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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 더하기 사랑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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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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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식(요셉의원 의무원장)

영등포에 타임스퀘어가 올라섰다. 으리 으리한 건물들 사이, 타임스퀘어 맞은 편에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쪽방촌의 허름한 3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서있는 환자들이 제법 있다.

영등포 432-57번지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 서울 사는 사람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곳이다.

요셉의원을 만들어 어렵사리 꾸려왔던 선우경식 원장이 2008년 세상을 뜨고, 제2대 의무원장으로 요셉의원을 지켜나가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신완식 의무원장이다.

 

▲ 진료실에서 스스럼 없이 환자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이자 아버지인 신완식 원장.

의대 교수 정년을 6년이나 남겨두고 퇴직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저 잘나가는 의사, 학생 가르치는 의대 교수라는 직함으로만 살아왔던 것이 못내 아쉬워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삶을 다시 생각해봤다는 신완식 의무원장. 감염내과 최고의 권위자이며,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내과 과장이었던 그가 가장 낮은 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너무 나이 들면, 봉사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년이 남은 상태였지만 아내의 동의를 구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미련을 버리고 내려놓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싶었죠. 무슨 묘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도울 곳이 어디든 있을 것 같았어요."

2009년 2월 퇴직을 하면서 특별히 요셉의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사표를 내고 당시 가톨릭중앙의료원장이던 최영식 신부를 찾아가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 요셉의원의 의무원장 자리를 권유했다.

2008년 4월 초대 의무원장이자 요셉의원의 설립자인 선우경식 원장이 3년여 간의 위암 투병 끝에 선종한 이후 비교적 오래도록 공석으로 남아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 마치 하느님의 의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다음날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입니다. 이곳에 오게 된 후 마음은 더 편안해졌고, 감사하는 법을 알게 되었죠."

신완식 원장은 퇴직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모습이 바뀌었다, 매우 편안해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는 것을 꼽았다. 

"선친께서 힘들게 공부한 만큼,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하셨고, 그래서 개원하지 않고 교수 생활하면서 연구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교수 신완식으로만 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정신없이 경쟁하며 바쁘게 살다가 지금은 요셉의원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 한번 보고, 화분 한번 보고 하는 여유도 생겼죠. 힘없는 누군가에게 도움 될 수 있다는 것이, 하늘 한번 바라보면서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셉의원은 봉사자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기적

 

요셉의원은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리던 고 선우경식 원장이 1987년 8월 신림동 달동네에 힘없고 소외된 이들을 무료진료하기 위해 세운 무료진료병원이다. 요셉은 선우경식 원장의 가톨릭 세례명으로, 21년간 20만 명의 영세민들과 함께했다.

1997년 5월 지금의 영등포로 이전, 쪽방 골목의 노숙인과 행려자들을 진료하는 지금의 형태가 됐다.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재활을 위해서 목동의 집, 고창 요셉의 집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지난 해 1월부터는 멀리 필리핀에도 요셉의원을 개원해 운영 중이다.

"예전 요셉의원 하면 퀴퀴한 냄새도 나고 했는데 지금은 리모델링을 통해 시설이 많이 좋아졌죠. 그만큼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진료의 폭도 넓어졌고요. X-ray부터 초음파·위내시경·한방치료는 물론 치과 치료까지 가능해졌습니다. 도움 주시는 분들의 힘만으로 이모든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기적이지요."

요셉의원은 정부의 지원 없이, 독지가들의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꾸려지고 있다. 건강보험증·진료비가 없어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극빈·노숙·행려·알코올의존증·차상위계층 환자·외국인 노동자 등이 주된 환자들로서, 2010년 통계만 봐도 진료 환자수가 1만 9500명에 이르고 누적 환자수는 48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환자의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하는데 환자 대부분이 주민등록증이 말소됐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진료는 오후 1시에 시작된다. 오후 5시까지 낮 진료를 하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저녁 진료를 한다. 

"요셉의원은 이렇게 도움 주시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수백 명에 달하는 봉사자들 덕분에 27년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병원을 지탱해주는 600여 명의 봉사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실감합니다." 신 원장에게 요셉의원은 봉사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곳이다.

요셉의원 환자들은 그저 속살같이 약한 사람들일 뿐

"돌이켜 보면 요셉의원 환자들은 내게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선우경식 원장.

빙긋 웃는 웃음만으로도 속내를 모두 털어놓게 만들 것 같은 신완식 의무원장. 오늘도 하루를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부임 초기 정진석 추기경님이 조언하셨죠, 노숙 환자들이 요셉의원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도록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하라고요."

하루에 100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쉴 틈이 없다. 큰 병원의 환자들보다 이곳의 환자들이 더 많이 아프다.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음주 후 기물을 파손하거나 욕설로 화풀이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고. 신완식 의무원장은 오히려 세상의 편견이 약한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구개열로 평생 발음이 불가능했던 40대 남성이 무료수술을 받고 병원을 뛰어다니며 '이제 말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던 모습을 눈앞에서 봤을 때 정말 가슴 뭉클했습니다. 말없이 껌 한 개, 초콜릿 한 조각을 책상 위에 놓고 가면 그보다 더 고마울 수 없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신완식 의무원장은 이곳 환자들을 숨어있는 속살처럼 한없이 약한 사람들이라 말했다. 노숙하는 사람들은 그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로서, 따뜻하게 보듬어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대상이다.

실제로 요셉의원에서는 환자들의 재활과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곳이 바로 목동의 집과 고창 요셉의 집이다. 환자들의 치료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건강한 삶까지 걱정하는 요셉의원에 새삼스런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선우경식 원장과의 세간의 비교도 매우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물었다.

"원래 요셉의원을 운영하시던 선우경식 선생님을 요셉의원이 건립되기 이전인 1984년에 처음 만났어요. 그 후 그 분의 삶을 지켜보면서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가끔 선생님을 만나 환자 이야기, 병원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선생님의 뒤를 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지금도 그분이 그리시던 꿈을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신완식 원장은 걱정대신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요셉의원을 건립해주신 선우경식 선생님을 비롯해 함께하고 있는 직원들, 선물로 받은 쌀을 흔쾌히 후원해주는 신혼부부, 오빠 별세 후 후원금을 기탁해준 노숙자 여동생, 첫월급을 미련없이 내놓는 봉사자, X-ray 촬영을 해주고 있는 최장기 최고령 봉사자, 익명으로 후원금을 오랫동안 보내주고 있는 많은 후원자, 속살같이 여린 우리 환자들까지… 감사드릴 시간도 부족하지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느냐, 나눔은 행복의 원천"이라는 신완식 의무원장의 말에 힘이 실렸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휴머니즘을 가진 참의사 신완식 의무원장이 선택한 전혀 다른 길이, 앞으로도 행복의 원천인 나눔을 통해 더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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