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총궐기' 13년만에 재현된다
'의사 총궐기' 13년만에 재현된다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2.1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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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실패, 준비없는 원격의료 강행 "더는 못참겠다"
대한민국 의사, 15일(일) 오후 2시 여의도 문화공원 집결

지난 2000년 2월 17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의사 약 4만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가 열렸다. ⓒ의협신문
다시 '의료대란'의 서곡이 울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노환규)'는 12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었다. 13년 전 여의도 문화공원을 가득 채웠던 투쟁의 함성이 다시 울리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고 있고, 회복 불능 상태로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또 다시 투쟁의 전면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할 수 없으니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에 의사들이 다시 투쟁에 나섰을까?

환자들이 모두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동네 병·의원들은 붕괴 직전에 있다. 대형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병상수와 건물을 늘리는가 하면 의료진들을 끌어모으고, 고가의 의료장비를 도입하는데 앞장서면서 지방 중소병원들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분만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가 늘어나고, 외과 의사들은 메스를 내려 놓은 채 피부·비만·미용 분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방 응급실과 중환자실도 제기능을 하지 못한 채 축소되고 있다.

지난 1999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의사결의대회. 집회를 마친 의사들이 수술복을 입고 의약분업 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의협신문
의료기술을 이어가야 할 전공의들이 미래가 없는 외과를 외면하다보니 머지 않은 미래에 맹장수술(충수절제수술)을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인 의사를 초빙해야 하는 암울한 상황도 예견되고 있다.
이같은 암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1만원을 투자해도 7000원만 보상하는 낮은 의료수가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의약품을 구입할 때 차액을 남겨 벌충한 적도 있다. 보험이 되지 않는 검사와 수술을 비롯한 비급여와 함께 매점·장례식장·주차장 수입에서 3000원의 부족분을 메우고, 일부를 재투자 비용으로 남기기도 했지만 이마저 급여 억제와 급여 삭감 정책을  통해 하나 둘 회수하면서 더 이상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저수가 보험정책이 계속되면서 의료기관들이 정상적인 진료로 경영을 유지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고 있는 경직된 규제와 심사지침 때문에 가슴 졸이며 불법진료와 과잉진료의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의사들의 자괴감도 크다. "정부가 정해 놓은 연령금기·허가초과의약품에 맞춰 치료하면 결코 환자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늘 처벌을 감수하고 진료할 수밖에 없다"는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한탄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실제 의료현장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앞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재정 투입에는 인색하다. 의료기관의 90%가 민간임에도 강제로 건강보험 진료를 하도록 통제하면서 전혀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포괄수가제(DRG)는 중증질환이나 복합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진료량을 투입했더라도 질병에 따라 미리 정해 놓은 가격만 보상하다 보니 좋은 진료 대신 낮은 진료를 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의협이 "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자금심마저 지킬 수 없는 피폐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내린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 규제·지침대로 치료하면 환자 살릴 수 없어"

지난 2000년 여의도에서 열렸던 전국의사대회에서 각 시도 의사회장단들이 삭발식을 하며 대정부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의협신문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2월 17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참여한 4만 5000여명의 의사와 가족들은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의약분업은 수용할 수 없다"며 정부의 정책 강행에 반기를 들었다.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회(위원장 김재정)가 주도한 이날 전국의사대회는 대한병원협회를 비롯한 병원계지도부가 공식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의대생들과 가족들도 참여, 범의료계의 첫 장외 집회로 기록됐다. '동네의원 살리기 운동본부'와 '민주의사회' 등 자생적으로 결성된 단체들이 의료계 투쟁에 힘을 모았고, 전국적인 의쟁투 투쟁성금 모금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준비 안된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깃발을 든 의료계는 ▲대체조제와 임의제조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법적 보완장치와 감시기구 설치 ▲약화사고 책임소재와 보상대책 마련 ▲의약분업 시범사업 실시 및 점진적 시행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적정진료를 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와 의료보험제도 전면 개편 ▲지역의료보험 재정 50% 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심사 및 실사 장악 기도 반대 등을 요구 조건으로 제시했다.

