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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감정 '공정성·객관성' 담보해야

의료감정 '공정성·객관성' 담보해야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5.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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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감정 중요성·영향력 인지…의료감정 전문가 확충 필요
국내 의료소송 인용률 높은 수준…민·형사 입증책임 큰 차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필수의료 분야 국가책임보상 등 시급

의료감정서는 증거가 되고, 영구적으로 보존되며, 전례를 남겨 인용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신을 구속하는 형사 사건에서 의료감정은 신중하고, 현명해야 한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료감정서는 증거가 되고, 영구적으로 보존되며, 전례를 남겨 인용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신을 구속하는 형사 사건에서 의료감정은 신중하고, 현명해야 한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료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감정서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지해야 하며, 의료사고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게 감정할 수 있는 전문가를 확충해야 한다."

이태희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는 최근 <대한내과학회지>에 '국내 의료분쟁 해결의 단초: 공정한 의료감정' 기고를 통해 턱없이 높은 의료소송 인용률·의사 형벌화 경향 등 국내 의료분쟁 현황을 짚고, 의료감정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의료감정은 의사의 의료행위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진료가 행해졌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의료소송에서 의료감정 결과의 이용은 법관이 채택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감정결과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게 원론적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료감정 결과가 의료소송의 향배를 결정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감정서는 증거가 되고, 영구적으로 보존되며, 전례를 남겨 인용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다양한 형태의 해결 방안이 모색된다. 당사자 사이 합의(화해 계약), 금전적 손해배상(진료비 감면·위자료 등), 자력 구제(시위·폭행·협박·인터넷 게재 등), 민원 제기(상급자·보건소·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보건복지부·수사기관 등), 조정 신청(한국소비자원·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소송 제기(법원), 형사 고소(경찰·검찰) 등이 이뤄진다. 

■ 연도별 의료과실 손해배상 소송 1심 본안사건 현황
■ 연도별 의료과실 손해배상 소송 1심 본안사건 현황

국내 의료소송 경향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민사 손해배상 청구만 하거나, 형사 고소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후 민사 손해보생 청구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 먼저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과실 추정된 손해배상 판결문을 근거로 형사 고소를 제기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이태희 교수는 "형사 재판에서는 공소 제기된 의료분쟁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소 사실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라며 "그러나 민사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형사 소송에 비해 의료인의 과실을 쉽게 입증할 수 있어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데 이 경우 형사 소송을 담당하는 판사의 심증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최근 법원은 민사 소송에서 입증 책임을 더욱 완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의사들에 대한 처벌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의료행위에 대한 형벌화 경향도 눈에 띈다. 

국내 의료인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인한 경찰과 검사 기소 현황은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다는 진단이다. 

동일한 대륙법계이면서 유사한 사법 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기소되는 의사 수가 현저히 적다. 독일의 경우는 의료인의 형사 재판 및 형사 책임은 검찰의 기소 단계에서 조건부 기소유예 등을 통해 의료행위의 형벌화를 자제하고 있으며 의료인이 의료과실 자체만으로 징역형 등과 같은 형사 처벌을 받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국내 유죄율도 다른 국가보다 높다.

이태희 교수는 "이처럼 높은 기소율과 유죄율은 방어진료의 원인이 될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이 의사의 의료행위를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단언했다. 

■ 최근 8년간 연도별 의료사고 분쟁 발생 현황(자료: <span class='searchWord'>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span>)
■ 최근 8년간 연도별 의료사고 분쟁 발생 현황(자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국내 의료사고 분쟁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건수는 2012년 385건에서 2019년 2647건으로 급증했다. 

