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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상)-규제…규제

[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상)-규제…규제

  • 김병덕기자 kduck@kma.org
  • 승인 200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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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규제…규제…"자율은 없다"



공급자(1차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의료수요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진료강도의 강화를 통한 건당진료비의 증가 및 내원일당 진료비의 증가, 약제 투여 강도의 증가, 장기처방의 증가, 비급여 항목의 개발 등 정상 의료의 왜곡화 현상증가, 보험에 의존하는 내과·소아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의 경영 악화 등을 예상했다. 이와 함께 약국에 미치는 영향으로 장기처방에 따른 약제비 증가로 약국수입 증가, 고가액 처방에 따른 약제비 증가, 일반약의 매출 증가 등을 지적했다. 이 의사는 환자의 1차 의료기관 접근성이 어려워져 의료 보장성이 훼손되며, 1차의료기관의 경영악화를 가속하여 개원가의 폐업률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약제비의 증가로 인한 보험재정의 절감효과는 없이 돈은 돈대로 들고 국민과 의사들에게 불만의 소지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1차의료의 문턱을 높이는 것은 국민의 의료이용 행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대한 의료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관련단체의 의견수렴과 국민 대상의 여론수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1차의료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20년 영국의 `의료와 행정서비스에 대한 중앙위원회'가 제출한 소위 `Dawson Report'에서부터다. 도우손 보고서는 1차의료를 “그 지역 의사가 예방과 치료서비스를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1974년 Starfield B.는 1차의료를 “1차 접촉 의료이고, 질병의 존재여부와는 관계없이 환자에 대하여 지속적 책임을 갖는 의료이며, 환자에게 전인적으로 봉사하는 의료”라고 가다듬었다. 1994년 미국의학연구원은 1차의료를 “통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대부분의 건강요구를 해결하고, 환자와의 지속적인 동반 관계를 이룩하며, 가족과 지역사회 내에서 활동하는 임상의사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나라는 1982년 한국인구보건원이 `전국 보건의료망 편성을 위한 연구'를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제안하고 1차의료의 개념을 소개한 이래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을 확대·실시하면서 뿌리내렸다고 할 수 있다.

이정권 교수(한양의대 가정의학)는 1차의료는 “환자와 동반자 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가족과 지역사회 환경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의 보건의료 욕구-즉 한 개인의 삶의 기능에 개입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걱정거리-에 부응할 책임을 지는 의사에 의해 제공되는 통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보건의료서비스”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1차의료는 단순히 최초의 접촉의료로 국한되지 않으며,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건강 유지에 있어 지속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의료전달의 한 형태로서 환자와 의사간의 상호 관계와 의사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다. 1차의료의 범위도 생물학적·행동적·사회적인 측면에서 환자의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OECD는 1994년 “계속된 노인인구의 증가, 보험의 확대, 의료기술의 발전, 소득의 증가, 의료이용률의 증가, 의료비 단가의 상승 등으로 인한 계속적인 의료비 상승은 오늘날 전세계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이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이다. 이에 따라 어떻게 하면 높은 질적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사가 되었다.

1차의료의 강화는 이런 맥락에서 최근 여러 선진국들의 의료제도 개혁의 핵심과제로 대두되었다”며 1차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OECD는 1차의료를 점차 가속화되는 의료비 상승환경 하에서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키워드로 인식했으며, 이러한 전망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정권 교수(한양의대 가정의학)는 2000년 3월 대한가정의학회지 21권 `우리 나라 일차의료의사 양성정책과 3차 병원의 역할'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1차의료 강화는 국가 보건의료의 핵심주제가 되었다.

이미 1차의료가 발달되어 있는 나라는 `1차의료의 질 보장', 전문의료가 발전하여 의료비 문제로 골치를 앓는 나라는 `1차의료의 재발견', 아직 의료체계가 미흡한 나라는 `1차의료의 확립'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며 국가보건의료의 핵심주제는 1차의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새천년은 노령인구와 만성퇴행성질환의 증가로 의료비는 앙등하고 이는 복지국가의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또 치료보다는 예방 진료가 강조되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며, 이를 위해 1차의료 강화가 유일한 대안”이라며 향후 복지국가의 의료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1차의료임을 명확히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차의료의 강화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 국가 정책적으로 1차의료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전세계적인 대세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이러함에도 한국의 1차 의료는 여전히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성철 의협 기획정책실장은 “의료전달체계의 목적은 환자의 의료 요구를 누락·중복되지 않게 수용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의료이용의 흐름을 합리화함으로써 국민의료비를 절감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면서 정부가 내세운 의료전달체계의 목적도 첫째, 국민의 의료이용 편의와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 둘째, 의료자원의 낭비를 방지하고 효율적인 자원 사용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보험재정의 안정도모 및 국민의료비의 급격한 증가를 사전에 예방, 셋째, 지역간 의료기관간의 균형발전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차의료가 담당해야 할 환자를 2, 3차 의료기관이 담당하는 현상이 빚어지면서 의료전달체계의 본래 목적이 실종되고 있다. 국민의 왜곡된 의료이용과 대형병원 선호의식에 따른 대형의료기관으로의 환자집중 문제는 여전히 의료전달체계와 1차의료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심사평가원이 집계한 2002년 의과계