1999년 11월 이전까지 의약품 거래 과정에서의 이윤추구를 통한 원가 메꾸기는 합법적이었다. 수가가 원가의 70%에 불과한 상황에서 병·의원들은 의약품 거래를 통한 약가마진과 할인·할증을 통해 경영수지를 맞췄왔던 셈이다. 하지만 1999년 11월 실거래가상환제 도입과 평균 약가 30% 전격 인하 조치는 경영수지를 맞출 수 있었던 싹을 잘라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의약분업과 의료계 전면 투쟁의 시발점이 됐다.

지난 1999년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이 의약분업 철폐를 외치며 병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의협신문
19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대회, 2월 17일 여의도 대회에 이어 4월 4∼6일 동네의원 중심의 의료계 100년 역사상 첫 휴진투쟁이 촉발됐다. 6월 4일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투쟁 결의대회'를 통해 세를 결집한 의료계는 전국회원 98.9%가 정부안을 거부하고 무기한 폐업에 동의함에 따라 6월 20∼26일까지 전면폐업 투쟁을 펼치기도 했다.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들도 가세했다. 7월 29일 전공의들이 전면 파업을 시작으로 8월 11∼17일 의료계 재파업이 이어졌다. 9월 5∼21일 의과대학 교수들이 외래진료에서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10월 6∼10일 의료계의 5차 파업이 벌어지는 등 2000년 내내 집회와 휴폐업 투쟁이 계속됐다.

당시 정부는 의약분업 정책목표로 △의약품 오·남용 방지 △약화사고 예방 △과잉투약 방지 △불필요한 의약품의 소비 감소 △국민의료비용의 대폭 절감 등을 내세우며, "먼저 제도를 시행한 후에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의약분업 정책에 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는 한낱 공염불이 됐다.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은 이후에 의료에 대한 인식과 철학의 부재 속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의료제도와 규제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더 깊고, 넓게 벌이지고 말았다.

정부 "선 시행, 후 보완" 약속 저버려…정책 '불신' 유발

의약분업 정책에 대한 평가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2002년 의약분업정책평가연구회는 '의약분업 정책평가'를 통해 정부가 내세운 의약분업 정책목표에 관해 평가한 적이 있다. 연구회는 "의사의 조제기능은 명시적으로 금지된 반면, 약사의 진단, 처방기능(임의조제)은 합법적, 불법적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직능의 전문화가 제대로 구현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같은 약사들의 불법 행위는 2010년 의약분업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의협신문>이 의사 8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하거나 문진하는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무려 63%가 "약국의 불법 전문의약품 판매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의약품 대체조제에 따른 사후통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80.0%에 달했다.

