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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우리 안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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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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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 엄중식(한림의대 교수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필자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동네 어르신들은 이런 말을 했다.
"문둥이(한센병)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간을 꺼내 먹으니 조심해라."

그 이야기를 듣고 한 동안 혼자 돌아다니거나 어둡고 후미진 곳은 쳐다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한번도 한센병 환자를 보지 못했음에도, 그들은 어린 나에게 절대로 마주치면 안 되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된 지금 문둥병이라고 불리었던 한센병 환자는 딱 한 번 진단해 보았다.

사실 한센병에 대해 끔찍한 이야기가 돌던 유년기 시절에도 이미 이 질환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었고 전염력도 아주 낮은 질환이었다.

그러나 수 천년 간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벌'로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사회적 격리를 당해야 하는 질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한센병이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1980년대부터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공포의 질환으로 자리잡은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가 한센병이 가졌던 편견과 차별을 완벽히 이어받았다.

우리나라는 HIV에 사회적 이해 수준이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에도 매우 낮은 편이며 이로 인한 편견·차별·사회적 격리 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말 걱정스러운 상황은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에 의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HIV 감염인의 수술을 기피해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결국은 형사입건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장기요양시설에서 HIV 감염인에 대한 반인권적인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채 인권유린이 지속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HIV/AIDS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수술을 비롯한 침습적 시술에 거리낌없이 도움을 주는 외과 선생님들이나 치과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HIV 감염인에 대한 의료기관의 차별행위는 좀처럼 줄고 있지 않는 형편이다.

물론 의료인들이 안전한 의료환경에서 적극적인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병원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의료인들도 예상되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인이 겪을 수 있는 위험의 정도가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그 정도가 다른 질환에 비해 높지 않으며, 위험 노출 후 예방이나 치료를 통해 질병의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 질환에 대해서 의료인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거나 진료 자체를 회피한다면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HIV 감염인을 진료하는 의료인은 직업적 활동의 결과로 HIV에 감염될 위험성을 고려하게 된다. 환자로부터 의료인에게 HIV 전파가 일어난 첫 예는 1984년에 외국에서 보고됐으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의료인이 직업적 노출에 의해 감염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 의료인의 직업적 노출에 의한 HIV 감염 전파 사례가 없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를 살펴 보면 1981년부터 2006년까지 57명의 의료인이 직업적 노출에 의해 HIV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됐으며 재미있는 사실은 외과계 의사의 직업적 노출에 의한 감염 사례가 2006년까지 없다는 점이다.

여러 대규모 연구 자료에 따르면 HIV에 의해 오염된 혈액이 경피적으로 노출된 경우 HIV 감염률은 0.3% 이하이며 점막 노출은 0.09% 이하로 알려졌다. 비정상(손상된) 피부에 노출되었을 때 HIV 전파가 일어난 예가 보고된 적은 있으나 이 경로에 의한 평균적인 전파 위험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피부점막 노출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한다.

HIV에 오염된 체액이나 조직에 노출된 후 감염률도 정확하지 않지만 혈액에 노출됐을 때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의료인 감염은 주사침 자상에 의해 일어난다. 주사침 자상이 일어나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뾰족한 물체를 다루는데 대한 표준지침을 준수하는 것이 주사침 자상을 의미 있게 줄일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료인이 직업적 노출에 의해 HIV가 감염될 가능성은 극히 낮고 HIV감염인을 진료할 때 상황에 맞게 적절한 주의지침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파예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인들은 질병 자체뿐 아니라 사회적 고립으로 이미 충분히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의 고통 중 질병으로 인한 부분만큼은 의료인들이 해결해 줘야 할 몫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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