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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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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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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예방 의사가 나선다 ⑥
▲ 김윤종(동아일보 기자)

"………."

침묵으로 일관한다. 학대를 당한 노인들을 만나 좌초지종을 물어볼 때마다 경험하는 일이다. 30분 이상 주저하다 겨우 말을 꺼낸다. 학대피해노인의 첫 마디는 거의 다 비슷하다. "휴….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함께 사는 아들에게 2년여 걸쳐 주먹질을 당한 김모 할머니(80)도, 아들 부부와 함께 살면서 3년 간 언어폭력에 시달렸던 박모 할머니(87)도 "남들 보기가 부끄러워서…. 빨리 죽어야 이 꼴 안보고 살지"라며 분노하기보다는 자조하는 말투였다.

말문이 터진 어르신들은 그간의 학대 피해를 조금씩 이야기하며 가슴에 담은 한을 내뱉는다. 이후 또 다시 마치 입을 맞춘 듯 비슷한 말을 한다. "우리 애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착한 아들(혹은 딸)이야. 내가 그냥 참고 살아야지."

현장에서 만난 학대 노인들과의 대화 속에는 우리 사회 노인학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선 앞서 밝힌 대로 노인들은 자신을 폭행한 가해자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에 피멍이 들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인학대 가해자는 주로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해온, 그래서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가족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에는 3520건으로, 2009년(2674건)보다 32%나 증가했다. 놀랍게도 지난해 노인 학대 가해자 4013명 중 아들이 1619명(40.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배우자 551명(13.7%)·딸 519명(13.0%) 순이었다.

가해자 중 상당수가 가족이다 보니 피해 노인들은 가해자 공개는 물론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를 학대했지만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2012년 조사에서 노인들은 '학대를 경험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40.7% 만이 '신고한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60%는 신고하지 않고 속으로 앓고 있는 셈이다. 8년 동안 아들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이모 할머니는 "얼마나 못났기에 아들한테 맞았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일체 말도 꺼내지 못했다"며 "더구나 우리 아들이 안 좋게 되면 큰일"이라고 귀띔했다.

가해자가 주로 가족인 점, 피해자 역시 외부에 알리길 꺼려하는 점은 노인학대를 사회 문제가 아닌 개인 혹은 가정 영역으로 제한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서로 쉬쉬하는 탓에 이웃집에서 노인학대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해도 선뜻 신고하지 못한다.

행여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도 '가족 간 일'이라며 조사를 거부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계 인식이 감소하고 은폐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당연히 노인 학대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처벌이 어려워지고 가해자가 더욱 활개를 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거칠게 말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노인학대는 가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자 나아가 '범죄'라는 인식을 사회 저변에 확대시키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다. 

우선 개개인은 노인학대를 나와는 상관없는 특정 사건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내 자식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나 역시 나이가 들면 노인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더구나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학대는 정신적·정서적 폭력 뿐 아니라 유기·방임·자기방임도 포함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지난해 노인학대 중 방임이 18.6%, 경제적 학대가 9.0%나 됐다.

전통적인 효 사상이 붕괴되면서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할 대상'이 아닌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풍토에다 서민경제가 팍팍해진 상황에서 누구나 노인이 된 후 경제적으로 방임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나 역시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는 마음으로 노인학대에 관심을 갖고,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하면 적극 신고해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노인 학대 방지법'이 하루속히 제정돼야 할 것이다. '울산 계모사건' '칠곡 계모사건' 등으로 아동학대특례법이 생겼고 아동학대를 가정 영역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모했다.

이제는 아동학대를 크나큰 사회문제이자 범죄로 보고 적극 대처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생겼다. 노인학대도 마찬가지다. 노인학대방지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후 사회적 인식 변화를 기반으로 가해자와 학대노인을 격리하고 일정 거리 이내의 접근금지 시키는 조치를 비롯해 가해 가족 치료프로그램 등도 노인학대 관련 처벌과 제도를 선진국 수준에 맞게 보완해야 할 것이다. 노인 학대. 이제는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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