지난해 전국의사총연합이 불법 행위를 했다고 고발한 약국 110곳이 처벌을 받았는가 하면 지난 9월에는 의사 처방전 없이 불법으로 전문의약품을 조제하거나 버젓이 가짜 약을 판매한 약사들이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이같은 사실은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과 목표를 훼손하는 약국에서의 불법행위가 의약분업 시행 1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권력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이유로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내세웠지만 약국에서 유통되는 의약품의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논의 대상에 제외했다.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 이뤄지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단속이나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의약품 오·남용이 크게 우려되는 '낙태약'을 의사 진료없이 약국에서 팔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역주행 정책을 내놓아 의료계와 종교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의약분업 투쟁 당시 전공의들은 불법 대체 조제 피해 사례가 담긴 사진을 들고 주요 정부기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의협신문
의약분업 제도 시행 13년이 지났지만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의약분업의 근간을 훼손하는 약국에서의 불법 임의·대체조제와 전문의약품 판매 행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약국의 불법행위를 정부가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는데 대해 의료계는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은 '우리나라 의약분업 정책 평가'를 통해 "의약분업 세부 목표 10개 중 9개는 기대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실패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연구를 수행한 김정덕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전 연구위원은 "의약분업은 국민의 의료이용 관행을 바꾼 혁명적 사건이었으나 준비과정에서 소홀해 의료계 파업이라는 의료대란과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항생제는 의약분업 이후에도 생산실적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약 사용량도 의약분업 이후 처방건당 의약품 품목수가 선진국의 2배에 달할 뿐만 아니라 고가약 처방에 대한 부담이 없어져 처방률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생제 처방률의 미미한 감소에 대해서는 의-약 분리라는 의약분업의 결과라기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성 평가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의약품 적정사용에 따른 약제비 절감효과에 대해서는 "의약분업 전후 약제비 비중이 14.0%에서 34.7%로 2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건강보험급여비 증가율은 10.9%인데 반해 의약품비 증가율은 급여비보다 높은 12.6%라며 약제비 절감 목표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은 의약분업이 경제적으로 국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본 결과,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 지출된 보험의약품비가 1999년 4/4분기 2007억원에서 2001년 4/4분기 3조 4089억원으로 급증했을 뿐 아니라 줄어야 정상인 개별 도시가구의 의약품비 지출도 함께 증가했다"며 "가계부담 측면에서도 의약분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제약산업 발전 및 의약품 유통구조 정상화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도 "실거래가 상환제는 국내 제약회사보다는 오리지널 고가약을 생산하는 다국적제약회사에게 과실이 더 돌아가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제약산업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약품 유통 4대 개혁 방안인 '의약품 물류협동조합 설립'과 '보험의약품 대금 지급방법 개선(보험자가 의약품 대금을 도매상에 직접 지불하는 제도)'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에 폐기됐고, '의약품 유통전산화 및 종합정보관리시스템 구축'은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정책 실패의 대가로 국민의 세금 360억원을 민간기업에 손해배상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고 혹평했다.

김 전 위원은 "의약분업이 당초 의도한 목표에 실패함으로써 국민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고, 의약품 사용에 불편을 안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기관분업으로 인해 병원 외래를 이용하는 노약자들의 의약품 조제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 6월 4일 열린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투쟁 결의대회'.ⓒ의협신문
의약분업 정책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진료관행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부족했고, 환자 행태 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행정적 준비가 미흡했다"고 진단한 김 전 위원은 "당시 여당과 시민단체 등 외부의 힘에 의해 의약분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할 보건복지부가 외부에서 결정해 준 정책을 따라가는 형식이 됨에 따라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의약분업이 얼마나 준비없이 강행했는가에 대한 증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시험)을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었음에도 대체조제를 활성화를 독려했다. 2006년 촉발된 생동성시험 시험 조작 사태는 준비 안된 정책 강행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뒷수습도 부실했다. 생동성시험 조작에 연루된 회사들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으며, 부실한 회사에 시험을 의뢰한 제약사들은 어떠한 패널티도 받지 않았다. 대조군의 혈중 농도가 오리지널 약의 80∼125% 사이에 들면 효능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생동성시험 자체도 문제려니와 전대미문의 시험 조작 사태를 지켜본 의료계로서는 불신을 해소할만한 그 어떤 근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과 파업을 야기한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 후유증은 13년이 지난 현재도 깊고 굵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파업을 했다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고, 의료전문직에 대한 신뢰를 의심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리더십을 잃은 채 내놓는 정책 마다 불신과 의혹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의료계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언론 역시 객관성과 공정성에 타격을 받았다.

이해주체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 의약분업 제도는 13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신의 골을 메우지 못한 채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으로 남아 있다.

정부 내세운 정책 목표 "제대로 달성된 것 없어"

건강보험 재정이 폭증할 수밖에 없는 의약분업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2001년 사상 초유의 건보재정 파탄 사태가 발생하자 의료계에 고통분담을 강요했다. 진찰료와 처방료를 강제 통합하고, 하루 75명 이상 진료한 경우 진료비를 깍는 차등수가제를 비롯한 '건강보험재정 안정화 대책' 종합 삭감정책을 통해 의료계를 쥐어짰다.

