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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성평가 13년 "곪을대로 곪은게 터진 것"
적정성평가 13년 "곪을대로 곪은게 터진 것"
  • 고수진 기자 sj9270@doctorsnews.co.kr
  • 승인 2014.06.1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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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잇따른 평가 거부...행정비용 보상, 지표 개선 요구
의료계 "단순 서열화 아닌 의료 질 높이는 평가방식돼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도입한 의료기관 대상 '적정성평가'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 학회들이 잇따라 적정성평가의 문제를 제기하며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평가지표를 먼저 개선해야 평가에 협조할 수 있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적정성평가가 시행된지 무려 13년이나 됐지만, 학회가 직접 나서 평가 거부에 돌입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제출기한이 지나 추가로 제출하는 병원들이 있거나, 병원협회 등 일부 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해 온 게 전부였다.

심장학회, 적정성 평가 보이콧 선언...뇌졸중학회, 평가지표 개선 요구

심평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001년 약제급여 등 5개 항목을 시작으로 적정성평가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위암·간암 진료결과, 만성폐색성폐질환 등 8개 영역 35항목으로 평가를 확대했다. 매년 평가 항목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 심장학회가 적정성평가에 반발해 보이콧을 선언하며, 각 병원 담당자에게 보낸 공문 원본.
이런 가운데 대한심장학회는 지난 4월 허혈성심질환 포괄평가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고 각 병원에 협조를 구했다. 급성심근경색증 가감지급사업에 대가 없이 5년을 협조해 왔지만, 산출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려운데다 평가방식의 불합리성이 수차례 불거져 나와 더 이상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김병옥 심장학회 보험이사는 "환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입퇴원 기록을 리뷰해 66개 항목을 입력하려고 하다보니 임상 현장에서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며 "앞서 5년 동안 진행한 적정성 평가의 과오와 개선책을 짚고 넘거가야 하는데, 정당한 행정비용에 대한 계산 없이 무리한 제도 확대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장학회에 이어 대한뇌졸중학회도 반복되는 형식적인 평가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뇌졸중 학회 관계자는 "그동안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의 적정성평가 사업에 동참해 왔지만, 심평원은 수차례 지적돼 온 평가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보다는 평가항목만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뇌졸중학회는 2014년 급성기뇌졸중 진료 적정성 6차 평가 항목에 재원일수지표(LI)를 새롭게 포함할 경우, 병원입장에서는 입원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증상이 심각한 중환자의 진료를 기피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병원 입장에선 재원일수를 단축하고자 환자의 조기 퇴원을 유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의료계 "곪을 대로 곪은 문제...극단적으로 터진것"

적정성평가의 문제점은 하루이틀만의 것이 아니다.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이번에 극단적으로 터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평가를 하다보면 문제점이 나오는게 당연한데, 심평원은 이를 개선하지 않은 채 대상확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적정성평가로 인한 업무 과부하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꼽았다. 병원 관계자는 "심평원이 적정성평가를 요구할 때, 평가항목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간호사들이 업무종료 후에 데이터를 입력할 수밖에 없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3개월의 진료분을 토대로 평가하더라도 1년 내내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심평원의 경우 여러 부서에서 심사와 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병원은 한정된 인력으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자료제출 요구는 급증하고 전산심사는 강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로 인한 서열화로 병원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적정성평가가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이지만, 보험재정을 줄이고 병원의 서열화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평가 결과에 대해 정당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보상체계과 연계하면서 진료왜곡이라는 부작용이 발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지표 선정에 관한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오는 10월부터는 실시되는 중환자실 적정성평가에서는 사망률을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중환자실에서 대부분의 사망은 일반병실에서 심폐소생술 이후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 사망률 비교는 적절치 않다"며 "일률적으로 평가하려는 지표보다는 병원의 질개선을 위한 평가지표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정성 평가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고 의료질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평가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제껏 진행해온 적정성 평가가 진료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속적인 질개선이 이뤄지고 있는지 전반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며 "그동안의 평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설정과 수정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심평원, 의료계 어려움 인정...새로운 시스템 개발 진행

▲ 심평원 급여평가실은 최근 설명회를 열고 뇌졸중평가에 대한 지표 수정사항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왼쪽부터) 이규덕 평가위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 강정숙 급여평가실장, 정원영 평가부장.
잇따른 의료계의 문제제기에 심평원은 초반에 자료제출거부에 대해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관련학회와 해결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뇌졸중학회의 요구조건에 따라 평가지표를 일부 수정했다.

뇌졸중학회가 '재원일수지표(LI)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환자의 진료왜곡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 심평원은 "LI 평가지표를 유지하되, 입원일수기준을 변경 적용키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기존 입원일수기준은 재활의학과 전과 시점으로 지정했으나, 이번에 수정한 부분은 입원할 때부터 퇴원까지 전체 입원일수로 변경된 것이다.

이규덕 심평원 평가기획위원은 "뇌졸중 평가 전문가 자문회의 등 여러차례 의견 수렴 결과 지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번에 수정사항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런 심평원의 움직임에 뇌졸중학회의 반발 사태는 일단락된 상태이며, 심장학회와는 계속적으로 논의해 입장을 좁혀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심평원은 앞으로 이어질 급성 뇌졸중 7차 평가와 함께 또 다른 항목의 적정성평가에 대해 학회와 논의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규덕 위원은 "뇌졸중 평가에 대해 외국의 지표를 토대로 사전에 논의하며, 원점에서 다시 기획할 예정"이라며 "또 다른 평가에 대해서도 관련 학회와 협의하고 평가항목을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평가로 인한 의료계의 어려움도 인정하며,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 강정숙 급여평가실장은 "자료입력과 관련해 의료계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부분을 알고 있다. 앞으로는 작성을 별도로 수기로 다시 작성해서 보내는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자료 자동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능하면 평가지표수도 많은 항목 보다는 항목을 최대한 적게 하면서 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개발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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