요양기관의 총진료비 11조9,935억원 가운데 42개 종합전문요양기관이 21.6%(2조5,922억원)를, 241개 종합병원이 19.3%(2조3,149억원)를 차지, 종합전문요양기관과 종합병원이 전체 진료비의 41%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합전문요양기관은 총입원진료비(4조5,601억원)의 38.7%(1조7,639억원)를, 총외래진료비(7조4,333억원)의 11.1%(8,282억원)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료의 상품화 경향과 함께 재벌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대형병원의 몸집 부풀리기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3년 이내에 서울지역 대형병원급에서만 4,000병상이 증설될 계획이다.

대형병원의 병상증설 경쟁이 가속화되고, 외래 진료가 강화되면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대형병원의 몸집 부풀리기는 상대적으로 질적인 경쟁력은 물론 접근성과 지역 친화력에서도 변별력이 없는 중소병원과 1차의료기관의 붕괴현상을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관의 대형화와 집중화가 두드러지고, 환자의 고급의료 선호현상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중소병원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1차의료의 영역마저 대형병원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면서 의료전달체계는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개원가는 생존을 위해 고급화와 특수화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고루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서의 목표를 상실한 채 무한경쟁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의료의 위기상황이 초래하게된 원인은 의료 영역의 자체적인 문제와 더불어 시민, 건강보험제도, 행정당국, 사법부 등의 외부압력에 의해 계속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손명세 교수(연세의대 예방의학)의 분석이다.

손 교수는 대한가정의학회지 2000년 5월호에서 `의료와 일차의료의 전망'을 통해 급성 전염병질환 중심에서 만성 퇴행성질환 중심으로 질병양상이 변화해 1차 진료부문에서 의료수요가 격감한 반면 의사 수는 41개 의과대학에서 매년 3,300명이 배출되는데 따라 1인당 환자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의약분업, 건강보험 통합, 포괄수가제 등 의료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의료계의 정상적이고 창의적인 기여를 건강보험제도의 틀 속으로 밀어 넣어 규제를 통해 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는 의료행위의 정의, 의료행위의 빈도, 의료행위의 범위, 의료수가 등 의료행위 전반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규제일변도의 건강보험 급여정책을 통해 의료계를 계속 위축시켜 왔다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의료의 위축요인으로 건강보험으로부터의 압력도 꼽았다. 전세계적으로 의료계와 보험자가 협력하여 건강보험을 발전시키고 있는 추세이나 한국은 수가·심사 등의 지나친 규제를 통해 의료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진 내용을 보건복지부를 통해 고시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등 의료계의 자율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 교수는 건강보험으로부터의 압력은 의료계 있어 시장기능이 사라지게 만들고, 의사들의 진료 행태를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의료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교수는 이러한 상황은 1차 의료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의료소송에 있어서도 환자 측에 치우친 판결로 인해 의료인의 방어진료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며, 소송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진료행위라는 계약에 있어 엄연한 계약 당사자인 보험자(건강보험)의 책임에 대해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책보고서(1996) `1차의료의 현황과 발전방안'에서는 “행위별 수가체제에서 진단, 치료, 검사 중심으로 수가가 산정되어 있어 서비스의 판정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예방서비스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서비스에 대한 수가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수가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점을 지적했다. 1차의료에서 상담·자문·지도관리료 등의 수가가 인정되지 않다보니 포괄적이고 예방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보다는 치료위주의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본진료료가 의원 진료수입의 44%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1차의료기관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는 보고서의 지적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박정한 교수는 “의료체계를 1차의료 중심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돈 안들이고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함으로써 1차의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정부의 정책적 의지 부족과 미비한 재정지원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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