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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의사의 전문소생술 자격증 취득기
성형외과 의사의 전문소생술 자격증 취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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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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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열 성형외과 전문의(대만장궁병원 두개안면센터 펠로우)
▲ 한승열 성형외과 전문의(대만장궁병원 두개안면센터 펠로우)

성형외과 의사로 살면서 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열등감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열등감의 시작은 필자가 성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지 모를 답답함에 송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다행히 119구조대가 빨리 와서 그 남자를 건져냈지만, 의식이 없자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여기 의사 없냐"고 외쳤다. 그 순간 필자는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나서지 못하고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물론 구조대원들의 노련한 조치 덕분에 바다에 빠졌던 남자는 의식이 호전된 채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필자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의사지만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아니 그럴 시도조차 못하는 의사란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을 성형외과는 생명과 무관한 전공이니 얼마나 좋으냐고 자위했었으며, 인기과라고 어깨에 힘은 왜 그렇게 들어갔었던지….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 당시에는 참 바보 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의사=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공식은 누가 만든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6년이라는 의대생활과 인턴 1년 동안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와 같은 개념을 보고 배웠으니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요즘 성형수술을 하다가 혹은 수술 후 이런저런 문제들로 생명이 위태로워지거나 실제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들이 제법 일어나고 있다. 언론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나 응급구조장비의 부재를 탓하지만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병원 중 반 이상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와 응급구조장비가 있었던 큰 규모의 의원들이다.

한편으로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수련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려봤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마취라는 영역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다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은 전문소생 능력을 갖춘 의사들이라는 점이다. 사람을 살리는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체계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그것을 실전처럼 익히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대형 성형외과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마취통증의학 전문의 상주'라는 문구가 환자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환자의 상태를 가장 먼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의사, 즉 직접 수술을 하는 의사가 환자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의 성형외과 수련 환경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의사지만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이후 전문소생술(Advanced Cardiovascular Life Support, ACLS) Provider에 관심을 갖게 됐다.

1박 2일로 이뤄진 ACLS 교육과정을 두 번 이수했고,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본과 2학년 심장학을 배울 때 공부했던 EKG 교과서와 ACLS 기본교재를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했다. 미국심장학회 홈페이지에서 모의시험을 보기도 했으며, 동영상 교육자료도 충분히 익혔다. 그리고 지난 2월 3일 무려 10시간 가량 실기와 필기시험을 치러 미국심장협회가 인증하는 국제공인 자격증에 합격했다.

ACLS Provider 자격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을 수 있는 10가지 정도의 상황에서 기본소생술(Basic Life Support, BLS)을 바탕으로 의료인의 보다 전문화된 약물요법과 AED사용법 및 각 상황에 대한 처치를 통해 환자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검증하고 있다.

아마도 내과·흉부외과·외과·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이 자격증을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교육을 담당했던 응급의학과 교수님은 점수가 좋으니 ACLS Provider들을 가르칠 수 있는 ACLS Instructor에 도전해 보라고 했다.

필자는 "제 주제에 생명에 대해 의료인에게 가르친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며 "앞으로 제 환자나 눈앞에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을 보았을 때, 한 발 앞에 나서서 그들이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다면 더욱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도 필자의 마음은 그대로다. 그리고 앞으로 성형외과 의사로 사는 동안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이 쓰이기보다는 이러한 마음이 항상 쓰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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