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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7 13:15 (토)
[기획취재]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인가

[기획취재]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인가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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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땅 잃는 의사들-건강보험 이대로는 안된다(2)

<글 싣는 순서>
1. 처음부터 잘못 도입된 건강보험
2. 건강보험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대안은?
3. 의협은 왜 '건강보험 틀'을 바꾸자고 하는가?
4.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 변화 필요
5. 건강보험 수가문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6. 새로운 건강보험체계의 모습은?
7. 기획을 마치며(좌담회)

저수가·저보험료·저급여…'부실'초래

2003년 말 의료계를 혼란속으로 몰아넣은 수가계약협상 결렬. 의료계는 의료인의 정당한 의료행위 결과가 제대로 보험에 반영되는 기전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현 건강보험 시스템 하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분노를 표출했다.<편집자주>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오래전부터 의료계를 중심으로 학계와 각 관련 연구단체들은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오면서 건강보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언젠가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여러차례 보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는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건강보험에 대해 다급한 처방을 내렸으나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직까지도 요원한 상황이다.

'건강'을 상실한 대한민국 건강보험이 사회보험으로 그 건강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위정자들이 건강보험 단일체계만으로 의료 형평성 및 국민의 다양한 의료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건강보험의 제도를 이렇게 취약하게 만들었는가. 의료계와 학계 각 관련 연구자들은 건강보험제도의 급여체계와 재정상황, 진료비 지불보상제도 및 보험료 부과체계 등이 내포한 한계가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부실하게 만들어 왔다고 지적한다.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보험때문에 환부가 계속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보고된 연구보고서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연세의대 예방의학 교실에서 제출한 보고서는 현재 건강보험의 급여체계가 의료수요 변화에 미숙한 대응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만성질환으로 질병구조가 변화하며,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의료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현재의 건강보험은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건강보험 도입 당시부터 '저수가, 저보험료, 저급여' 정책을 유지해 온 탓에 인구 및 질병구조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능력을 키우지 못한 점이 결국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보험료 체계가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낮은 보험료는 급증하는 지출수준을 감당하지 못해 적자폭을 키워 결국 보험재정을 취약하게 만든 것. 또한 낮은 수가체계 하에서 의료기관은 나름대로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해 의료의 왜곡 현상을 초래한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었다.

정부 밀어부치기 과욕

저급여 역시 중증질환이나 고액 진료비에 대한 보장성을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새로운 기술을 들여와 환자들에게 적용하는데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이처럼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급여체계 운영의 경직성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공급자들 또한 자율권을 침해받고 있다. 급여범위에 포함돼 있어도 엄격한 급여기준을 적용, 실제 환자진료에 필요한 행위조차 제한하는 이같은 갈등은 의료공급자에게 진료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저수가, 저 보험료가 건강보험의 시한폭탄이 돼 96년부터 시작된 건강보험 당기적자는 이후 의약분업을 기점으로 적자폭이 커져 보험료 인상과 국고지원 확대와 같은 대응책으로는 좀처럼 적자폭이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험재정이 열악하게 된 원인은 앞에서 언급한 의료이용량 증가, 노인의료비 증가 및 신 의료기술의 발전 등의 지출요인을 수입요인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출한 만큼의 수입을 보험료 인상으로 보전해야 하는데 보험료 인상이 쉽게 이뤄지지 못했고, 보험자의 징수율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저수가 저보험료 정책으로 파생된 재정악화의 원인에 대해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야욕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가 밀어부치기식 정치 과욕으로 추진한 '전국민 의료보장 달성 목표'가 저보험료 체계의 재정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채 지나치게 낮은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적절한 수입수준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 국민들의 표심 살피기에만 급급한 정부때문에 적정 수준의 보험료 부과 시기를 놓쳐 결국 보험재정의 적자폭을 키워버린 구조를 낳은 것이다.

