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목숨 살리고 '반성문' 써야했다"
"환자 목숨 살리고 '반성문' 써야했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3.11.05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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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G 강제도입 4개월째, 산부인과 "일상이 외줄타기"
합병증·동반질환 무시..."국민에 해로운 나쁜 제도"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 포괄수가제(DRG)가 도입된지 5개월째를 맞고 있다. 중증 고난이도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 진료비를 획일화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병원계의 애초 우려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이근영 한림의대 교수(강남성심병원)는 "산부인과는 포괄수가제에 해당하는 질환이 80%에 달한다"면서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산부인과 매출이 병원마다 평균 30%씩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증·합병증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진료패턴의 왜곡현상을 꼽았다. 이 교수는 "포괄수가제 도입 이후 병원은 합병증 환자를 받으면 무조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다른 질환을 동반한 경우 동시수술을 실시해도 포괄수가제는 한 가지 치료에 대해서만 인정하므로 다른 수술에 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병원의 손실로 남게 된다"고 밝혔다.

포괄수가제는 처음부터 산부인과 영역에는 적용할 수 없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포괄수가제의 도입 배경은 의료행위 건수와 재원일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것인데, 합병증과 동반질환이 많은 산부인과 질환의 특성상 건수와 재원일수를 통제하는 것은 환자에게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김영태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는 자신이 겪은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며 포괄수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 환자에게 자궁적출 수술을 시행하던 중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악성열증이 발생해 수 시간만에 간신히 상태를 호전시켰다"며 "그런데 수가는 '자궁적출술' 한 개 항목에 모두 포함돼 있어 합병증 치료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병원의 손실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환자 생명을 구한 김 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100만원 적자'가 발생한데 대한 사유서를 쓰라는 병원측의 통보였다.

그는 "난소에 혹이 있다며 찾아오는 환자가 가장 곤혹스럽다. 난소 혹에도 양성인지 악성인지, 경계성종양인지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검사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포괄수가제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은 매일 같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심정"이라며 "먹는 음식도 가격을 통일하지 않는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를 왜 획일화 하려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성토했다.

김 교수는 "중증도 이상 고난도 환자에게 과연 포괄수가제를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복합질환·합병증 환자가 많은 3차의료기관은 포괄수가제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장흡 가톨릭의대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는 "우리는 사회적으로 우선되는 업무에 보다 선택과 집중을 기울이도록 교육받고 있다"며 "그러나 포괄수가제는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의 치료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수술 중에 비용문제를 고려토록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포괄수가제는 결국 환자에게 어떤 혜택을 주려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도록 만드는 나쁜 제도"라고 비판했다.

전공의·초음파·DRG·분쟁조정법 "적극 대처"

산부인과학회는 포괄수가제를 비롯해 저수가 문제, 초음파 급여, 전공의 수급, 의료분쟁조정법 등 산부인과에 산적한 현안을 풀기위해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김장흡 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4일 <의협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의료계 전반이 어렵지만 유독 산부인과는 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모성사망률이 최근 4년간 두 배나 증가한 마당에 정부개 내놓는 대책들은 오히려 반 산부인과적 정책, 산부인과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장흡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그는 또 "올초에 '질강처치료'가 요양급여 적용 대상으로 신설됐다. 산부인과에 '처치료'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특히 산부인과는 응급수술·당직이 많은데도 이런 부분에 정당한 수가 보전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4대 중증질환 초음파 급여화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현재 고시된 초음파 수가는 관행수가의 50%에도 미치지 않으며, 특히 상급병원의 경우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아 초음파 검사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공간·전자사진 보관 시스템의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산과 영역의 경우 임신중독증·전치태반·쌍태아임신 등 고위험 임신의 경우 초음파검사의 횟수에 제한을 두면 주산기 예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하고, 부인과 영역에서도 반복 출혈 환자나 지속적인 통증 호소로 추적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초음파 검사를 반복 시행하면 병원이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의료분쟁조정법의 독소 조항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법은 무과실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산부인과 의사가 30%의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김 이사장은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의료분쟁조정법이 산부인과 의사들의 마음을 가장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산부인과 전공의 수급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학회에 따르면 2004년 211명이던 산부인과 전공의는 2013년 117명으로 반토막 났다. 전문의 역시 2014년도에는 100명에 못미치는 인력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이사장은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주당 40시간 근무는 고사하고 일부 병원들은 주간 80시간 근무를 실시해도 당직 근무를 도저히 설 수 없는 처지"라며 "단기적인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전반적인 제도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산부인과는 지금이 '바닥'이 아닌가 싶다"며 "과거에는 산부인과 병원끼리 경쟁이 많았으나, 요즘은 서로 협력해도 부족한 상황이라 경쟁할 때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일선 의료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 학회는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들과 사회단체, 정부와 협의하고 고민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모두가 힘을 모아 국민건강을 지켜냄으로써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산모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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