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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병원 위기 방치하면 "집단 폐사 위험"

중소병원 위기 방치하면 "집단 폐사 위험"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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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급여 구조적 모순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 현실화
건강복지정책연구원 20일 토론회…거점병원 지원해야

▲ 민간 보건의료 연구기관인 사단법인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20일 창립 5주년을 맞아 '위기의 중소병원'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의협신문 김선경

현행 보험제도의 틀이 변화하지 않는 한 위기에 놓인 중소병원들이 결코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집단 폐사할 것이라는 암울한 진단이 나왔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20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위기의 중소병원' 정책토론회 주제발표를 통해 "병상 신증설 금지·제한 고시와 대진료권 병상 상한제 등 병상공급 억제 정책이 잇따라 폐지되면서 1990년 11만 9000병상이던 급성기병상수가 2010년 3배에 달하는 35만 2000병상으로 늘어났다. 800병상 규모의 병원이 한 달에 한 곳씩 생긴 꼴"이라며 "병상 공급 과잉은 정부 정책의 실패와 부재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저수가 상황에서 끊임없이 진료량과 비급여를 늘리며 규모를 키우는 무한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방관한 의료제도 역시 중소병원의 위기를 가중시킨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1년 44곳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빅5가 차지하는 진료비 비중이 37%에 달할 정도로 독점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이 이사장은 "최근 수년간 미미한 수가인상이 이뤄지고, 비급여 항목이 속속 소멸되면서 중소병원은 규모를 줄이거나, 전문화하거나 집단폐사의 압박에 놓여 있다"고 털어놨다.

정책토론회를 주최한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지역 응급실과 분만실이 사라지고, 중소병원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보험급여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험급여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아야 중소병원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원장의 판단. 정책토론회를 열게 된 동기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중소병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환자안전과 직결되는 의료기관 인증제도와 보호자 없는 간병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이 연구원장은 "중소병원이 활발하게 제 기능을 다해야 지역사회 주민들이 편리하게 의료에 접근할 수 있고, 응급의료나 분만의료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왕준 이사장은 중소병원의 돌파구를 '한국형 준(準) 공공 중추병원(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 즉, 지역거점 또는 지역친화 통합의료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전국을 100개 진료권으로 설정하고, 각 진료권 단위에 2차 병원와 1차 의료기관들을 중심으로 급성·아급성·장기요양·가정 등을 통합·연계하는 개념. 이 이사장은 새로운 지불제도까지 아우르는만큼 각계의 충분한 논의과정과 함께 시범사업을 실시함으로써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중소병원의 인력 문제'에 대해 발표한 김양균 경희대 교수(의료경영학과)는 "인력문제는 대도시·중소도시·읍면 등 지역별 불균형과 함게 의료기관의 규모별 불균형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면서 "300병상 이상과 160∼299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인력부족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병원의 기능정립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정부 지원과 함께 전략적 제휴와 인력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옥륜 서울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정책토론회에서 김진현 서울대 교수(간호대학)는 "의료취약지 병원에 대해서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후·사전 관리를 통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소병원이 위기라는 데 대해서는 "800곳의 병원이 2700곳까지 늘어난 것을 보면 위기라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며 다른 시각을 보였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중소병원에 환자들이 안 가는 것은 '신뢰의 위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삼성이나 아산에 비해 진료나 검사를 빨리해 주지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기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2인실까지 보험급여를 해 주고, 프리랜서의사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며 "건강보험공단이 질병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조직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자율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중소병원에 대해서는 총액개념의 지불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김 기자는 "중소병원이 자율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면 공공의 역할을 더 집어넣고, 총액형태로 급여비를 지급받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김상일 중소병원협회 총무위원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정부가 불공정하고 형평에 맞지 않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꼽은 것은 '요양기관 종별 가산율 제도'와 '전공의' 문제. 김 위원장은 "상급종합병원에 더 많은 가산율을 주고 있는 현 제도는 차별적이고, 불공정하다"면서 "전공의와 전임의 인력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해이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간호등급제를 5년 동안 유보하고, 창원시의 '행복병원' 사례와 같이 공공의료의 역할을 하는 민간병원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만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면서 비효율적인 의료 이용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한정된 재정 속에 수가를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의료이용량을 늘리도록 방치하면 대형병원만 더 커지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겸 삼척의료원장은 "대학병원 의료진을 중소병원으로 파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지역친화 통합의료 모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했다.

제도 변화의 일차적인 키를 잡고 있는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상급종합·중견(중소)병원·전문병원 협의체와 함께 인력 수급과 수가 적정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대형병원이 아급성 환자를 중소병원에서 치료하도록 회송하는 시스템과 반대로 환자를 의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취약지에 근무할 수 있는 의사인력 양성방안을 비롯해 간호인력 정원 확대·근무여건 개선·육아부담 경감 등을 통해 지방 중소병원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이 과장은 설명했다.

방청석에서는 중소병원을 위기로 몰고 있는 제도와 규제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급기야 2차병원을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백성길 대한중소병원협회장은 "지방 병원들은 간호사 지원자가 거의 없다"며 "간호등급제라도 유보해 달라"고 했다. 백 회장은 "중소병원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며 "개선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20일 연구원 출범 5주년을 맞았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과 정책토론회 좌장을 맡은 문옥륜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토론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의협신문 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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