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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동 사진관
이촌동 사진관 2000년 의약분업투쟁-③철창에 갇힌 의권 "오늘부로 폐업합니다"
이촌동 사진관 철창에 갇힌 의권 "오늘부로 폐업합니다"
2020. 07. 17 by 김선경 기자
2000년 6월 의약분업 저지 폐업투쟁 첫 날, 서울 용산구 소재 한 동네의원 출입구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닫힌 문 안에 '우리는 끝까지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습니다. 2000년 6월 20일 폐업합니다'란 의원의 안내문과,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에서 보낸 '의료기관 및 의료인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공문이 나란히 붙어있다. (2000, 6, 20) ⓒ의협신문 DB
2000년 6월 의약분업 저지 폐업투쟁 첫 날, 서울 용산구 소재 한 동네의원 출입구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닫힌 문 안에 '우리는 끝까지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습니다. 2000년 6월 20일 폐업합니다'란 의원의 안내문과,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에서 보낸 '의료기관 및 의료인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공문이 나란히 붙어있다. (2000, 6, 20) ⓒ의협신문 DB

 

대한의사협회는 의약분업 시행을 목전에 둔 2000년 6월 4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의료계 요구 10개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전국적인 폐업을 강행하겠다고 경고했다.

의료계가 강력한 투쟁 방침을 정하자 보건복지부는 보험수가 9.2% 인상안을 제시하며 회유를 시도했지만, 전국 회원 98.9%가 정부안을 거부하고 무기한 폐업에 동의, 그 달 20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의협은 19일 자정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폐업에 들어가기 전 당시 이해찬 민주당 정책위원장과 보건복지위 소속 위원들이 의협을 찾아 면담했으나 특별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무산됐다.

폐업 투쟁 첫 날, 전국 1만 8000여 동네 의원들 중 90%이상이 문을 닫았다. 전국적인 폐업투쟁을 앞두고 일괄 사표를 제출한 1만 6000여 전공의들은 같은 날 전국 각지에서 출정식을 갖고 의협의 투쟁에 힘을 실었다.

전국 41개 의과대학 학생 2만 여명도 결의대회를 열고 선배 의사들과 연대투쟁을 다짐하는 동맹휴업을 결의했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때는 교수직을 사퇴한다는 강경투쟁방침을 선포했다.

한국의료 사상 초유의 그야말로 '의료대란'이 현실화 됐다. 사실상 모든 동네의원과 병원들이 동참한 6월 파업 투쟁은 사태의 근원을 모른 채 안일하게 대처하던 정부 당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만나 7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약속하면서 의협과 의쟁투는 전국 회원투표를 통해 6월 26일 폐업을 철회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의 약속은 무위로 돌아갔고, 이후 세 차례의 휴폐업 투쟁이 반복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한국 의료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밀레니엄 시대를 열었던 2000년 대한민국 의사들은 정부의 의약분업 강제 시행에 맞서 '의권쟁취'를 외치며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다. 당시 의료계를 매도했던 정부와 언론·시민단체는 '의료대란'으로, 의료계는 '의권쟁취 투쟁'으로 서로 다르게 불린 역사의 현장을 의약분업 시행 20주년을 맞아 다시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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