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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7 13:15 (토)
마지막으로 '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서승욱 회장 조사

마지막으로 '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서승욱 회장 조사

  • 김인혜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3.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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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승욱 대덕구의사회 회장님 영전에 바칩니다.
 
선생님!
이 어찌된 청천벽력같은 소리입니까.
바로 오늘 점심때도 같이 식사하며 의료계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신던 선생님께서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요.
그날 밤 늦은 시각에 날아든 한통의 전화는 그야말로 황망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나요.
그것도 아직 50도 안된 한참 의욕적으로 인생을 꾸려갈 나이에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아직 장성하지 않은 두 남매는 어찌하라고요.
너무나도 억울하고 비통합니다.
 
선생님!
의료계가 의약분업으로 격랑을 타고 있을때 선생님께서는 의권투쟁에 지쳐 이탈하는 저희 회원들을 끝까지 격려하고 이끌어주셔서 막강 대덕구7반이란 별명까지 얻었지요.

그 이후로 침체된 의료계를 그렇게 걱정하시면서, 파업투쟁의 와중에서 생긴 회원들간의 반목을 없애시려고 그렇게 보듬고 어루만져주시던 선생님이 아니셨습니까.
식구끼리 싸워 잘되는 가정 없다면서 서로에게 이해와 사랑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께서 대전 대덕구의 새 의사회장으로 취임하시면서 꼭 한번 해보자고 하신 거 생각나시죠. "의사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봉사활동을 참 많이 하고 있는데 사회에서 보는 시각은 그렇지 않다. 의사들의 봉사도 남들이 하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하자"

그래서 생각하신 것이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덕구가 공업단지을 끼고 있어서 외국인근로자가 참 많은데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하자고 하신것입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서 할 것이고, 내실있고 영속적인 진료소를 운영하지고 하셨습니다.
일반 봉사단체나 종교단체가 아닌 대덕구의사회가 계속 운영하게 될 진료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의사회 차원에서 운영하면 모든 과가 골고루 참여할수 있고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성공하면 참 좋은 공익사업이 될거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게 자료를 모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이 문제가 되면 가능한 한 회장님께서 다 해결하시겠다고 하시고 구체적인 복안까지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런 좋은 계획을 바로 이틀전 회의에서 회원들에게 살짝 운을 떼셨습니다.
다들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았습니까?
회장님!이제 누가 나서서 이 좋은 구상을 성사시키란 말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남다르셨죠.
비가오나 눈이오나 전날 음주를 했거나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꼬박 두시간 동안 운동을 하셨지요. 그게 벌써 몇년 동안입니까.

친화력에 있어서도 대단하셨지요. 대덕구의사회는 물론이고 대전시의사회 내과개원의모임 대학동창모임 고등학교모임 성당레지오활동 스포츠동아리 등 등 에서 선생님은 사랑받는 후배로서,존경받는 선배로서 모임임에 있어 모든 사람들의 가운데에 계셨습니다.
남몰래 남을 돕는 일도 참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무의촌 진료에 의사가 부족하다면 모든 일 마다하고 달려가시고 지역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사에도 꼭 참여하셨고 하물며 병원찾아오는 걸인에게도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셨던 선생님이 아니셨던가요.
그런 선생님을 가까이 보면서 항상 부끄럽게 생각해오던 것이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어디서 본단 말입니까.
 
선생님!
돌아가시기 이틀전이었지요. 식사모임에서 장기기증 문제가 나왔을때 장기기증서약을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좌중에 있던 사람에게 저녁에 꼭 서약서를 갖고 오라고 하셨지요.
그러고 만 하루만에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이게 암시였나요?
그자리서 그말만 안했어도 이런일이 안생겼을까요? 모든게 야속하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장으로서도 참 열심히 사셨습니다. 자녀교육에 있어 학업성적보다 예절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우선시 하셨지만자녀들은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금년에 장남이 의과대학에 합격한 후 의업을 가업으로 전수할수 있어 참 좋다고 흡족해 하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밟고 전문의 취득하는걸 다 보셨어야지요.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다 누리셨어야죠. 무엇이 그리 급해 이리 빨리 가셨나요. 세상사람 누구에게도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급히 떠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조사를 쓰면서도 몇번이나 울컥하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첨 만난건 91년니까 벌써 13년이나 되었네요. 걱정과 긴장속에 객지에 첫 개원을 했을때 선생님께서는 대학후배도 아니고 고향후배도 아닌 생면부지의 저를 친동생처럼 따듯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주 모임에 불러주시고 많은 좋은 조언을 해주셨지요. 제가 객지에서 지금까지 별탈없이 환자를 볼수 있는 것이 선생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 속에 남다른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친형처럼 느껴졌지만 한번도 형이라 부른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 이땅에 계시지 않지만 꼭 형이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군요.
용서해주십시요. "혀어엉! " 형!
이제 무지한 인간군상들이 우글거리는 이승을 떠나 부디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소서.이제 홀로 남으신 사모님과 도영 이화 두 자녀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대전 대덕구의사회 기획이사 홍사웅 울면서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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