보건복지부 스스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을 통해 절감했다고 밝힌 내역을 보면 ▲진찰료·처방료 통합(8745억원)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 실시(3158억원) ▲야간가산율 적용 시간대 조정(2076억원) ▲주사제 처방료 및 조제료 삭제(5350억원) ▲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4397억원) 등 2조 3726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심사기준 강화(9331억원)·급여기준 합리화(5485억원)·약제비 적정성 평가(2744억원) 등을 통해 1조 7560억원의 재정을 절감한 것을 감안하면 무려 4조 1286억원의 급여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정 적자의 주된 해결책이 보험료 인상보다는 의료공급자들을 쥐어짜는데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인상한 수가를 대부분 회수해 갔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 안정화 대책 이후 건강보험 재정에 다소 여유가 생기자 의료공급자 쥐어짜기를 통해 회수한 급여비를 돌려주는 대신 입원환자 밥값 지원·6세 미만 입원료 면제 등 선심성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펴는데 투입했다. 의료공급자를 쥐어짜 남은 돈으로 생색을 내는 정부의 모순된 정책에 의료계의 불신이 쌓여갔다.

공급자 쥐어짜 선심성 보장성 예산 투입

전국 의료계 대표자들이 2013년 12월 17일 한자리에 모여 관치의료 타파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의협신문
'선시행 후보완'을 내세워 의약분업을 강행한 정부는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렇다할 보완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의료공급자 쥐어짜기를 통해 절감한 예산을 보장성 강화 정책에 투입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에서 더 커졌다.

여기에 가뜩이나 위기에 직면해 있는 동네 병·의원의 존립 기반을 크게 위협하는 원격의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과 영리병원 도입이 예견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계를 또 다시 투쟁으로 내모는 단초를 제공했다.

"지난 36년간 지속된 저수가체제로 인해 의사는 정부를 대신해 부족한 치료비를 국민으로부터 받아내는 악역을 맡아 왔다"고 언급한 노환규 의협 회장은 "그 결과 의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면서 "36년간 잘못된 제도를 시행한 것은 정부지만, 이를 방치한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고 고백했다.

준비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보건의료정책을 강행하며 불신을 조장해 온 장본인들이 또 다시 문제가 많은 정책을 의견 수렴과 동의없이 밀어붙이려는 데 대해 노 회장은 "투쟁의 시작은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저지에 있지만 투쟁의 끝은 반드시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 악법·의약분업 등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의대회를 계기로 잘못된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표명했다.

의협은 이번 대회를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문제로만 국한하지 않고 관치 의료와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해 잘못된 의료제도와 법률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투쟁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의료제도와 정책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관치의료를 종식시켜 환자로부터 존중 받고 배운대로 양심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제도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자"고 밝힌 노 회장은 "앞으로 오랫동안 환자의 건강을 살펴야할 젊은 의사들이 동참해야 한다"며 동료 의사들과 특히 젊은 의사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대학교수와 병원의사들 또한 직업전문성과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양심껏 떳떳하게 진료할 수 없는 기형적인 의료환경의 허허벌판에 매년 3000여 명의 제자들을 내보내고 있는 이 암울한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교육자로서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2년 동안 병원계는 영상수가 인하·초음파 급여화·비급여 통제 강화·시장형 실거래가제도 시행 유예·질평가를 통한 수가 재조정·신용카드 수수료율 인상·교통유발 부담금 인상·지방세 부담 가중 등에 이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선택진료비·병실 차액 등 3대 비급여제도 개편이라는 직격탄을 맞아야 할 상황이다. 생존을 위한 버티기 전략으로는 한계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의료윤리와 직업전문성에 입각해 양심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고는 근본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도에 순응해 불법과 탈법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료의 구조적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각과 노력을 시작할 때가 됐다. 그 중심에 "환자의 이익과 의사의 이익은 동일하다"는 직업전문성과 의료윤리의 원칙이 굳건히 자리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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