하는 4월의 츄파춥스." (송명숙 시인)

"'문장이 나를 쓴다'라는 시는 포스트모던한 해체기법을 사용한 시다. 현실에서는 나라는 주체가 문장을 쓴다. 그런데 주체를 나에게서 문장으로 바꾸어 문장이 상상하고 나에 대해 글을 쓴다." (김경수 시인)

"평생 걷던 길에서 벗어나 수시로 일탈을 꿈꾸었으나 돌아보니 매양 같은 길 부끄러움만이 온통 나의 몫. 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피긴 하려는지." (손경선 시인)

"파초의 푸른 생(生)을 훔쳐보다가 동백의 붉은 주검을 바라보다가 오래된 습관처럼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꽃잎은 시들었고 가시도 무뎌졌는데 나도 모르는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김연종 시인)

"우리는 기도할 뿐이다. 삶과 죽음이 아니기를 어리석고 뭇난 날은 지나고 꽃들의 상처를 만져본다. 지녁에 꺾인 꽃, 시가 되어 피어나리." (서화 시인)

"고요에 잠겨 있는 풍경을 보면 나도 그 풍경이 되고 싶었다. 그 고요에 깊숙이 잠기어 그 고요 너머의 그 바깥에, 그 바깥에 가닿고 싶었다." (주영만 시인)

"봄이면 정원에서 싹이 트고 꽃이 핀다. 그 이름들을 알지 못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마음을 담고 보면 모두가 사랑이다. 세상도 또한 마음을 담아 살필 일이다." (최예환 시인)

"무심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소멸해갈 수밖에 없는 내 가슴에 묻어 두었던 갇힘과 열림. 나의 꿈과 사랑과 아픔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박언휘 시인)

"3년이 지난, 아니 33년 쌓인 추억들 고이 접어서 내 가슴 한 켠에 묻어놓고 이제 새 안주인 맞이하고 싶네." (권주원 시인)

"유성의 이팝나무는 봄마다 운다. 구경꾼은 새들과 햇살. 체한 봄이 잠시 의자에 기대본다." (박권수 시인)

"점점 눌변이 되어 간다. 이러다 나는 말을 잃어버릴 것 같다. 그게 그것 같은 어설픈 분별들, 명색(名色), 언어라는 옷을 입고 참 위태롭게 서 있다. 밤새 설사처럼 쏟아내던 습작 ⅓시절이 신기할 뿐이다. 기꺼운 이 가뭄 속에 발표된 시 세편을 집어 들며 부끄러울 뿐이다." (김승기 시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5월이군요. 이 봄이 가기 전에, 더늙기 전에 좋은 시 몇 편 꼭 만나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연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붑니다." (조광현 시인)

이번 사화집에는 두 원로 시인의 시 세 편, 스무 시인의 시 예순 편이 담겼다(☎ 02-2275-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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