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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동 사진관
이촌동 사진관 28년 전 의협 회관에 둥지 튼 '한국의사국가시험원'
2020. 11. 22 by 김선경 기자

 

재단법인 한국의사국가시험원 개원식이 1992년 5월 이촌동 의협회관 5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개원식에 앞서 김재전 의협회장, 안필수 보사부 장관을 비롯한 내빈들이 의협회관 현관 앞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갑수 한국의과대학협의회장, 안필수 보건사회부 장관, 이문호 한국의사국가시험원 초대원장, 김재전 한국의사국가시험원 이사장, 한두진 병원협회장.(1992.5.16).ⓒ의협신문 DB
재단법인 한국의사국가시험원 개원식이 1992년 5월 이촌동 의협회관 5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개원식에 앞서 김재전 의협회장, 안필수 보사부 장관을 비롯한 내빈들이 의협회관 현관 앞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갑수 한국의과대학협의회장, 안필수 보건사회부 장관, 이문호 한국의사국가시험원 초대원장, 김재전 한국의사국가시험원 이사장, 한두진 병원협회장.(1992.5.16).ⓒ의협신문 DB

 

의료계의 숙원사업인 한국의사국가시험원이 1992년 5월 16일 이촌동 대한의사협회에서 현판식을 갖고 발족했다.

1977년 한국의학교육협회가 주최한 '의학교육세미나'에서 의사국가시험원 설립 필요성이 제기된 후 1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의사국가고시는 1952년부터 1993년까지 42년 동안 정부가 주도하였으나, 한국의사국가시험원 개원으로 민간인 의협이 주도하면서 의료계 역사의 새 장을 열게 되었다.

그동안 의료계는 국립보건원 주관의 의사국시제도에서 시험출제 기준의 불완전, 시험문제의 질적 관리 체계결여, 시험과목 및 문항 수, 배점 타당의 불합리 등 질적 관리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전문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특히 198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된 신설의대로 인해 응시자가 3000명을 돌파하게 되면서 관 주도의 의사국시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됐고, 의협이 주장한 의사국시제도의 전문성 확립이 당위성을 얻게 됐다. 

의협은 1990년 3월 보사부장관에게 의사국가시험원 설립을 건의했고, 1992년 2월 의협의 출연으로 자산을 3억 원으로 증액한 뒤 마침내 그해 4월 정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의사국시원은 1995년 제 58회 의사국시를 시작으로 의사국가시험을 주관했다.

의사국시원은 출제경향을 '단순 암기형'에서 '임상증례 위주의 문제해결형' 중심으로 개선하고, 시험 문항 수를 늘였으며 문항 수 증가에 따라 이틀간 시험 연장을 쟁취 하는 등 시험의 질을 높이고, 수험생을 위한 제도 개선에 앞장섰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선 국시 후 인턴선발 시행'으로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그동안 면허 없는 의사가 인턴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관행을 바로 잡은 것은 괄목할 만한 큰 성과였다.

한국의사국가시험원은 이후 1998년 의협 4층에 있던 사무실을 송파구 풍납동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의사 등 24개 직종의 보건인 국가시험에 대한 면허 및 자격시험을 시행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이후 국시원은 2006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새 건물로 이전했다.

ⓒ의협신문 DB
ⓒ의협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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