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Global role of doctors 우리나라의 현황과 과제
의사의 사회적 책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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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에 대한 의사와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과 손잡고 <Global role of doctor>를 주제로 신년기획을 진행합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과제는 의사는 물론 일반사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직 바람직한 의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과제입니다.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는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정립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
딱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환자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해 의사가 무슨 책무를 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조금 부적절해 보인다. 물론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의사가 사회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 관계의 특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의사가 사회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의사가 어떤 존재인지가 명확해져야 한다. 의사는 치료자(healer)이면서 또한 의료전문직(medical professional)이다. 전문직이란 전문직으로서의 지위와 역할 및 책무를 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지위와 역할은 사회 일반과 암묵적으로 맺은 가상적 계약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것으로 보통 이해된다.
즉 전문직이란 특별한 지식,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역할과 업무를 수행하고 이런 역할과 업무의 반대급부로 면허제나 자율규제와 같은 자기 관리의 권한을 보장받게 된다. 물론 이 권한은 이 역할과 업무를 충실히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인 책무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
의사가 치료자일 뿐만 아니라 의료전문직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의사가 사회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 관계의 특성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역할과 업무가 무엇인지가 여기에서는 중요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의사는 치료자로서 개별 환자와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별 환자를 넘어서는 활동이 요구될 때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사회 전체에 위협이 되는 전염병 대유행(pandemic)과 같은 공중보건적 응급상황에 대처하거나 올바른 의학 정보를 생산하여 사회에 보급하거나 부족한 의료 자원을 효율적이면서도 합당하게 분배하여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역할은 치료자로서의 역할에서 유래한다기보다는 사회 일반과 관계를 맺는 의료전문직으로서의 역할과 업무 규정을 통해 분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일반은 의사가 개별 환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중보건과 의료의 질 향상에 힘써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회의 요구를 사회 전체에 대한 의사의 책무, 즉 '사회적 책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책무를 다른 나라에서는 의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가? 당연히 요구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모두 부르는 이름은 각각이지만 그 나라와 사회에 적합한 사회적 책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의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 또한 이 책무를 자신의 고유한 업무로 받아들이고 수행하고 있다(의협신문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s (1)~(5) 참조)．
최근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보신 분이 많을 것이다. '정의'라고 하는 가치는 개인 간의 윤리적 요구라기보다는 개인이 사회 전체와 관계를 맺을 때 또는 사회 일반이 전체 구성원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거나 일을 하고자 할 때 중요시되는 가치이다.
정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종의 시대적 유행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우리에게 알맞은 사회적 가치나 책무를 스스로 논의하고 창출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봐야 하겠다. 물론 의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런 인식에 근거하여 최근 'Global role of doctors' 연구팀은 우리나라 의사와 의과대학생을 위한 사회적 책무에 대한 안을 고심 끝에 마련하였다. 이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국민 건강과 보건 지킴이로서의 역할과 임무
1) 의사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 개인의 건강 증진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2) 의사는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 사회 주민의 건강에 미치는 요인들을 파악하고, 지역 사회의 의료 수요에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의사는 올바른 의학 정보를 환자, 지역 주민 및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4) 의사는 지역 사회와 국가의 건강 증진 활동(전염병 관리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야 한다.
5) 의사는 보건의료 취약계층, 즉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에 접근하는 데에 공간적,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건의료 체계와 정책 결정 참여자로서의 역할과 임무
1) 의사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의료기관과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의사는 보건의료체계의 관리자와 지도자로서 적절하게 활동해야 한다.
재난 구호와 국제 협력 증진을 위한 역할과 업무
1) 의사는 국내 재난 지역의 건강 수호 활동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2) 의사는 국제 재난 구호 활동의 의의를 이해하고 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의사는 보건 관련 국제기구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의학지식의 국제 교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개별 환자와의 관계는 의사의 책무성을 정의하는데 있어 충분조건도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필요조건도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즉 의사는 사회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 관계를 통해 어떤 사회적 역할과 책무 및 권한을 갖게 되는 지가 의사라는 전문직을 정의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의사는 그 본분이 환자의 진료이므로 진료실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이 말은 두 측면에서 그릇된 말이다. 의사는 진료실에만 머물 수도 없고(can not) 머물러서도 안 된다(ought not).
