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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임상진료지침 어떻게 볼 것인가

[집중취재]임상진료지침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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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합의' 아닌 공론 속 논의 진전 기대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의학계 및 의료계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구미에서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 출현한 이래 임상연구로 부터 나온 근거를 검토해서 임상적 의사결정에 활용해야 한다는 흐름과 함께 근거중심적 임상진료지침의 생산이 촉진돼 왔으나 국내에서는 몇 몇 학회를 중심으로 개발되는 정도로 아직은 걸음마 수준. 하지만 최근 의료의 질관리와 연계돼 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담론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관심은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할 뿐 아니라, 고가의 의료기술 도입 및 인구의 노령화 등으로 증가하는 보건의료비용에 대한 부담이 늘고 있으며, 또 임상진료의 변이 중 상당한 부분이 과다이용 혹은 과소이용과 같은 부적절한 진료에서 발생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자는 가능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며, 소비자는 받고 싶어하는 내적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건사회연구원의 김남순 연구원은 소개한다.

이와 같은 임상진료지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특정임상상황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행하고 의료제공자와 환자의 결정을 돕기 위해 체계적으로 개발된 도구'다. 말 그대로 임상진료지침은 ▲근거중심의 명확하고 접근가능한 표준 제정 ▲외래 및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보다 용이하고 객관적으로 임상적 의사결정 ▲전문가의 업무수행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 제공 ▲보건의료서비스의 비용·효과의 개선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의료를 대상으로 하는 외부의 통제기구로 이용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의료보험의 도입이란 외부적 환경 변화로 규격화된 진료를 일정 부분 강요받아온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임상진료지침이 또다른 족쇄로 의사들이 진료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바로보는 의사들의 시선이 고울 수 만은 없다. 한마디로 의사들은 '적절한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원칙론 측면에서 임상진료지침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나 이에 비례한 우려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최근 의학회 주최로 열린 임상진료지침 심포지엄에서도 임상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러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임상진료지침의 개발은 활발한 편이며 지침의 개발, 확산 및 실행과 관련된 국가적 정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핀란드·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등이 임상진료지침과 관련된 국가정책을 갖고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경우 1996년 보건부에서 임상가이드라인과 질 모니터링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면서부터 임상진료지침이 국가정책으로 자리잡고 질관리의 공식적 기구로 National Institute for Clinical Excellence(NICE)가 설립되어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왕립임상학회가 주도해 1993년 Scottish Intercollegiate Guideine Newwork(SIGN)이 설립돼 1995년 최초의 임상지침을 개발한 이래 매년 8~10개 정도의 지침을 개발해 현재 66개의 지침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국가단체로 ANAES가 설립돼 100개 이상의 지침을 출간했다.
임상진료지침의 수는 미국과 캐나다가 단연 선두. 28,000개의 지침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1989년 Agency for health Care Policy and Research(ANCPR)이 설립된 이래 임상진료지침 개발 방법 및 자료를 축적하고 있고, 미국의사연합 및 미국 보건의료계획연합과 함께 Clinical Clearing House를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질향상과 함께 비용통제에 사용되고 있으며, 상당수의 근거중심 임상진료지침이 정부패널과 임상학회등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같은 선진국의 공통점은 임상진료지침을 질 향상 활동과 연결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근거중심적 방법론 등 과학적으로 엄격한 방법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임상진료지침 개발은 확산 및 실행전략과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국제적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 유럽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진료지침 프로그램으로 The Appraisal of Guidelines, Rearch and Evaluation in Europe(AGREE)가 98년 설립돼 임상진료지침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이들이 개발한 도구는 유럽의회 뿐 아니라 WHO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11월에는 Guideline International Network이 설립돼 창립총회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남순 연구원은 그동안 전문학회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개발되던 추세에서 국가적 임상진료지침 프로그램에서 개발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개발된 임상진료지침이 일정시간이 지나면 그 유효성이 감소되었으나 현재는 살아있는 임상진료지침(living guideline)의 개념으로 바뀌어 지속적으로 근거와 경험을 검토하여 개정하며, 실제 임상진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전통적으로 임상진료지침은 의사를 대상으로 했으나 최근에는 환자가 지침 개발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침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 의하면 2003년까지 약 13개 학회에서 17종의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임상진료지침 개발 그룹의 규모는 최소 9명에서 최대 61명까지 범위가 넓었으며, 대부분 단일 진료과목의사만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학회가 임상진료지침 개발에 사용한 방법은 문헌탐색과정에서 과학적 검색전략을 사용하는 경우는 소수였고, 대부분 문헌을 주관적으로 평가했을 뿐 아니라 비공식적 합의를 사용해 권장사항을 도출했다.