재정악화 의료계로 책인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된 이유가 의료계의 높은 수가와 허위·과대청구 때문이라며 의료계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2001년부터 본격화된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을 시작으로 주사제 처방료와 조제료가 삭감됐으며, 진찰료 체감제, 야간가산 적용 시간대 조정, 보험약가 인하 등 의료계를 압박하는 갖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조치는 결국 수가를 구조적으로 인하시키는 기전으로 작용했으며, 급여와 심사기준을 합리화한다는 명목하에 의료기관에 삭감의 칼을 휘두르는 한편 허위·부정청구 근절을 위한 요양기관 실사 강화 등 급여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해 모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치료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진료를 했음에도 2억원 가량의 삭감을 하자, 환자 진료를 포기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었다. "정부의 재정안정화 대책이후 삭감기준이 더욱 엄격해졌다"는 관련자의 말은 재정대책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처방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이 해를 거듭할 수록 점차 명확해 지고 있다. 일반의약품의 비급여 대상 확대와 포괄수가제 등을 제시했으나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한다는 의협의 강력한 저항으로 제도의 타당성 조차 상실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연구자들과 학계에서는 건강보험 체계 개편이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학계에서는 의료의 공익성을 담보로 정부의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적투자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공급체계가 민간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적정급여-적정수가 목청 높다

실제 연세의대에서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건강보험의 재원조달이 건강기금과 요양기금으로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제, 현재의 재원조달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즉 급여비 증가추세에 맞춰 재정수입도 안정적으로 확충토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며, 만성질환에 대한 재정조달은 요양기금으로 별도로 구성하는 등 재원마련 및 운영을 세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 보고서는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의료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보험이 담당하되, 의료공급과 재원조달 방법을 다양화 함으로써 소비자와 공급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민간혼합형 보험의 도입이 현재 단일 재원으로 다양한 수요를 해결해야 하는 보험 능력한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급여범위 또한 적정수준으로 넓혀야 하며 보험수가도 적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데, 단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진료원가 환산지수와 경영수지 환산지수는 철저한 분석을 전제로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2002년도에 발족한 대통령직속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에서도 건강보험 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언급된 적이 있다. 의발특위 산하 건강보험위원회에서는 고령화 등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건강보험체계 개편의 시급성을 인식, 의사의 업무량과 관리비용이 혼재한 현재와 같은 상대가치수가제도를 개편하고, 요양기관 계약제 도입을 검토함으로써 의료시장의 경직성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는 등 보험 재정건실화와 함께 의료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관련 연구자들은 민간건강보험과 공보험간의 역할정립을 전제로 민간보험의 도입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 이를 통해 공보험의 재정안정화 기틀을 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도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공보험으로 보장하고, 그 외의 국민은 격에 맞는 진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공보험과 경쟁할 수 있는 사보험'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현실성 미흡 개선안에 우려

하지만 의료계와 학계 등 관련 연구자들의 노력과 달리 정부의 개선 노력은 미흡한 것으로 비쳐진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대책을 마련하면서 2006년까지는 재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야심찬 의지를 밝히고는 있으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차례 회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의료계로부터는 따가운 시선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보다는 급여범위 제한과 보험수가 통제 등 의료 공급자에 대한 목죄기식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의료계의 목소리를 외면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현가능성이 낮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어 의료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실제 지난 해 '참여복지 5개년 계획'과 '보건의료발전기획단'의 건강보험 발전방안에서 정부는 단계적 총액계약제 확대와 보험급여 확대, DRG 확대 등을 제시했으나 의료계와 관련 연구자들은 근본 해결책으로서는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관련 연구자 조차도 "5개년 계획안에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의료제도 개편의 의지를 밝히고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부딪히는 면도 있고 또 비용면에서 실현가능성은 낮다"고 말해 정부의 생색내기식 정책이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2004년 현재 건강보험의 당기수지 적자는 약 7백억원. 연초부터 정부는 건강보험의 당기수지 적자가 2003년 말 2천억원에서 급격히 줄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의 가능성이 크다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실적에 대해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관련 연구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정부가 2004년 현재 시행하고 있는 '건강보험 살리기 처방전'이 그 근본 원인을 수술하는 해결책이 아닌 땜질식 처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뚜렸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은 의료계가 정부의 처방만을 손놓고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 의협은 다음 달 22일 예정된 전국 집회에 앞서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체계 개편에 대한 연구결과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의협은 무능력하고 일관성을 잃은 보건의료정책에 강력하게 대응함으로써 의료계가 더이상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기획취재1팀>
김영숙기자 kimys@kma.org
이정환기자 leejh91@kma.org
김인혜기자 inhey@kma.org
이현식기자 hslee03@kma.org
이정환기자 leejh91@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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