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줄기찬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를 추진하겠다며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원격진료를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의료기관 방문이 다소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의 의료접근성 제고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의 상시적 관리, 첨단 의료산업 발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제시했다.
얼핏보면 의료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장 우선해서 고려해야 할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근거자료가 없다.
환자의 활력징후 만을 수치적으로 측정해 진단하면 오진의 위험이 크다. 환자를 직접 대면해 시진·촉진·타진·청진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언어적 신호를 원격진료는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이 아닌 기계 중심의 체온이 없는 진료가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겠다면서 정부의 책임을 어떻게 더 넓힐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이라고 해서 대면진료를 받을 권리를 묵살해서는 안된다. 취약지역에 별도의 수가를 더 얹어주고, 더 투자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달하는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데 서민들과 경영난에 허덕이는 동네 병·의원들은 여력이 없다.
원격의료 이용 가능 의료기관을 동네의원으로 한정한다고는 했지만 한 번 터진 물꼬가 둑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현재도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가벼운 질환도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상황인데 경계가 무의미한 온라인에서는 방도가 없다.
더욱이 수술환자가 600만 명이 넘어선 상황에서 수술·퇴원 후 관리가 필요한 경우 병의원 구분없이 원격진료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의료기관에 물꼬를 튼다는 의미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는 의료이용 행태를 획기적으로 뒤 바꾸는 혁명적인 제도임에도 정부는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근거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동네의원과 환자 간에 제대로된 원격진료 시범사업 한 번 하지 않고,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도 거치지 않았다.
정부는 2000년 준비 안된 의약분업을 밀어붙여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준비가 안되긴 원격진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