국내 일차의료의사들의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인식도 조사됐는데 '임상진료지침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사가 56%에 이르고, '임상진료지침이 진료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의사도 57%였다. 임상진료지침개발 그룹을 구성할 때 임상의사외에 다른 전문가나 환자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낮은 수준(17.1%~4.8%)의 동의율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상의 결과를 종합할 때 현재까지 국내에서 임상학회가 개발한 지침의 대부분이 ▲개발그룹을 다학제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있으며 ▲체계적 리뷰를 하지 않고 ▲비공식적 합의를 통해 권장사항을 도출했다"고 결론을 내려, 국내 임상진료지침이 양질의 지침을 개발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일차의료의사의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음을 시사했다.

이와 반대로 선진국 일반의사들의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례로 이탈리아 의사들은 임상진료지침을 진료의 질 향상 및 변이를 줄이는 것이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80%로 높았으며, 임상진료지침이 진료의 자율성을 구속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은 국내의 의료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와 의사와의 신뢰관계가 불안전하고, 국내 환자들 대부분이 빠른 치유를 기대하는가 하면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은 만큼 임상진료지침의 도입은 임상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장치로 더 나아가 진료비 심사와 연계해 의사들을 옥죄는 또다른 규제로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지역사회 폐렴의 임상치료지침' 개발에 참여한 송영구 교수(연세의대)는 "치료지침은 의미 그대로 의사가 쉽게 처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전문가들의 권장사항이다. 심사평가나 치료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이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며, " 치료지침의 권장사항이 마치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사항처럼 악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임상진료지침의 필요성에는 국내 의학자들이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의학회 주최로 열린 임상진료지침 심포지엄에서 '근거중심 임상지침 개발 발전방안'을 발표한 배희준 교수(을지의대 신경과학)는 "국내 임상진료지침으로 볼 수있는 것이 심사평가원의 심사지침이 유일하다. 심평원의 심사지침이 의료의 적절한 진료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임상진료지침 개발의 필요성이 강조했다.

선진외국의 예에서 나왔듯이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임상진료지침에 관한 한 국가적 정책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임상진료지침 개발에 있어 정부의 예산지원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남순 연구원은 선진국들의 경우 ▲국가가 임상진료지침 개발에 필요한 과학적인 근거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급 ▲정부가 전문가단체·소비자단체·보험자 등이 연합하여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한 독립적인 전문기구를 공동으로 운영하거나 국가가 독자적으로 정부기관을 설립 ▲임상진료지침의 난립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Guideline Clearing Center운영을 통해 다양한 지침들을 평가, 관리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의학회 주최 토론회에서는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들 대부분은 '임상진료지침 개발 전문기관'의 설립에 의견을 같이했다.

전문기관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인력과 재원을 갖추게 되므로 양질의 지침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 다학제간 개발그룹 구성에 유리한 점을 꼽혔으며, 임상지침 개발에 투자되는 자원의 중복을 예방하고 진료지침과 관련된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남순 연구원은 "전문기구에 의학회와 임상학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의사들의 임상진료지침 개발, 확산 및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소비자와 보건의료정책 결정자들에게 의료계의 집중적인 노력을 알려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정책적 지원 및 예산증진을 용이하게 할 것"고 말한다.

그러나 국내의 특수한 상황, 다시 말해 단기간에 전국민의료보험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공급자들의 피해의식, 비용효과=규격진료, 진료비 삭감이라는 등식이 만연된 현재 섣부른 임상진료지침의 적용은 의사들에게 또다른 굴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임상진료지침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사항'이라기 보다는 환자의 개별 임상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는 권장사항으로 인식되어야 만 의사들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의사들도 대사회적 신뢰도를 높이고 특정상황에서 적절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임상진료지침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개발된 임상진료지침의 많은 수가 동일 전문가 집단의 합의사항으로 이루졌다는 것은 의료계 내에서도 그들만의 지침으로 끝날 수 있으며, 세계적 추세로 볼 때 더욱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듯이 보인다.

임상진료지침의 필요성은 그동안 간간이 이야기되어 왔지만 2003년 말 의학회에 의해 공론화의 장이 마련됐다. 2004년에는 더 진전된 모습이 기대된다.
 
김영숙기자 kimys@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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