이태희 교수는 ▲진료 기회 확대에 따른 의료행위 절대량 증가 ▲높은 의료서비스 접근성으로 인한 의사-환자 관계의 수평화 ▲의사-환자 간 신뢰 상실 ▲의료행위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악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환자 성향 ▲의료인의 의료법리에 대한 이해 부족 ▲의사와 환자 간 소통 상의 문제 ▲의료인의 과중한 업무 부담 등을 의료분쟁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이태희 교수는 "의료분쟁 확대는 의사의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방어적 진료 및 과잉진료 행위를 양산하며, 의료비는 물론이고 기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라며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전문 과목 선택 기피로 인해 전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 는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문제는 국내 의료소송 인용률이 크게 높다는 데 있다. 인용률은 전체 사건 중 원고가 전부 또는 일부 승소하거나 화해, 조정, 인낙(認諾) 등에 의해 원고 청구의 전부 또는 일부가 받아들여진 사건의 비율이다. 

국내 의료소송 인용률은 50% 안팎이다. 미국의 경우 의료사고 중 2∼14%에 대해서만 배상청구로 이어지고, 75%가 의미없는 사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턱 없이 높다. 

실상이 이렇기 때문에 의료소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료감정에 대한 이해 역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의료감정은 각 전문학회 감정 위원, 중재원 내 감정위원 및 대학병원의 해당 과목 전문의에 의해 이뤄진다. 

의료감정인은 의사 면허, 고도의 전문 지식, 충분한 임상경험, 높은 의료 윤리, 냉정하고 중립성을 유지하는 태도, 국내 관련 법규 이해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또 의료과실의 인과관계, 입증 책임 등에서 민사와 형사는 차이가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형사의 경우에는 인과관계, 입증 책임 등을 엄격히 요구하는 반면 민사의 경우에는 손해의 공평,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의료과실을 폭넓게 인정한다. 

이태희 교수는 "올바른 의료감정서 작성을 위해서는 의료인의 과실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한다. 의료인의 과실은 의료인이 마땅히 지켰어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을 의미하는데, 주의 의무에는 결과예견 의무와 결과회피 의무가 있다"라며 "결과예견 의무 위반이란 의료행위로 인해 나쁜 결과가 예상됐으나 이를 미리 막지 못한 경우이고, 결과회피 의무 위반이란 현재 의료 수준에서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택하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 현명한 의료감정서 작성을 위한 5대 원칙
■ 현명한 의료감정서 작성을 위한 5대 원칙

의료감정서 작성 5대 원칙도 제시했다. 

이태희 교수는 "의료감정서 작성의 원칙은 목적이 뚜렷해야 하고, 감정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내용이 충실해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서의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라며 "감정의사는 감정서 작성 전에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며 이는 법적 문제와 관련된 사항, 진료기록, 검사실 검사, 영상 검사 등 의료 관련 자료 및 진료기록, 진찰 소견, 치료 내용, 치료 결과 등 핵심 사항에 대한 기록을 완벽히 검토 후 감정서를 작성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감정의사의 신중하고 현명한 태도도 요청했다. 

이태희 교수는 "의료감정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해당과 전문의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감정의사는 자신의 의학 수준에 감안해 감정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전문의 수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사 수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상적인 의료행위와 진료 지침에 따랐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는 감정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라며 "감정질의서 내 반복되는 질문은 감정인의 실수를 유도해 환자측 주장을 입증하려는 질문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며, 의료감정에서 불필요한 단어, 특히 감정(感情)이 섞인 단어는 감정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등 징벌적 조치는 결국 환자에게 해가 된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의사의 소신진료를 위축시키고 방어진료 및 과잉진료 등을 양산하며 의료 비용을 상승시키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전문과목 선택 기피 현상을 촉발해 전문의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희 교수는 "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응급 및 필수의료 분야 등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영역에서 의사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려는 현 세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라며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형사 처벌 등 징벌적 조치는 오히려 대다수의 환자에게 유해한 법제도"라고 비판했다.

의료감정이 법리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이태희 교수는 "의료계는 정상적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는 형사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 배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필수의료분야 의료사고 국가책임보상 등을 제안하고 있지만, 정부나 정치인들은 다른 전문가 형평성, 국민 법감정을 내세우며 계속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라며 "의료감정이 법리적 판단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의료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감정서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지해야 한다. 또 의료사고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의료감정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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